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두 번째 편지] "빌 에반스와 서툰 색소폰 연주"

2026.01.24 | 조회 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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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월 두 번째 편지로 돌아온 모래시계입니다.

작년 여름부터 재즈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재즈는 이어폰으로 듣기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왜 그럴까, 참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글로 써봤고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빌 에반스와 서툰 색소폰 연주'입니다. 여러 재즈 아티스트를 전전하며 다양한 앨범을 들어봤지만, 가끔 지칠 때는 귀에 익숙한 음악을 듣는 게 최고지요.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는 제게 있어 그런 음악입니다.

아무쪼록 사소하게 즐겨주세요.


빌 에반스와 서툰 색소폰 연주

코끝을 아리는 시린 공기가 도시 전체를 짓누르는 1월의 깊은 저녁이다. 한파를 알리는 재난 문자가 수시로 울리고, 보도블록 위에는 얼마 전 내린 눈이 녹지 못한 채 단단한 빙판으로 굳어 있다.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 속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입김을 내뿜으며 서둘러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새해의 들뜬 분위기도 잠시, 매서운 추위는 일상을 다시금 단조롭고 고요하게 침전시킨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소란으로부터 나를 격리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깊숙이 꽂는다.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이다 문득 손끝이 멈춘 곳은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 앨범. 첫 곡인 'My Foolish Heart'의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시작되자마자 묵직한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이 뒤를 잇는다. 하지만 그 소리가 선명해질수록, 마음 한구석에서는 형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어색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 어색함은 소리의 질감이 나빠서 생기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요즘의 기술은 악기 소리를 지나치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탓에, 연주자의 거친 숨소리나 피아노 페달을 밟는 미세한 마찰음까지도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처럼 재현해낸다. 하지만 재즈라는 장르는 본래 누군가의 귓속말이 아니라, 넓은 공간의 공기를 진동시키며 태어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재즈는 연주되는 악기 그 자체보다 그 악기들 사이를 메우고 있는 빈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운 사람들의 나른한 시선과 탁한 공기를 먹고 자라는 존재인 것이다.

이어폰이라는 폐쇄적인 통로를 통해 들려오는 재즈는, 마치 드넓은 들판을 달려야 할 야생 말을 비좁은 우리 안에 가두어 둔 것 같은 부자연스러움을 풍기는 것만 같다. 1월의 칼바람을 피해 들어온 지하철의 밀폐된 공기 속에서, 이토록 개방적인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문득 예전에 방문했던 어느 재즈 클럽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은 낡은 나무 탁자와 적당히 때가 탄 가죽 소파, 그리고 누군가의 낮은 대화 소리와 술잔이 부딪치는 금속음이 음악과 뒤섞여 흐르던 공간이었다. 공교롭게도 빌 에반스의 이 앨범 역시 1961년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녹음된 실황이다.

그곳에서의 음악은 공간의 배경이 되고, 공간은 음악의 일부가 되어 서로의 경계를 느슨하게 허물고 있었다. 연주 사이사이에 섞여 들던 관객의 가벼운 기침 소리나 발소리마저도 하나의 리듬으로 수용되던 그 느슨함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들었던 이름 모를 음대생의 색소폰 연주가 이어폰으로 듣는 명반의 완벽한 녹음보다 훨씬 더 '재즈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재즈를 이어폰으로 듣는 행위는 타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에 허락 없이 발을 들여놓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재즈의 즉흥 연주는 연주자들 사이의 치열한 대화이자 교감인데, 이를 이어폰으로 듣는다는 것은 그들의 은밀한 대화를 도청하는 듯한 민망함을 안겨주는 듯하다. 사적인 소통이 공적인 공간으로 흩어지지 못한 채 오직 나의 귀에만 박힐 때, 음악은 풍경이 되지 못하고 날카로운 정보가 되어버린다. 음악과 나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법이다.

외부의 소음까지 통제하려는 현대인의 욕망이, 어쩌면 이 작은 이어폰 속에 집약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이어폰은 세상을 거부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어폰을 꽂는다. 나만의 작은 진공 상태를 만들어 세상으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재즈 본연의 문법과는 조금 어긋날지라도, 이 어색함을 견디며 얻어내는 짧은 위로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에게 이어폰은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는 가장 가느다란 방어선이자,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가냘픈 신호기이기도 하다. 1월의 한파 속에서도 우리는 저마다의 주머니에 담긴 작은 선율에 의지해 각자의 섬으로 항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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