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cycle, 인생주기
"여러분들은 가족사진을 찍었습니까?"
아직 사진관을 찾아 가족사진을 찍은 적은 없다. 대신 2015년 어버이날을 기념하며 여행지에서 4대가 함께 담긴 가족사진이 있다. 9년 전의 우리들은 참 젊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렸다. 이렇게 가족사진을 보고 있으니, '인생주기'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인생주기(Life cycle)는 출생 시부터 사망 시까지 사람의 표준적인 가정생활로, ‘출생 → 성장 → 결혼 → 육아 → 노후’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가족사진 한 장에 인생주기가 보인다. 시기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태어났다. 우리 아이들은 성장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결혼과 육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부모님과 외할머니는 노후를 보내시고 계신다.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지며,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모두 같다.(그렇게 생각한다.)
Life, 오고 가는 곳
"응애~ 응애~" 생명이 태어났다. 첫째를 낳고 삼일 후 함께 집에 왔다. 두 명이 살던 집에 세 명이 살게 되었다. 둘째를 낳고 삼일 후 함께 집에 왔다. 세 명이 살던 집에 네 명이 함께 살게 되었다. 한 방에서 함께 자고, 거실이라는 공간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지냈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된 지금 거실은 나와 남편 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각자의 방 안에 있다. 자기만의 공간 속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나는 2005년 12월 결혼을 하며 고향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다섯 가족이 살던 집에는 네 명이 살게 되었고, 1년 뒤 동생이 결혼하면서 세 명, 남동생이 결혼하면서 엄마 아빠 두 분 만이 남았다.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은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시골이다. 이곳에 터를 잡고 농사하며 지내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삼남 일녀와 함께 살다가 모두 결혼시키고, 두 분이 지내셨다. 남동생이 7살 무렵,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때 당시 살고 계시던 집 옆에 새 기와집을 지으셨다. 작은 텃밭과 배나무, 사과나무, 대추나무 등 과실수도 심으시고, 수도관 뿐 만 아니라 펌프도 설치되어 있던 집이었다. 새 집에서 두 분은 알콩달콩 잘 지내셨다. 평생을 함께 할 거 같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혼자 지내셨다. 혼자서도 부지런히 농사일과 밭일을 하셨던 할머니, 일에 집중하느라 등 뒤에 있는 집이 불에 타는 것도 모르셨다. 순식간에 집은 잿더미가 되었다.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찾아간 엄마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으셨을까? 그 이후 할머니는 컨테이너를 이용해 간단하게 지은 집에서 여러 차례 넘어지시고, 아프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년 정도 혼자 사셨던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으로 떠나셨다.
광주광역시라는 도시에서 교도소 교도관을 하셨던 외할아버지는 전통과 서양식이 절충된 주택에서 외할머니, 이남 삼녀의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 모두 결혼시킨 후 두 분이 지내셨다. 다소 과묵하시고 엄격하셨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8년 정도 혼자 지내셨다. 3년 정도 손녀 세 명과 함께 살았다가 다시 혼자가 된 외할머니. 그 이후 이모와 이숙이 외갓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외할머니는 재개발로 인해 반평생 이상을 살아온 집을 떠나게 됐다. 외할머니는 큰 아들네(외삼촌 네)에 가셔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지내셨다. 아들 집이었지만 불편해하셨다. 결국 외할머니는 큰 딸네(나에게는 친정)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작은 오피스텔에서 1년 정도 혼자 지내셨다.(엄마가 아침저녁으로 함께 했다.) 우리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외할머니에게는 알츠하이머(치매) 병이라는 불청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사실 이 시기에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하던 나는 의심하는 게 치매 증상에 있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었다.) 노치원(어학사전에는 없는 단어로,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초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어르신들이 모여서 놀이, 운동, 인지 활동, 간식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불리는 노인주간보호 센터 이용도 계속하셨다. 하지만 점점 불평불만이 늘면서 그만두었다. (왜 그 노인은 그런지 모르겠다, 내 자리인데 자꾸 다른 노인이 앉는다. 등등) 외할머니는 거의 집 밖 외출을 하시지 않으셨다. 외삼촌 네에서 시작된 의심은 점점 더 심해지셨다. 하지만 인지능력은 그대로였기에 엄마와 다른 가족들은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하지 않았다. 밤만 되면 누가 집에 들어와서 약을 뿌린다며 현관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엄마는 두세 차례 119 구조 대원의 도움을 받았다. 배변도 제대로 해결하실 수 없으셨다. 결국 외할머니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아침에 일찍 가서 아침, 점심, 저녁까지 먹고 놀다가 9시 정도에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3년 전 추석에 만난 외할머니는 죽음의 문턱 앞에 계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른들(엄마, 이모들, 외삼촌들)은 외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들(나, 여동생, 남동생)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엄마가 모시면 안 돼? 엄마만 괜찮다면 우리들이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도울게. 명절 때 내려와도 불편해하지 않을게." 이 말을 들은 엄마는 "그럴까? 나도 마음이 안 좋아." 큰오빠 아래 큰 딸인 우리 엄마는 이렇게 외할머니를 모시고 아빠와 다시 세 명의 가족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 이 일로 나는 ‘집’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재개발을 향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평생을 살던 집을 떠나야 했고, 그 집은 허물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외할머니 자신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그곳에 혼자 살던 때보다 훨씬 더 크나큰 아픔과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계단 있는 한옥집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렇게 증손자들까지도 추억이 묻어있던 집, 나도 다시 한번 떠올리며 마음 한편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신 후 처음 만나던 날, 깜짝 놀랐다. 외할머니의 몸에 살이 붙고, 더 건강해지셨다. 내 이름을 크게 얘기해 주면 "애희~" 하면서 날 알아봐 주셨다. 우리 아이들까지 알아봐 주셨다. 지금은 아이들이 이름을 알려주면서 인사를 하면 "학교 다녀왔냐?",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 "가빈이? 가빈이는 노래를 잘 부르지. 노래 불러봐라." 이야기도 하신다. 그럼 증손자 가빈이는 "개골이 개골청~" 노래를 신나게 부른다. 노래가 끝나면 박수도 쳐 주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덕분에 친정에는 큰이모, 이숙, 외삼촌이 매주 오신다. 엄마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오빠와 동생을 위해 점심을 차린다. 우리 엄마는 확실히 K-장녀가 맞다. 엄마 아빠 둘만 살던 집에는 외할머니가 오시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는 집이 되었다. 둘만 살 때 보다 집 안은 더 따뜻한 온기를 품고, 가족들의 에너지는 햇살처럼 외할머니의 삶을 밝혀주는 것 같다.
Soul, 오고 가는 곳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고,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멈춘 '숨'들은 무덤 안에서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두 분은 모두 암이라는 독한 병에 걸리셨다. 엄마는 며느리로써, 큰딸로써 그분들을 보살피셨다. 하지만 모두 육신의 아픔을 뒤로 한 채 먼저 간 가족들을 만나러 떠나셨다.
"이~~쁘다!" 선한 눈빛으로 마지막 보내주신 할아버지의 미소를 기억한다.
"전 선생~~!" 믿음이 담긴 말을 건네주신 외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기억한다.
나에게는 시골이자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었던 집, 남동생 초등학교 입학 전에 지은 집,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이 삶이었던 할머니는 농사일에 집중하느라 등 뒤에 있는 집이 불에 타는 것도 모르셨다. 잠깐 사이 집은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다.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찾아간 엄마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으셨을까? 그 이후 할머니는 새로 지은 집에서 여러 차례 넘어지시고, 아프시다가 결국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애희야~ 애희야~"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 추운 겨울 다가오는 설날을 위해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그 물로 우리 삼 남매 목욕을 시켜주셨던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한다.
그들의 영혼이 은은한 달빛을 따라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우리 꿈속에서 만나요."
"가능하시면 날짜 정해서 따로따로도 만나요. 물론 함께 오셔도 좋고요."
글쓴이 - 전애희
현재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문화예술강사로 초등학교에서 수원문화와 연계된 예술활동 및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 창의융합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한 장르!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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