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열어보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어느덧 11월의 끝자락에 와있는 지금,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최근에 여운이 남는 영화를 보았어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았답니다.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말을 언제나 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시간을 여행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오늘은 행복한 하루를 여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 앞부분에 영화 스포가 담겨있어요.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참고해주세요.😌)

 얼마 전 2000년에 개봉했던 영화 '동감'이 리메이크되어 새롭게 개봉되었다.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는 판타지는 늘 흥미롭다. 유치하긴 해도 누구나 과거나 미래로 가는 상상을 한번쯤 해봤을 테고, 그런 영화들은 현재의 소중함 느끼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95학번 용이와 21학번 무늬가 무전기를 통해 소통한다는 설정. 분명 나와 동갑인데 미래(혹은 과거)에 있는 사람과의 대화라니. 너무나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무섭다.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가 존재한다면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원하는 대로 살고 있을까? 원치 않는 미래를 엿본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시간에 산다고 해도 사랑과 꿈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라 두 사람은 그런 대화들을 나누며 금방 마음을 연다. 주인공 용이는 일단 2000년이 되어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연애 상담을 무늬에게 터놓는다. 여자 마음을 당최 알 수가 없었던 용이는 무늬에게 코치를 받으며 데이트를 하고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 분위기는 무늬의 한 마디로 순식간에 반전되는데, 바로 무늬의 엄마가 용이의 첫사랑이고 아빠는 가장 친한 친구 은성이었다. 내 오랜 친구가 내 첫사랑과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을 거란다. 이제 겨우 사랑을 시작했고 그들에겐 어떤 갈등도 없었지만, 용이는 그 말을 들은 후 은성이와 첫사랑이 사이좋게 있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의심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보내다 결국 첫사랑을 포기하고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과정을 누리기 전에 결과부터 알게 되었을 때 우린 얼마나 큰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용이는 자기가 주인공인 책의 충격적인 결말을 미리 본 탓에 충분한 사랑의 시간을 누리지 못했다.

  시간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영화 중에 '어바웃 타임'이 있다. 주인공 '팀'은 미래의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미래로 가는 능력은 없지만 얼마든지 원하는 시점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원치 않는 현실을 겪고 과거로 돌아간 그 시점에서는 그가 미래를 미리 보고 온 것이나 다름 없다. 후회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나 탐나는 능력! 그 탐나는 능력을 가지면 우리는 실수 없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팀은 동생이 다치고 아빠가 병에 걸리는 미래를 알아버렸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자신의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더 이상 능력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매일 시간 여행자 같은 마음으로 주어진 하루를 선물처럼 누리며 살게 된다. 현재를 여행처럼 느끼고 생생하게 살아가는 마음이 오히려 그가 가진 최고의 능력이다.

  시공간을 초월하거나 시간 여행을 하는 영화들을 보면 가끔은 스스로가 시간 여행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잠깐, 찰나의 순간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와있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미래에는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장면 안에 들어와 실감 나게 모든 것을 경험하는 기분이 든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순간, 부모님과 대화하는 순간,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깔깔거리는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물론 괴로운 상황일 땐 하루 빨리 미래로 건너 뛰고 싶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알 수 없는 영역이기에 가끔은 궁금하고 불안하다. 정해진 운명같은 게 있는 걸까? 내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예고편이라도 보겠다고 철학원에 방문하기도 한다. 이게 아예 안 가면 관심도 없는데 한 번 발을 들이면 계속 궁금해지는 매력이 있다. 특히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고 몸도 아플 때,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가 싶어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저 왜 이렇게 올해 힘든 거냐는 질문에 원래 올해는 그럴 예정이었다는 말이 은근 위안이 됐다. 아, 원래 올해는 그럴 예정이었구나. 내가 무슨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거였구나. 다 맞지는 않으니 믿고 싶은 만큼만 믿고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위안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적중률이 반반인 사주가 아니라 정말 정확히 펼쳐질 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앞서 말한 영화 '동감'에서처럼 누군가에게 내 미래를 확실하게 스포일러 당하는 걸 감당할 수 있을지.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들을 까봐, 내가 하는 어떤 노력들에 힘이 빠져버릴까봐 나는 듣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미래를 궁금해하는 건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불안'이란 감정 때문이다. 고시 공부를 하는 게 힘든 이유는 언제 끝이 날지, 끝이란 게 과연 있긴 할지 불안하기 때문이고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미혼은 과연 내가 결혼을 하긴 할지, 언제 까지 혼자 살지 모르기 때문에 막막하다. 그렇기에 때로는 예언을 듣고 싶고 미래를 알고 싶지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아, 제발 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합격하기로 정해진 걸 안다면 마음이 덜 불안할텐데. 하지만 합격할 결과를 알았으면 마음이 느슨해져 공부를 소홀히 하고 미래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탈락할 결과를 봤으면 김이 새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겠지. 원치 않는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현재를 충분히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결국엔 간절한 마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어떤 결과를 받아도 아쉬움이 덜할테니, 모르는 채 달리는 게 우리에겐 최선이다.

 '신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똑바르게 메시지를 적는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희노애락을 경험하고 후회와 불안을 반복해서 느끼며 살아간다. 삶이 막막할 때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오히려 인생이 즐거운 것이다.'란 말이 정말 싫었다. 하나도 즐겁지 않고 빨리 내 해피엔딩을 확인하고 싶은데 막막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래는 알 수 없는 게 우리의 숙명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해져있다.

1 어쩌면 정해져있을 운명에 모든 걸 맡긴 채 유유히 살아간다.

2 정해진 운명은 없으니 내 의지로 미래를 만든다.

3 미래를 예언하는 것들에 가끔 기대며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간다.

4. 때로는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같은 마음으로 생생하게 모든 것을 누린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겠는가? 운명의 상자를 누군가 건네주면 그것을 열어보겠는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다만 오늘 하루가 나쁘지 않게 흘러간다면 오늘을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실감나는 하루를 살아보면 좋겠다. 그냥 지나칠뻔한 현재의 선물을 발견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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