트레이시에민_이지연

2024.08.18 | 조회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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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당신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1990년대

두 개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서 선택한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예능이 있었다. 이름하여 인생극장 그래 결심했어!

인생극장이라는 예능은 내가 가슴 두근거리며 재미있게 봤던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다.

내가 고르지 않았던 선택지가 잘 풀려나갈 때 이걸 선택해야 했었나 고민도 했고

내가 골랐던 선택지의 인생이 잘 풀려나갈 때 현명한 선택을 고른 나를 칭찬해주기도 하면서 봤던 예능이다.

매주 내가 한 선택의 인생이 잘 풀려나가는 걸 보면서 선택에서 오는 희열감이 있었다.

한주 한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선택지를 잘 골라야 할 것인가를 한껏 고민하면서 봤던 것 같다.

 

트레이시 에민 Not yet the end (2017)
트레이시 에민 Not yet the end (2017)

 

침대를 들일까, 말까

남편의 췌장암 수술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암의 크기는 4.5cm

상당이 큰 사이즈 였지만, 다행히 다른 곳에 전이가 없어서 몇 군데의 장기들을 일부 제거 하면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남편은 암이 췌장의 꼬리 부분에 있었고, 비장, 신장, 대장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했다.) 그때 남편은 항암을 먼저하고 수술해야 하는 건 아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간담도췌 명의이신 김교수님은 수술이 가능하다면 수술을 먼저 하는게 맞다며 고민하던 우리의 수술 일정을 앞당겨 잡아주셨다.

5시간에 걸친 대수술과 12번의 항암 (23일 동안 항암 주사를 맞는다,)

그리고 10번의 방사선 치료, 그것이 남편에게 계획된 치료였다.

이 치료가 끝나면 남편은 일을 좀 줄이고 아이들과 자신을 잘 돌보면서 소소한 행복을 맛보며 살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마지막 진료실

그동안 암 치료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암 수치가 다시 올랐네요.

몸에 암이 재발한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다시 2차 항암치료를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실은 마지막 진료 날이 내 생일이어서 내심 기대하고 갔던 것 같다. 다른 생일선물보다 당신 괜찮다는 이야기를 생일선물로 들려달라며 새벽같이 서울로 향했는데 나는 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계속되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몇 번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지만 우리는 잘 견뎌냈고 좀 편안한 날이 계속되었다.

기약 없는 항암으로 힘들긴 했지만, 남편의 컨디션은 감사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나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남편은 매일 만 삼천 보 이상을 걸었다,

안양 주변에 황토가 있는 산을 찾아 매번 맨발 걷기를 하러 다녔다.

아이들과 주말에는 광교산 꼭대기를 올라가 야호를 하고 올 정도로 남편은 컨디션 관리를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전이가 시작되었다.

간에서 어깨로 그리고 척추와 온몸으로....

설을 앞두고 검사 결과에서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내가 듣게 되었다.

담당의는 나를 옆에 불러 앉게 하고 남편의 PET CT 사진을 보여줬다.

(PET CT 검사는 고도화된 양전자 컴퓨터 단층 촬영 기법을 기반으로 하는 진단 방법으로, 암 진단관리에 있어 효과적이다. 이 검사로 조기암 발견과 암의 병기 확인, 정확한 위치 파악, 치료 경과 관찰, 예후, 예측이 가능하다.)

오래 못 버틸 것 같다며 고통이 심할테니 남편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는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길면 3개월이라고 했다.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반듯하게 자지 못했다.

아마도 척추에 암이 퍼져있어서 누워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안됐던 것 같다.

누워있는 시간은 10

다시 자세를 바로잡아야 했다.

침대에서 10,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10,

바닥에 높은 산처럼 등을 세울 이불을 깔고 다시 10분 이렇게 쪽잠을 잤다.

안방 침대, 거실, 소파, 안되면 의자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밤이 무섭다고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분마다 남편의 체위를 바꿔줘야 했기에 당연히 나의 수면의 질은 최악이었다.

남편이 10분마다 부르는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 베개와 이불을 정리해주고 이방 저방을 옮겨 다녔다. 나조차도 밤이 무서웠다.

나에게 허락된 잠은 남편의 발밑에서 새우처럼 등을 웅크리며 자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던 침대는 체위 변경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불과 베개를 몸에 잘 끼워주면 몇 시간씩 잠을 자곤 했다.

나는 고민했다.

남편을 위해 병원 침대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동안이라도 잠을 편히 잘 수 있다면 내 공간의 복잡함은 견뎌낼 수 있었다.

그다음 날 간호사인 친구에게 나의 결정을 이야기했다.

혹시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는데, 그녀의 대답은 절대 안돼였다.

그녀는 안된다고 했다.

절대 집에 침대를 들이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나중에 너랑 아이들이 많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 집에서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자꾸 생각이 날 것이라고,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라고

나에게 침대 구입을 당장 취소하라고 했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침대를 들일 것인가, 말 것 인가

침대가 있으면 남편이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있을 것이고, 남편을 일으키고 세우고 하는데

나도 체력적으로 좀 편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침대를 들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침대를 들일 여유도 없이 매일 하루에 2번씩 응급실을 가게 되었다.

응급실의 침대에서도 남편은 누울 수가 없었다.

모르핀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만 누울 수 있었다.

필요하던 침대가 더 이상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남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누워있던 침대, 소파, 의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쓰던 물건은 그대로인데 그곳에 있어야 할 그가 없었다.

한동안 나와 아이들은 집이 무서웠다.

그가 없는데 그가 그곳에 계속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없는데 그의 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학교 밖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들도 나도 그 공간에 서로를 혼자 있게 놔두지 않았다.

서로를 보듬어 안으며 우리는 견뎠고, 견뎌 내고 있었다.

침대 곁을 떠나지 못한 그대에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남편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남편도 힘들었겠지만, 사실은 보호자인 나도 힘들었다.

먹는 것 보다 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10분의 쪽잠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몰려오는 잠을 이겨내고 남편의 약을 챙기며, 남편의 발밑에 누워 잠시나마 몸을 펴고 누울 수 있는 행복에 감사했지만 실은 나는 너무 힘들었다.

이번 그림에서 내가 보였다.

항상 그림자처럼 머물면서 그의 안위를 바라보면서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내가 보였다.

고단했을 나

밤새 무슨 일이 벌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나

그의 발밑에 누워 그의 발을 어루만지며 눈물 흘린 나

남편 옆에 누워 종알종알 이야기꽃을 펼치던 나

그림 속 검은 그림자는 마치 남편의 주변에 머물고 있는 나였다.

남편을 보내고 나는 아직 거실에 누워 잔다.

자기야,” 라는 환청 소리에 벌떡 일어나 거실 소파에 잠시 앉아 있곤 한다.

안방에 크게 차지하고 있는 내 침대에 아직 누워보지 못했다.

아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내 방 내 침대는 그냥 주인 없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다.

아프기 전 미리 바꿔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일까

조금 더 일찍 선택하지 못한 나의 게으름 때문일까.

침대는 침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인생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 선택 중 내가 한 선택이 잘한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있다.

혹시나 놓쳤을 나의 다른 한 선택에 대한 미련.

나는 그때 선택을 잘한 것일까?

잘한 것일까?

내가 선택을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한 선택을 믿고 끝까지 견뎌낼 뿐이다.

그리고 그 결정한 나를 믿을 뿐이다.

선택받지 못한 상황에 미련을 두지 말고 그때의 선택을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나에게 말해본다.

그대는

지금까지 잘했고,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 나갈 것이니

그대의 선택을 믿고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속삭인다.

*'살롱 드 까뮤'는 그림 감상과 글쓰기로 이어 가는 인문.예술 커뮤니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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