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사이드에 서서🌊

2023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데요, 솔직히 말해 저는 다시 돌아간다 한들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밖에요. 오늘은 2023년 첫 글감인 '화두'를 가지고 요즘의 제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쓰고 나니 조금은 후련한 기분이 들었어요. 여러분도 그러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풀 사이드에 서서 

글: 이레네

※풀 사이드Pool side: 수영장 밖 가장자리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중 '풀사이드'라는 단편에 나오는 남자 인물은 서른다섯 살을 자신의 반환점으로 결정한다. 수영선수 생활을 오래 한 그에게 있어 '반환점'의 의미는 분명하고도 중요했다. '이것으로 적어도 반은 끝났다'는 것. …그는 남은 여정을 세분화하고, 의지 또한 세분화한다. 사물이 아무리 거대하고 막막할지언정, 분명한 형태에 대한 인식이 있다면 전력으로 끝을 향해 내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하루키 소설 속 인물에 빗대면 내 인생의 '전환점'에 섰다. 일흔여섯 까지만 살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자각하지 못한 사이 벌써 전환점을 돌아버렸다고 생각하긴 싫고, 그렇다고 몇 년 후를 기약하는 것도 지쳐 그렇게 정해버렸다. 나는 인생의 전반부를 돌아보며 후반부를 준비하는 시기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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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후반부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전반부는 (각자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것들이 많았다. 태어나니 부모님이 그랬고(?), 두 분의 결정에 많은 것이 영향을 받았으며, 입시, 졸업, 취업 등 좁은 선택지 안에서 주어지는 미션들을 클리어하기 바빴다. 그러나 후반부는 다르다. 여전히 내가 어떻게 손쓸 수 없는 불가항력의 부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무슨 향을 지닌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무얼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질문은 끝이 없고, 정답은 모르겠고, 남은 날들은 막막하다. 그럼에도 한번쯤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이고, 또 그럴 타이밍인 듯 싶다.

이런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냈다. A는 건강이 최고라며 일단 하루에 스쿼트를 백 개 씩 하라고 했고, B는 칠십여섯까지 사는 게 상상만으로도 지겹다며 생각을 거부했으며, 얼마전 쌍둥이를 출산한 C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게 인생 최종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동네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 다른 영법으로 삶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점에서 묘한 위로를 얻었다. 때로 아득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너무 짧다 느껴지는 이 삶에서 단지 ‘존재’만으로도 용기를 주는 친구들이 있단 사실에. 후반부를 헤쳐나갈 뭉근한 힘을 얻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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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시간 참 빨랐다. 죽고 싶을 만큼 불행하고, 실패에 몸서리치고,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인연들에 참 많이도 기운 빼며 살았다. 자유형으로 쭉쭉 나아갔다면 좋았겠지만 개헤엄이든 바닥을 딛고 폴짝폴짝 뛰어서 나아가든 어쨌든 그렇게 나는 반환점을 터치한다.

수영하는 법은 여전히 모르고 물은 갈수록 무섭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리란 불안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 레이스의 끝이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것. 어려서는 몰라서 용기만만이었다면 지금은 알기에 묘한 배짱이 생긴다.

당신의 후반부는 어떨까? 어떠한 속도로, 어떠한 영법으로 레이스를 마무리할 것인가. 나는 다만, 그 고민의 끝에 당신이 조금쯤 홀가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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