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 번째 편지]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크랜베리 맥주"

2026.01.10 | 조회 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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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모래시계입니다. 어느덧 새해가 밝았네요.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윽고 슬픈 외국어』를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저 또한 외국어에 둘러싸여 있던 순간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고요. 작년 이맘때쯤, 브뤼셀에서 보낸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혼자 들어간 펍, 시끄러운 음악,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 있던 저녁이었지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크랜베리 맥주'입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던 시간에 관한 내용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크랜베리 맥주

그날은 브뤼셀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다음 날이면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해야 했고, 그 사실은 하루 종일 나를 느슨하게 만들고 있었다. 더 이상 관광객처럼 부지런히 움직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쉬고 싶지도 않았다. 여행의 끝자락에서는 늘 이런 상태가 된다. 몸은 아직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느낌이다.

저녁 무렵, 그랑플라스를 지나 좁은 골목의 펍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예상보다 훨씬 큰 소리가 밀려왔다. 프랑스어가 가장 먼저 들렸고, 그 뒤를 네덜란드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 위로는 잘 알지 못하는 현지 음악이 꽤 큰 볼륨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용히 앉아 맥주를 마시겠다는 생각은 입구에서 바로 수정됐다. 이곳은 (당연하게도) 조용함을 기대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적어도 적당히 집중할 수는 있을 줄 알았건만.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다 일행이 있었다. 둘이거나 셋이거나. 어떤 테이블은 꽤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유난히 눈에 띌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혼자라는 사실이 굳이 설명될 필요가 없었다. 그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맥주를 주문했다. 메뉴판에는 갖가지 맥주가 있었고, 각각 나름의 이야기가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걸 하나하나 이해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저 크렌베리 맥주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와 그걸 골랐다. 색부터 조금 낯설었고, 한 모금 마시자, 예상보다 신맛이 강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두세 모금 지나자, 굳이 평가하지 않게 됐다. 여행 중에는 모든 선택이 훌륭할 필요는 없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사람들의 말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나는 그중 어떤 문장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말의 의미 대신 웃음이 먼저 들렸고, 잔이 테이블에 내려앉는 소리와 음악의 리듬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언어는 이곳에서 설명서라기보다 배경음악에 가까워 보였다. 알아듣지 못해도, 분위기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우리는 보통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긴장하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이해하지 못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밤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날의 고독은 특이했다. 외롭다고 말하기에는 지나치게 안정적이었고 조용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불편하지 않은 고독’ 정도였으리라.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금방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는 그 상태를 굳이 밀어내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도수가 조금 높은 맥주 두 잔을 비우고 밖으로 나오면 밤공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펍 안에서 흘러나오던 소음은 문을 닫는 순간 깔끔하게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고요 속에서 나는 그 소리를 굳이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다른 도시로 갈 예정이었고, 이 밤은 이 도시에 그대로 두고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돌아보면, 그 저녁이 좋았던 이유는 꽤 단순하다. 나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의미를 해석하지 않아도, 감정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는 자주 의미를 찾으려 한다. 이 장소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그날 밤 펍에서 어떤 걸 느꼈는지 묻는다면, 그런 질문이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말들이 쌓여 있었고, 그 위에서 나는 그저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누군가는 허탕 치고 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가끔 여행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기보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잠시 허락해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어본다. 브뤼셀의 마지막 밤은 내게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브뤼셀은 충분히 꽤 오랜 기간 기억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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