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4월입니다. 겨우내 얼어있던 몸과 마음을 조금씩 녹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차오르네요. 하지만 마음만 앞서 그르치게 될까 봐 작은 실마리 하나하나 풀어가려고 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제는 '시선'입니다. 자신이 보는 것을 이해하려면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는 과거의 잔상이 남아있는 이 시선을 통해 현재의 저를 알고 싶습니다.
은서
< 응시 >
어느 날부터 누군가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퇴근길 골목 어귀에서. 신호등 건너편에서. 우리 집 앞 가로등 밑에서.
어떨 때는 젊은 남성으로, 어떨 때는 중년 남성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대체로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비틀비틀 찾아오지만, 가끔은 종이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찾아온다. 종이봉투 속에는 어렸을 때 엄마 등에서 잠들기 전에 고래고래 울다가도 입안에 한 조각 넣어주면 순식간에 눈물을 그쳤던 군밤이 들어있다. 그 달콤한 냄새 때문일까. 서로를 스쳐 가는 그때, 그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는 눈 마주칠세라 주변 시야로 훔쳐볼 뿐이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그 각기 다른 모습들이 하나의 사람임을.
나는 지금 시장 골목, 꽈배기를 파는 분식집 안 테이블에서 그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요즘 많이 바빠? ”
“ 똑같지, 뭐. 엄마는 장사가 안되고, 나는 공부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오네. 오빠는 요즘 맨날 사고만 쳐. ”
“ 바쁘구나... 그래도 아빠는 사랑하는 딸 얼굴 자주 보고 싶은데. ”
“ 아빠 나 사랑해? ”
“ 당연하지. 나는 세상에서 우리 딸을 가장 사랑하지. ”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라 자신이면서. 그래서 그렇게 자신의 인생이 더 소중하다며 매몰차게 날 버리고 갔던 거면서. 당신 옆에 있는 술, 그 술잔을 들고 있는 당신이 얼마나 두려운지 당신은 끝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 응, 알겠어. 나 바쁘니까 먼저 갈게. 나 끝나고 알바 해야 해. ”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와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분식집을 지나쳐가면서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혹여 당신의 외로움이 나에게 옮을까 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젖은 눈꺼풀이 무겁지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날 보고 싶다는 말만은 진심이어서 이렇게 날 찾아오는 걸까 아님, 내가 그 남자를 찾아가는 것일까. 당신이 나에게 못다 한 말이 있는 걸까 아님, 내가 당신에게 못다 한 말이 있는 걸까.
나는 당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귀를 닫지만, 밤마다 당신을 꿈속으로 불러낸다.
나도 당신을 사랑했을까. 혹은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었을까.
나는 당신을 사랑할까 혹은 당신의 사랑을 받고 싶을까.
너무 예전 일이라, 증오에 가려 당신을 사랑했던 사실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질문하던 나의 물음에 오히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는 것까지 말이다.
엄마와 나는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리 내어 불렀다. “ 그 사람 나를 보아도 나는 그 사람을 몰라요.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 ”
점점 목이 메어오고 다음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도, 우리는 돌림노래처럼 목이 쉴 때까지 그 노래를 불렀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 그 사람은 이미 떠나갔음에도.
지원
안녕하세요 지원입니다.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나는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30일 중 28일은 운 것 같네요.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지만 취업 준비의 불안함, 두려움이 제 안에서 증폭되어 눈물이 아주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이것 참 지난하고 고된 취준의 과정입니다. 레터를 통해 이런 이야기들을 눈치 안 보고 맘껏 쓸 수 있다니 기뻐요.
이 시기에도 잘 헤쳐나가려면 시선이 중요해요. 시선 이면의 관점과 태도가 필요하죠. 저는 운동을 싫어하던 사람이었는데요! 작년 10월 정도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운동을 하면 태도가 바로 서거든요. 바로 선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잠깐이지만 심지가 곧은 사람이 된다는 거에요. 저는 운동을 하면 그렇더라구요?
지난 달에는 수영, 요가, 러닝을 했어요.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이야기가 삶에도 도움이 되더라구요. 너의 속도로 가야해, 멀리 떨어져서 너를 봐. 이런 문장들이 제겐 콕콕 박히더군요. 나는 내 속도로 가고 있는가? 수없이 비교하고, 또 비교하고. 취준은 너무 괴로워요 으악. 누가 나 좀 살려줘. 그러나 다들 이렇게 버티며 나아가는 거겠죠.
말하기 무섭게 오늘 인턴 면접에서 합격을 했어요. 인턴 붙는 것도 왜이리 어려울까요. 취직은 또 왜이리 어려울까요. 이런, 푸념만 늘어놓게 되네요. 면접을 보고 스스로 큰 아쉬움이 남았어요. 그래서 메일로 다시 제 마음가짐과 장점들, 추가 이력서를 함께 보냈어요. 덕분인지 아닌지 좋은 결과가 있어 다행입니다. 이제 집을 서울에 구할일만 남았어요. 다음 레터면 어려운 서울집 구하기 미션도 클리어하고 돌아올텝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레터는 은서와 지원 모두 쓰는 스타일이 각양각색이라 일관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맛보실 수 있어요. 모쪼록 모두 평안한 하루의 마무리가 되시기를 바라며, 다음 레터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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