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넘어지며 달리는 법을 배웁니다(2화)

가장 느린 거북이 4화

2022.10.28 | 조회 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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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ROUGH

당신과 나의 이야기

구독자s님 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이어 글을 연재하게 된 임필통 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저희 팀의 성장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아직은 멀리 가기 위한 도약이지만, 지금 한 번의 힘찬 발걸음이 언젠가 도착할 결승점의 첫 번째 발걸음이 될 거란 사실에 매일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구독자s님은 어떠신가요? 혹시 넘어지고 부딪히며 달리는 법을 배우고 계시나요? 가장 큰 배움은 승리했을 때보다 패배했을 때 일어난다는 말이 있듯이 패배는 단순 승리하기 위한 디딤돌일 뿐이랍니다. 넘어진 본인은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런 아프고 힘든 순간이 있기에 결국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길 바라며 <가장 느린 거북이> 4화,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팀은 그렇게 넘어지고 패배하며 성장하고 있었습니다잭과 콩나무의 나무처럼 빠른 성장도 아니었고 때론 더디기도 했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올해 저희 팀의 목표는 하나였습니다. 전국체육대회에서 웃으며 경기장을 나오는 것. 이기든 지든 후회 없이 1년 치의 설움을 쏟고 나오기로 약속했고 그렇게 저희는 단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현아 킥 막히는 거 두려워하지 마. 득점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공 눌러만 줘도 충분해. 자신 있게 공격해! ”

가장 어른스럽고 생각이 많은 공격수 다현이는 가끔 공격이 막힐 때마다 당황할 때가 있었지만 늘 듬직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선수였습니다.

 

헤이! 초이! 다음 플레이 생각해놔! 너한테 오는 공 책임감 있게 처리해!”

좋은 운동신경을 타고난 선영이는 좋은 운동신경에 비해 주위가 약간 산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집중력이 경기에 나오는 순간 10년차 베테랑 선수급의 퍼포먼스도 보여주는 멋진 친구였습니다.

 

승은아 공 끝까지 따라가야지! 언니들한테 너무 의지하지마! 확신 갖고 자신 있게 플레이해!”

가장 운동을 늦게 시작한 승은이는 2년 차에 주전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맡았습니다본인에게 욕심이 많은 승은이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힘들다는 걸 알고 있지만 늘 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이따금 연민인지 동정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성실한 친구였습니다.

 

전국체전 경기 전날 마지막 훈련이 끝난 후, 아이들의 눈빛에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습니다총칼 없는 전쟁터, 상대를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가 내쳐지는 잔인한 승부. 게다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수능만큼 중요한 운동부의 전국체전이라는 대회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이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마지막 안부를 건네는 일, 그뿐 이었습니다.

 

고생했다는 말은 경기 끝나고 해줄게, 지금까지 잘 해냈어. 다른 생각은 넣어둬. 우리 이 며칠의 대회를 위해 지금껏 그렇게 울고 웃고 땀 흘린 거야. 이기란 소리 아니야. 져도 좋아, 대신 질 때 지더라도 어떻게 질 것인지 미리 정해두자. 경기가 끝났을 때 눈곱만큼의 후회도 남지 않게 플레이 하고 멋있게 웃으면서 나오자.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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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이들은 경기에 모든 힘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첫 경기 상대는 전통 강호의 부산체육고등학교. 늘 저희와 준결승이나 결승에서 만나는 팀인 만큼 어려운 경기에 마주했습니다. 부산체고와 저희는 장군 멍군(장기를 둘 때, 상대편의 왕을 잡으려는 수와 그 수를 막는 수를 서로 주고받음을 이르는 말로,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여 승부를 가리기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힘을 겨루다 3번째 세트에서 힘겹게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경기에서도 아이들은 생각 보다 떨지 않고 자신 있게, 그리고 여유 있는 플레이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 만난 한림디자인예술고등학교는 강한 팀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 덕에 저희를 적잖이 당황시켰고, 그렇게 또 3번째 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힘겹게 결승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대회에서의 마지막 경기인 결승전이 시작되었습니다.

 

플레이를 외치는 주심의 콜 소리, 승은이가 서브로 포인트를 올리자 일제히 풍선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필승을 외치던 학교 응원단의 응원 소리, 이미 쉬어버린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주던 지도자들의 애절한 목소리, 지기 싫어 연거푸 파이팅을 외치던 다현이와 선영이와 승은이의 애처롭던 장면 모두가 마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대회. 마지막 경기의 마지막 3세트에서 결국 저희는 창문여고에게 1등의 자리를 내어 주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모두 경기장에 누워 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격하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처음 대회에 나갔을 땐 져도 웃으며 경기장을 나오던 아이들이, 웃고 나오자는 경기장에서 울음을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흘린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무엇이 이토록 의욕 없던 아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적셨을까요아이들의 슬퍼하는 눈물을 보니 저는 이상하게도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이만큼의 성장을 이뤄낸 아이들에게 감사했고, 멋진 명장면을 만들어준 아이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제법 감정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하는 저였지만, 쌀쌀한 가을 저녁 혼자 충분히 생각에 잠기게 할 정도의 진한 여운을 아이들이 저에게 선물해준 셈이었죠그렇게 저희는 눈물 젖은 2등의 타이틀을 안고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언제 울었냐는 듯 아이들은 다시 예전처럼 떡볶이를 찾기 시작했고, 아프다는 핑계로 훈련에 빠지려고 잔머리를 굴리곤 하며 친구들과 떠난 수학여행에서 발견하지 못한 재미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 마음이 약해질까 두렵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충분히 변화했고, 저에게는 믿음이 생겼거든요. 아이들도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걸요.

 

진한 여운이 제법 가라 앉은 요즘이지만 저녁 노을 지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 아이들이 없는 고요한 훈련장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아이들만 저로 인해 성장한 것이 아니라, 저도 아이들로 인해 성장했다는 것을요.

그렇게 우리는 때론 넘어지며 달리는 법을 배워간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는 요즘입니다. 저와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패배해야 어른이 되어갈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단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아프면 아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충분히 울고 슬퍼하되 결국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앞으로 정진하는 저와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니 꽤나 흐뭇하고 멋진 장면들이 상상이 되네요. 

 

이 글을 빌려, 너무나도 멋진 장면을 선물해준 우리 팀원 모두에게 감사의 박수와 힘찬 응원을 보내려 합니다. 구독자님들도 올 한해 행복한 기운으로 마무리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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