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 뜨거운 함성

가장 찬란히 빛나던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길 (가장 느린 거북이 5화)

2022.12.02 | 조회 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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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ROUGH

당신과 나의 이야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 글을 올리게 된 임필통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월드컵으로 인한 열기로 분위기에 잔뜩 취해 있을 텐데요, 야구도 월드컵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2017년도부터 2020년도 까지 제가 4년 정도 지도 했던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 참가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열정만은 가득했던 그 때 우리의 월드컵, 그 뜨거운 함성속으로 같이 여행을 떠나요!

(글에 나오는 선수명은 모두 가명인 점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_^)

 


 

때는 2018년, 내가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지도를 맡은 지 2년째가 되던 해였다.

 

두 번째 시즌은 모두의 기대가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2017년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컵 야구대회에서 우린 동메달을 획득하며 단단한 저력을 보여주었고, 2018년도 야구 월드컵이 열리는 곳이 미국 플로리다로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을 포함한 모두가 많은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살면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을, 그것도 국가대표의 자격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몽롱한 기분의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 참가하는 대표팀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평가전을 열었을 때 참가한 선수는 정확하게 120명 정도 되었다. 다행히도 나는 작년과 거의 변함없는 스텝들과 일을 할 수 있어 훨씬 수월하게 테스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왜 자신이 대표팀이 되어야 하는지 절실한 사연을 구구절절 소개하곤 했다. 성적으로 모든 것을 대변하는 자리에서의 내게 필요한 '버팀' 이란, 훨씬 더 세밀하고 정교하며 단단한 자아가 필요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20명에서 60명, 60명에서 30명, 30명에서 20명까지 테스트를 진행하였고 결국 최후의 20인과 함께 4명의 코칭스텝은 그렇게 한 팀이 되었다.

그 해 주장을 맡은 꽉꽉이 대연 선수는 팔꿈치 부상에서 온전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팀을 위해 주장이라는 중책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코칭스텝 눈치보랴, 선수들 대변하랴 몸이 많이 고단했을텐데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언제나 웃으며 선수단을 이끌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표팀의 큰언니로 가장 나이가 많던 40대 희연선수는 막내인 17살 지연이 보다 23살이나 많았지만 다른 선수보다 한발 더 뛰고 한번 더 화이팅을 외치는 열정 가득한 백전노장의 모습이었다. 나이가 자신의 걸림돌이라는 오해를 스스로 씻어내고자 노력한 결과였다. 결혼을 했다면 지연이 만한 딸이 있었을 것이라는 팀원들의 놀림에도 지연이를 정말 '우리딸' 이라고 부르는 여유에 연신 감탄이 새어 나왔다.

 

올해도 유격수를 맡게 된 희수는 나와 동갑이며 포지션이 같다는 이유로 가장 혹독하게 훈련 시켰다. 유격수와 2루수는 수비의 중심이자 강한팀이 되기 위한 중요한 포지션이다. 평일 저녁마다 사설 코치님에게 따로 레슨을 받던 희수는 스스로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멋진 선수였다. 서울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하는 현지는 삼진을 먹으면 화를 참지 못하는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친구였다. 몸이 뻣뻣해 내가 현지의 별명을 '뻑뻑이'라고 부르자 팀원들은 너무 잘 어울린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지도 그런 별명이 싫지 않은 눈치인지 그래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별명을 선물해주어 감사하다며 자신의 뻣뻣함을 인정하였다.

 

부산에서 주말마다 올라오던 지윤선수는 원래는 태권도 선수였다. 롯데자이언츠 야구를 보다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해봤는데 매력에 푹 빠졌다고 했다. 대표팀 전용 훈련장이 경기도 화성임을 감안하면 지윤선수는 매 주말마다 왕복으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이따금씩 짠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어 따로 휴식을 부여하고 싶었지만 팀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대한 나에게 오히려 서운함 보단 배울 수 있다는 점이 훨씬 좋다며 코치를 다독이는 어른스러운 선수였다.

 

많은 훈련과 땀이 어우러져 작년보다 좋은 전력임을 자신했고, 무더운 열기가 한국을 가득 덮은 8월의 어느 날 저마다의 사연과 기대를 품은 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의 야구장, 너무나도 맑고 푸른 하늘에 크나큰 울림을 받았다.>
<미국의 야구장, 너무나도 맑고 푸른 하늘에 크나큰 울림을 받았다.>

 

미국의 하늘은 정말 깨끗했다. 경기에 대한 수 많은 분석과 장면을 그려가며 온통 경기를 향한 마음으로 미국에 도착했지만 처음 야구장을 보았을 때 머릿속을 멍하게 만들던 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선수로서, 코치로서, 교사로서 많은 경험을 담았고 많은 장면을 녹여냈건만, 정말이지 많은 야구장에 가보았다고 자부했지만 아직도 미국의 야구장 장면은 잊혀지지 않는 오랜 감동으로 기억된다.

 

유난히도 높고 맑은 하늘과 초록색 잔디, 햇볕에 일렁이던 아지랑이, 너무나도 고요한 그 풍경이 실로 압도적이었다. 밑바닥 어디쯤 잠겨 있던 낮은 자존감으로 힘들었던 대학교 선수시절, 홀로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으며 쫓기듯 공부하던 고시생 시절, 대표팀 선수들과 웃고 울고 소리 질러가며 훈련하던 풍경들이 짧은 순간 전부 스쳐 지나갔다. 잘 살아보고 싶어 처절하게 노력했고 애태웠던 결과물이 야구장 한 장면에 전부 다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인지 모를 벅참과 감동에 눈물이 나올 뻔 했지만 애써 감추며 다시 정신을 차려보았다. 아직은 감성에 젖어 일을 그르치면 안되리라 다짐하며.

 

그 해, 우리 대표팀은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성적표를 받진 못했다. 14개의 국가가 참가한 월드컵에서 8위라는 씁쓸한 성적표가 돌아왔다. 2년차에 접어들고 더욱 자신만만했지만 세계의 벽은 베를린의 장벽보다 높았다. 선수들도 기세가 대단했지만 결과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회였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한국에서 같이 온 기자님과 2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할 때 결국 나는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숨기지 못했다. 선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부족했던 부분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으며 1년 동안 나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주지 못했다는 자책감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저녁, 선수들과 우리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대표팀 훈련기간에는 술이 금지 되었지만 마지막 날 우리는 금지령을 풀고 각자의 방에서 남은 라면과 과자들을 안주 삼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언니들과 헤어짐이 아쉽다고 눈물을 흘리던 혜연이, 선수들이 부족해서 경기에 진 것 같아 죄송하다며 눈물 보이던 든든한 투수조 주장 혜영선수, 우는 혜영선수를 보고 짓궂게 장난치던 수빈이, 사실은 몰래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며 양심 고백을 하던 두나, 남는 건 결국 사진이라며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찍던 경민이까지.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답던 시절이 언제쯤 나에게 있었을까?

 

대표팀을 그만둔 지 벌써 2년이나 흘렀는데도 그때의 감동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3월이 되면 화성에 가야 할 것 같고, 월요일이 되면 훈련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할 것만 같다. 서인이는 아직도 욕심 때문에 크게 스윙을 하는지, 눈물 많은 승은이는 아직도 실수를 하면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는지 선수들 모두 나처럼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월드컵의 열기로 한층 취해 있는 요즘, 취기를 빌려 팀에서 가족이 된 우리 팀원들 모두가 안녕하고 건강하길, 그 때 그 시절 가장 찬란히 빛나던 우리를 영원히 기억하길 바래본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우리>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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