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기 좋은 도시 경주, 그중에서도 많은 여행객들이 꼭 가야 할 코스로 찾는 황리단길의 ‘제로 스페이스 경주’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혹시 너무 유명한 관광지인 황리단길에, 그것도 이미 서울에서도 유명한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퍼제로(ZERO PER ZERO)’의 매장이라니, 뻔히 알만한 디자인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으신가요?
황리단길의 제로퍼제로
브랜드 이름은 잘 몰르는 사람도 그림체를 보면 ‘아!’하게 될 만큼 어느새 우리 생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 브랜드 ‘제로퍼제로(ZERO PER ZERO)’.
제로퍼제로는 자연스럽게 그려진 검은 테두리에 색을 채워 넣어 사람, 동물, 도시 등을 따뜻하게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이와는 스타일이 사뭇 다른 노선도 일러스트레이션(‘City Railway System’)시리즈로 유명해요.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이 만나 다양한 소품으로 재탄생한 제로퍼제로는 진솔, 김지환 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는데요.
아내인 진솔 디자이너는 검은 테두리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남편 김지환 디자이너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주로 그리지요. 네, 그래서 제로퍼제로가 하나의 브랜드 아래 다르지만 신묘하게 조화로운 두 가지 스타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선보일 수 있는 거예요.
이러한 제로퍼제로는 서울 망원동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어요.
제로퍼제로가 운영하는 매장 ’제로 스페이스(Zero Space)’도 망원동에 있죠. 이미 검색창에 ‘망원동’, ‘가볼 만한 곳’을 치면 꼭 검색될 정도로 유명해요. 그런데 오늘은 그 망원점 말고, 작년 초가을 경주에 여행 갔다 우연히 만나 더욱 반가웠던 ‘제로 스페이스 경주’를 도시 디자인 여행 코스로 소개할게요.
제로 스페이스가 경주에 매장을 연 이유
경주는 어릴 적 방문한 후 처음으로 다시 가는 곳이라, 다른 여행자들을 따라 일단 황리단길부터 찾았어요. 다들 가는덴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내심 언젠가부터 조금이라도 뜨는 골목이면 쉽게 붙이곤 하는 별명 ‘OOO길’의 패턴을 가진 곳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왠지 들리는 이야기들보다 거품이 많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그곳은 기대보다 훨씬 더 범위가 넓고 알차면서도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가보기도 전에 일종의 고정관념을 가졌던 제가 부끄러울 정도였죠.
평소의 제 취향을 생각하면 조금은 뜬금없지만 어디선가 곧 공주님이 자다 일어나 나올 것 같은 샤랄라 콘셉트의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한정식을 경주만의 색을 더해 모던하게 해석하는 레스토랑에서 점심도 즐겼어요. 날씨는 또 왜 그리 적당하고 좋은지,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부른 배로 황리단길 구석구석을 산책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조용한 골목, 갑자기 너무나 익숙하지만 한편으론 색다른 한옥 소품숍이 나타났어요. 바로 제로 스페이스 경주였어요. 방문하기 전 그리 많은 리서치를 하지 않았던 저는 생각지도 못한 제로 스페이스를 그곳에서 만나 더욱 반가웠죠.
입구부터 마당을 지나 건물 안까지 이어지며 세워져 있는 스탠딩 일러스트레이션 패널들은 경주라는 도시의 가지가지를 제로퍼제로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고 있었어요. 경주하면 상징되는 문화재부터 제로퍼제로만의 캐릭터까지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패널들이 발길을 한옥 안으로 안내했죠.
문 앞에 놓인 발매트에서부터 이곳이 경주를 담은 제로퍼제로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매장은 따뜻한 제로퍼제로의 그림과 소품들로 가득했어요.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여 감탄을 내뱉으며 하나하나 구경을 하며 자연스레 매장을 돌보는 매니저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밝게 웃으며 매장과 제로퍼제로에 대한 애정 어린 안내를 해주시는 매니저님은 다름 아닌 두 디자이너 부부 중 남편인 김지환 디자이너의 형수라 하셨어요. 본래 본인도 서울에서 은행을 다니다 몸이 안 좋아져 있던 차, 시동생 부부가 문을 연 경주 매장을 맡게 되어 내려오게 되었다 하셨죠. 매니저님의 시동생 부부에 대한 자랑스러움은 대화의 내용뿐 아니라 목소리와 눈빛에서까지 진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혹시 친동생 부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어찌나 두 부부의 작품과 삶 자체에 대한 존경심과 자랑스러움을 표하시던지, 너무나 보기 좋았죠.
그러한 매니저님의 애정과 노력 덕분인지, 제로퍼제로는 경주라는 로컬의 색깔과 조화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는 느낌이었어요. 그저 서울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똑같이 중복판매 하는 것이 아니었죠. 그곳만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과 그를 기반으로 한 제품들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마련되어, 기존의 제품들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특유의 로컬 소품이 갖는 ‘어설픈 지역화’는 찾아볼 수 없게 제로퍼제로화 되어있었죠.
경주의 문화재와 역사적인 랜드마크들마저 제로퍼제로만의 따뜻하면서도 귀여운 색감과 디자인으로 재해석되어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디자인이라 희소가치 또한 높았고, 여행의 순간을 기억하게 해 주면서도 일상적으로 기분 좋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이들이었기 때문이에요.
하나의 이미 정체성이 명확히 정립된 브랜드가 특정 지역으로 진출해 그곳의 지역색과 브랜드만의 색깔 사이에서 균형 맞추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저 그곳의 아이템을 모티브로 디자인을 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현지화되면서도 고유의 색은 유지해야 하고, 기존의 아이템들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하니까요. 물론 소비자들이 사고 싶게 하는 디자인 가치와 완성도 또한 중요하고요.
추후 제로퍼제로는 왜 경주라는 지역색 확실한 도시에 매장을 문 열어 그곳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까지 깊이 파고들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저자가 내린 결론은 경주라는 뚜렷한 지역색을 가진 도시를 기점으로 제로퍼제로가 늘 기반으로 해온 ‘도시의 공간’이라는 주제를 계속 확대해 나가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었어요.
실제 제로퍼제로는 그동안 여의도와 같은 서울의 특정 지역, 남산 N타워, 한강 등과 같은 도시 속 공간들을 주제로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여 왔어요. 즉, ‘Earth, Travel, Love’라는 브랜드의 슬로건과도 일맥상통하는 행보가 아닐까 싶어요.
디자이너의 인생이 녹아있는 디자인
제로 스페이스 경주를 채우는 디자인은 ‘사람, 동물, 지역’을 주제로 한 다양한 소품들이 대부분이에요. 거기에, 오래전부터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수입하고 있는 네덜란드 캐릭터 ‘미피(Miffy)’ 제품들이 함께해요.(망원동 매장엔 아예 ‘미피 룸’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빈티지 미피 캐릭터까지 접할 수 있어요.) 1955년부터 우리 곁에 있어온 캐릭터이지만 제로퍼제로의 세상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죠. 미피를 통해 브랜드의 색깔을 색다른 관점에서 또 한 번 경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곳에서 그 어떤 디자인보다 특히 눈여겨볼 상품은 포스터라 할 수 있어요.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제로퍼제로는 어디에 놓아도 따뜻한 분위기를 내어 많은 사랑을 받는 포스터로 인기예요. 브랜드 시그니처 디자인도 그렇지만, 다채로운 타 브랜드들과 협업을 통해 그곳에 맞는 포스터들도 제작해 왔죠. (제가 다니는 PT센터 곳곳을 장식하는 포스터도 제로퍼제로의 그림이에요.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화 했죠.)
그런데 이곳의 포스터는 그냥 보아서는 한 장의 그림으로 해석되고 말기 쉬워요. 그 안엔 디자이너 부부의 삶의 흐름과 관련된 그림들이 섞여있는데 말이죠.
2024년 현재의 제로퍼제로 포스터를 보면 유독 가족이 많이 등장해요. 동물도요. 네, 두 디자이너는 그냥 사람을 그리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의 인생 그래프를 자연스레 스토리텔링화 하여 흐르는 세월과 함께 포스터에 담아내고 있죠. (경주점의 매니저님 설명이 아니었으면 저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에요!) 물론 그 외의 주제들 또한 다루고 있지만 그러한 보이지 않는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제로퍼제로의 포스터들을 감상하고 선택할 때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을 줍니다.
그곳에 가면 꼭 보아야 할 제품(작품)
마지막으로 이곳의 숨은 보석을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그것은 바로 매장 천정 쪽에 걸려있는 몇 점의 그림 액자예요. 그 그림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요. 바로 두 디자이너가 초창기 여행을 다니며 그곳에서의 인상이나 잔상들을 회화적으로 그린 작품들이에요. 복사본도 아닌 진본으로, 두 디자이너의 여행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세월이 흐르며 변화해 온 그림체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요. (이 또한 매니저님의 깨알 같은 안내로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로 스페이스 경주의 디자인 여행을 모두 끝내고 나면 친절한 도슨트(매니저님)가 이끄는 어느 갤러리를 돌아본 느낌이 들어요. 그저 단순히 여행지에서 만난 소품 상점을 다녀온 것이 아니라 제로퍼제로라는 미의 세계를 여행한 느낌이 들죠.
그 지역의 이야기를 자기만의 색깔과 스토리텔링으로 담아낸 매장, 아니 갤러리 제로 스페이스 경주를 꼭 들러보세요. 황리단길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이런 분들께 이 뉴스레터를 강추합니다!
+ 브랜드가 로컬의 색과 어울리는 법이 궁금한 분들
+ 디자인의 로컬라이징 예시가 알고 싶은 분들
+ 디자인을 주제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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