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티 런던은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공존하는 재미있는 도시예요. 그래서 늘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이죠. 그런데 오늘은 모두가 찾곤 하는 전형적인 관광지가 아닌, 디자인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를 소개해 드리려 해요. 런던 첼시(Chelsea)에 위치한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입니다.
첼시와 갤러리
많은 사람들이 첼시는 ‘런던의 강남’이라고들 해요. 그만큼 런던의 여러 동네 중에서도 부촌에 속하죠. 하지만 실제 첼시를 방문해 보면 강남보다는 이태원이나 한남동 정도의 느낌에 가까워요. 화려하고 상업적인 느낌이 강한 동네가 아니라, 고급스럽지만 모던하면서도 어딘가 한적하고,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고품격 문화를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러한 배경에는 런던의 유명 아트 스쿨인 '첼시 예술대학', ‘슬론 스퀘어’라 불리는 지역, '런던 전위예술의 중심지' 등과 같은 키워드가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공간, 사치 갤러리가 함께 합니다.
그래서인지 사치 갤러리까지 가는 첼시의 거리는 자꾸 발을 멈추게 해요. 굳이 표현하자면 ‘클래식 모던’ 콘셉트에 가까운 분위기와 스팟들이 줄이어 있거든요. 그래서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듯, 디자인과 예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들이라면 이 거리 자체부터 이미 갤러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거예요.
그렇게 느린 걸음을 하다 보면, 어느새 런던 특유의 검은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초록 잔디와 높진 않지만 옆으로 긴 한 건물을 마주하게 돼요. 그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사치 갤러리입니다.
기안84와 송민호가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할 수 있었던 이유
사치 갤러리는 광고계의 유명 인사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가 세운 현대 미술관이에요. 1985년 문을 열었죠. 갤러리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는 예술가들을 다수 소개해 왔는데요. 특히 신진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주목했어요.
그래서 사치 갤러리를 실제 방문하여 처음 건물에서부터 받는 영감은 클래식함이지만, 내부에 들어가 작품을 마주하면 굉장히 모던한 작품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돼요. 내셔널갤러리, 런던 박물관과 같은 국립 미술관과 달리 사치갤러리는 현대 미술을 다루는 사립 미술관으로서, 런던과 영국 예술계의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 주죠.
그래서 현대 미술계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치갤러리에 작품을 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해요. 높은 수준의 전시 조건들을 통과해야 함은 물론, 사치 갤러리만의 브랜드 이미지와도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던) 기안84나 송민호와 같은 작가들이 사치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는 것은 먼 한국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일에 속해요. 사치 갤러리, 그저 K컬처의 인기나 작가의 주목도 정도로 전시를 열어줄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요. 전시의 주제와 주체가 K컬처와 관련이 있었지만 기안84나 송민호가 한 명의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전시라 할 수 있어요. 사치 갤러리를 한 번이라도 방문해 봤거나 조금이라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사치 갤러리를 경험하는 방법
지금까지 이야기 나눈 것처럼 사치 갤러리는 갤러리 공간 바깥인 첼시라는 지역의 여행과, 갤러리 건물 및 작품, 그리고 그곳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들을 순차적으로 탐닉해야 해요.
도장 깨기 하듯 방문한 것 자체에 목적을 두고 무조건 많은 곳을 가고자 하는 여행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겐 잘 맞지 않는 여행지일 수 있어요. 외부 마을, 해당 공간, 그리고 작가의 세계라는 세 공간을 모두 천천히 이해하며 느껴야 제대로 된 갤러리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바로 그 관점을 기억하고 사치 갤러리를 여행하길 추천해요. 단순히 갤러리만 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마을이 주는 경험과 도착하고 난 후에 처음 만나는 갤러리라는 공간, 그리고 그 안을 채우는 작품과 작가의 세계 3단계를 모두 누려야 진정한 런던에서의 사치 갤러리 ‘여행’이라 할 수 있어요.
런던의 또 다른 유명 현대 갤러리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또한 비슷한 여정을 품고 있어요. 외부에서 갤러리 건물까지를 잇는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를 건너는 것부터 그곳의 경험으로 여겨지곤 하죠. 즉, 갤러리라는 예술 공간은 그 주변과 그 안에서 전시되는 작가의 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연계된 경험의 여정’을 제공해요.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여행의 소재
디자인과 예술에 관심이 많아 그 주제로만 한 도시를 여행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만큼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소재는 여행이라는 행위의 목적에도 잘 부합하는 소재이기 때문이에요. 그를 통해 그 도시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식도락 여행 못지않은 문화 경험의 좋은 방법입니다.
런던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다른 곳은 몰라도 사치 갤러리만큼은 꼭 그 3단계의 과정으로 느껴보세요. 그저 작품만 보고 나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디자인 및 예술 여행이 될 거에요.
이런 분들께 이 뉴스레터를 강추합니다!
+ 공간과 지역의 관계가 알고 싶은 분들
+ 브랜드로서의 갤러리가 궁금한 분들
+ 디자인, 예술 여행의 목적지를 찾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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