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윌리엄 오펜_런던거리의 창문

자유롭지 못한 몸

2024.06.04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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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윌리엄 오펜_런던거리의 창
윌리엄 오펜_런던거리의 창

자유롭지 못 한 몸 1

커다란 창문이 있는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여성은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다. 나도 생각해 보니 자유롭지 못 한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 기간과 교통사고로 병원에 갇혀 지내던 1년여의 세월이다. 내부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몸은 갑갑하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을 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요즘 한창 벚꽃이 만발이다. 학생들에게는 곧 시험 기간이 다가오는지라 벚꽃 시즌이라 쓰고 중간고사라고 읽는다고 한다.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끼는 대목이다. 난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는 때가 오면 학창 시절 창가에 기대어 창문 밖을 쳐다보던 기억이 있다.

5월의 중간고사 기간으로 기억된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아주대 근처에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로 존재하고 있다. 아주대 옆으로 난 언덕을 타고 올라가면 여우 골이라 불리는 숲속에 묻혀 있던 학교다. 숲속에 아까시나무가 많아 그 향기로움은 아찔할 정도였다.

오전에 서너 과목의 시험을 친 후 집에 가는 친구들과 남는 친구들로 분류가 된다.

난 남는 부류에 속했다. 남아서 공부한다고 시험을 잘 본 것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엔 책을 덮고 있는 아이도 아니었나 보다. 점심을 먹은 후의 교실 안의 햇살은 식곤증을 부르기에 최적이다. 조용한 공간에서 감기는 눈을 이겨보려 잠시 창가에 매달려 서 있곤 했다. 공부하다 이르게 집에 가는 친구들을 보고는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일찍 가는 친구들은 시험 범위까지 공부를 끝냈다고 나 혼자 착각을 하며 믿었던 모양이다. 안 하고 갔을 수도 있지 않은가.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내음

봄바람에 실려

나의 코끝을 간질이는 때가 오면

삼십여 년 전

따뜻한 봄 햇살 받으며

문제집 풀던

십 대의 나를 마주한다.

-김혜정

자유롭지 못 한 몸 2

1993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개학을 3일 남겨둔 날이었다.

학원에 다니던 나와 친구들은 저녁을 먹은 후였다. 수업 시작 전까지 남는 시간 학원 앞으로 산책하러 가는 중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원은 수원종합운동장 앞에 있었고 왕복 8차선 도로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은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 지나가는 차를 피해 중앙선에 서 있었다. 나는 여섯 명 중 제일 끝에 서 있었다. 왜 그때 나의 눈에 삐뚤빼뚤 오는 차가 눈에 뜨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지 않고 혼자 뒤를 돌아 뛰었는지도 모르겠다. 음주 운전자가 끌던 차는 우리를 보고 핸들을 틀었다. 내가 뛰던 방향과 일치해서 신체적 아픔은 혼자 감내해야 했다. 사고의 순간 나는 정신을 잃어서 알 수 없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사고를 목격한 후 대다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어야 했다.

떨어지는 혈압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중환자실에서 2주가량을 보내고 병실로 옮겨지면서 자유롭지 못한 몸이 되었다. 두 번의 수술 후 겨우 맞춰 둔 골반이 틀어질까 난 누워서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조심했어도 어디서 잘 못 된 건지 나의 골반은 다시 틀어졌다. 수원에서는 치료 가능성이 없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그때 나의 모습은 비참했다. 침대, 네 귀퉁이에 쇠 파이프로 기둥을 세우고 도르래를 달아 무릎, 뼈를 관통한 철사가 박힌 다리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두었다. 긴 추석 연휴가 있고 의사 선생님의 일정이 차 있어서 수술을 바로 할 수 없었다. 수술할 때까지 처치였다. 묶여 있는 다리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나의 병실 밖 풍경을 볼 수 있던 건 병실의 창문과 커다란 손거울이었다. 창문을 통해 낮과 밤을 알았고 날씨를 알았고 계절을 알았다. 거울로는 병실 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문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다였던 자유롭지 못한 나의 몸이었다.

자유롭지 못한 몸의 예술가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접한 위인전이 생각이 난다. 프리다 칼로라는 멕시코 화가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고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나처럼 큰 사고 이후 중증 장애를 갖게 된 예술가의 삶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사고의 아픔과 고통을 회복하고 현재를 살아 내고 있지만 그녀는 내 나이 즈음하여 생을 마감했다.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을 때를 기억 해 본다. 나는 손거울 하나를 들고 그 지루함을 떨쳐내는 너무나도 평범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끌어들여 붓을 들고 예술로 승화시키는 일을 했다. 거울이라는 물건을 통해 사람들의 표정 관찰이나 그날 거울로 살핀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면 좋은 작품으로 남았겠구나 싶은 아쉬움이 있다.

프리다 칼로가 죽었을 때도 옆에 놓여 있었다는 일기장을 보면 기록하는 습관의 삶을 보여준다. 기록의 마지막 페이지는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속마음을 느낄 수 있는 문장이었다.

검은 천사가 날아오르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그녀는 이 힘든 삶에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 안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빨간 수박 속살 안에 써넣은 “VIVA LA VIDA”

인생 만세, 프리다 칼로 당신의 삶도 만세.

*글쓴이 - 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김혜정 #살롱드까뮤 #그림에세이 #미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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