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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편지

나의 청소 일

청소 일의 기쁨과 슬픔

2024.03.20 | 조회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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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쓴편지

살살씀

며칠 전부터 청소 일을 시작했습니다. 연신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중 한 곳에서 매주 <하루 이틀> 방 청소를 하는 일입니다.

작은 방 청소는 만 오천, 큰 방 청소는 이만 원을 받게 되는데 일이 꽤 고되다 보니 딱 일한 만큼 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특히 기관지와 손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은 일입니다. 이 알바 덕에 한 주에 4만 원 정도의 용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지난 2년간 쉽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알바를 잘 찾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들은 돈을 벌어다 주었지만 제게 글감이나 영감, 에너지, 기력, 같은 것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빼앗겼던 것 같습니다.

반면 3년 전 이태원과 남양주, 두 곳의 술집에서 고된 노동을 한 경험으로 한 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소설의 배경과 이야기는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때의 술집과 같은 알바가 시급했습니다. 돈보다는 나에게 현재 없는 에너지를 채워줄 수 있는 일. 저는 이 청소 일이 바로 그런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청소 일을 하며 제가 생각보다 의외성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젊고 어리고, 작은 여자애가 '청소 일'을 한다니 의외의, 어쩐지 당차고 씩씩한 느낌. 그것이 좋아서 여기저기 약간 소문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동거인은 청소 일을 시작한 김에 메이드복을 선물로 사주겠다고 말했는데 그런 장난스런 놀림거리가 되는 기분도 좋습니다. 

그 밖에도 이 일에는 여러 장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규칙과 불규칙의 공존

손님이 빠지면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매 주 청소 스케쥴이 달라집니다. 11시에서 2시 사이 언제든 방문해 청소 할 수 있다는 규칙만 있습니다. 이러한 널널한 약속과 가변성이 좋습니다.

 

둘째, 사람 마주칠 일이 없음.

알바 공간에서 사장님과 직원들을 마주친다는 건 여러 단점을 내포하는 일입니다. 옷도 어쩔 수 없이 신경 써 입게 되고, 대인관계 미소를 만면에 장착해야 합니다. 일상적 '스몰톡'이라는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는 것도 스트레스입니다. 

 

셋째,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이 없음.

서비스직 알바를 할 때 손님이 없으면 '내가 지금 내 시간 까먹고 돈 벌고 있구나' 느끼게 됩니다. 노동력이 아니라 시간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느낌은 왠지 불쾌합니다. 최선을 다해 노동해 돈을 벌면 뿌듯함은 남게 되는데 시간을 물처럼 흘려 돈을 벌면 묘한 자괴감만 듭니다. 이 시간의 가치와 돈의 가치에 대해 따져보게 되기도 합니다. 

청소 일은 일을 끝내면 언제든 퇴근할 수 있기 때문에 잠깐도 허투루 쓰지 않고 일합니다. 청소를 끝내면 운동을 마친 것처럼 말끔해지는 기분이 있습니다. 내 몫의 일을 잘 끝냈을 때의 상쾌함.

 

물론 당연하게도, 돈을 버는 일에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겠지요. 무엇보다 슬픈 것은 한 시간에 내가 버는 돈의 액수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소비를 제한하고, 돈의 가치를 극대화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의식한다고 해서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아침에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결제창에 들어갔다가 나도 모르게, 마라톤에 나가려면 방청소를 4번이나 해야 한다, 라는 생각에 도달했고, 결국 결제창에서 튕겨져 나와 버렸습니다. 

 

노동 대비 버는 돈이 적어도, 그 돈 속에 나를 끼워 맞추고, 나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저는 약간의 돈만 벌고, 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성실히 단련해야 하는 걸까요.

'어떤 일을 하느냐'는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를 결정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무서운 지점인 것 같고요.

 

내 세상을 차단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와 일을 잘 연결해 나갈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을 하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계속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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