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함과 욕망 사이

 안녕하세요. #팔랑귀이지만 #꿀피부 동안미인이 되고 싶은 꿈장입니다. 주름은 할머니되면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눈을 하도 세게 비벼서인지 그냥 자연히 나이를 먹어서인지 요즘 제 고민거리로 떡하니 자리잡고 말았네요. 여러분은 후회하면서도 반복하는 소비가 있으신지요. 전 그게 피부과 시술이거든요. 다들 저처럼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더하면 더했지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신 분도 있나요? 짧은 제 경험을 가볍게 담아보았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띵동- 수많은 출금 알람 속에 흔치 않은 입금 내역 하나가 떴다. [입금 xxxxxx원. 복지포인트] 일 년에 딱 한번 들어오는 작은 보너스랄까. 자동차 보험료로 쓰기에도 빠듯한 금액이지만 그 복지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지금 당장 나를 위한 복지로 뭔가를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작년 이맘 때도 그렇게 피부과에 갔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네.(긴장)

-어떤 고민이 있어서 오셨어요?

-아.. 주근깨 좀 빼고 싶어서요.

-마스크 벗어보시겠어요?

-(움찔)

-음 고객님은 기미랑 주근깨가 복합적으로 있으셔서 예약하신 종류의 레이저로는 완벽하게 제거되기가 어렵구요. 여기 보시면 이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두 종류를 병행하시면 가장 좋은데, 금액이 부담되시면 적어도 그 아래 단계라도 하시면 좋아요.

 할인 이벤트가 약 40만원 정도도 큰 맘 먹고 예약하고 온 건데 거기에 두배 이상의 레이저를 권장 받으니 당황스러웠다. 속사포 랩처럼 쏟아지는 설명이 한 마디로 “고객님의 피부는 40만원으로는 어림 없어요.” 처럼 들렸다.

-아.. 그런데 8-90만원은 너무 비싸고.. 그럼 그 아래 단계로 할게요.

-레이저 후에 관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기본 팩 관리가 있고 비타민팩 관리가 있는데 아무래도 비타민 팩 관리가 좋죠.

-그럼 비타민으로 할게요.

-레이저 후에는 당분간 재생 크림 발라야하는 거 아시죠. 구매하시겠어요?

 가까스로 삼만삼천원짜리 재생 크림은 겨우 방어했지만 40만원을 예상하고 가서 60만원 이상을 결제했다. 카드를 긁는 순간 개운하지 않고 붕 뜨는 기분이 이상했다. 눈 뜨고 코베였단 말이 이런 건가? 다 내 피부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몇달에 걸쳐 레이저를 받았다.

 일년 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금액으로 복지 포인트를 또 한번 쓸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전, 목표 저축액을 적으며 피부과x 옷이나 신발x 라고 메모장에 적은 기억이 생생하건만 신발은 이미 샀고 부쩍 눈가에 주름이 신경쓰인다. 그러게 눈 가렵다고 자꾸 비비지 말걸.. 때마침 매달 피부과에 다니는 리치rich 친구의 피부를 두 눈으로 직접 봤더니 그 정도까진 못돼도 거슬리는 부분이라도 해결하고 싶어졌다. 게다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이 먹어서 피부 좋은 사람은 전부 피부과 덕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모두 또 한번 피부과로 나를 유인하는 역할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안 써먹으면 바보라는 피부과 이벤트 창을 유심히 살펴보고 예약을 문의했다.

-안녕하세요, 리프팅 시술 받고 싶은데 눈 주위만 가능할까요?

-정확한 건 직접 보고 상담해야 말씀드릴 수 있어요. (되긴 된다고 말이라도 해주지)

-그럼 토요일에 상담 받고 결정할게요.

(토요일)

-고객님 어떤 부분이 고민이세요?

-눈쪽에 거슬리는 주름이 생겨서요.

-그러네요. 그런데 지금 보면 잡티도 있고 눈 아래 다크서클이 있으시거든요. 피부도 좀 누렇구요.

 스무 살에 들은 피부 좋고 깨끗하단 얘기를 더 이상 붙잡을 순 없겠지만 제 피부가 그렇게 총체적 난국이었던가요..? 속사포 랩으로 내려지는 진단에 마음이 속상해진 건 순식간이었다. 고객님 같은 피부는 얇아서 이런 종류는 안 되고 다른 종류가 된다, 이 리프팅은 주기적으로 맞아야하고 다른 종류도 같이 하면 효과가 두 배다. 금액을 쏙 빼고 열띠게 설명하더니 어떻게 도와드리겠냐고 되묻는다. 고객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금액이라는 거 모르시나요? 물론 그렇게 묻지는 않았고 조심히, 금액은...얼마인가요? 라고 물어보았다.

 이번엔 2-30만원을 예상하고 간 곳에서 눈만 할게 아니라 얼굴 전체를 리프팅하자는 권유를 받았고 금액은 100만원 내외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 마법의 상담실에서 거울을 두고 상담을 받다보면 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에 생각보다 큰 지출을 하게 되고, 상담실장이 권유한 금액보다는 낮은 걸 고르면 이상하게 그 금액이 덜 비싸게 느껴진다. 20에서 100이 아니라 150에서 100으로 줄어든 셈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약간 넋을 놓고 선택에 대함 확신이 없는 채 결제를 진행했고, 영수증 내역엔 3개월 할부가 고민의 흔적처럼 찍혔다. 백만원을 일시불로 긁을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마취 크림을 바를 때에는 더 가관이었다. 얼굴 전체에 크림을 바르고서야 100만원이 오늘 하루에 하는 리프팅의 가격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결제할 때는 2-3번을 오라길래 2-3회에 100만원인 줄 알았는데! 또 한번 속사포랩에 속아 호갱이 될 뻔했다.

 지은아, 아무리 매년 당하는 상술이라지만 이렇게 당하고 나가진 말자. 마음 속 내가 나에게 외쳤다. 이대로 오늘 100만원을 다 쓰면 행복은 커녕 죄책감만 들 거라고. 결국 크림을 바른 채 얼굴 전체가 아닌 눈 주위만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상담실로 다시 조용히 불려갔다.

-고객님,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하셨어요~

-제가 계획하고 온 것과 달라서 갑자기 큰 지출을 하는 게 부담돼서요. 저는 하루에 100만원인 줄은 몰랐거든요..

 결론은 결제한 100만원은 취소하지 않았고 120만원 상당의 포인트로 남아 그 중 16만원만 시술에 사용하였다. 그냥 다 취소하고 하기로 했던 것만 결제하면 될 걸 왜 100만원을 취소하지 못했을까? 20만원을 덤으로 얹어준다는 상술도 한 몫이요 몇백만원을 쉽게 긁는 사람들 속에서 이 정도는 나를 위해 투자하자는 마음이 자라난 것도 한 몫을 했다. 비싼 명품이나 해외 여행도 절약을 위해 애써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매년 학기 초가 되면 한 살 먹은 나를 위해 같은 선물을 반복하고 어김없이 피부과 상담실에서 생각 이상의 금액을 결제하게 된다. 그런데 또 이상한 건 내 마음이 반성으로 가는지 아쉬움으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뻔한 마케팅에 자꾸만 넘어갈 때면 속았다 싶으면서도 백만원, 이백만원 손쉽게 일시불로 긁는 사람들의 여유도 부러운 게 사실이다.

 내년 3월, 왠지 나는 그 때도 피부과에서 무언가 결제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이쯤이면 차라리 연례 행사로 생각하고 내려놓을까?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예 철통 수비로 유혹을 막을 준비를 해버릴까?

 나의 3월 영수증엔 언제나 나의 우유부단함과 욕망이 나란히 찍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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