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깨기

2023.03.14 | 조회 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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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프 ROUGH

당신과 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러프> 발행인 춘프카입니다.

오늘(13일)부터 내일(14일) 그리고 금요일(17일) 연달아 콘텐츠를 이어 가겠습니다. 

먼저 오늘 소개할 글은 프리나우트 작가님의 <달걀 깨기>입니다.

지난 2월 외부 원고를 모집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여러분들이 지원해주셨습니다. 각자 고유한 사유가 담긴 귀한 글을 보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최종 선택한 원고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육아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일상을 기록하는 프리나우트 작가님의 글이었습니다. 어쩌면 단 한편으로 그 사람의 궤적을 온전히 읽어낼 순 없지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어떤 생각과 삶이 이어왔을까. 그래서 택했습니다. 

14·17일은 각각 '내 마음의 문장들'이란 주제로 저와 이레네 작가님의 글이 이어집니다. 살면서 마음에 닿았던 문장을 소개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3월에도 어김없이 원고를 모집합니다. 참여를 희망하신다면 choonfka@hanmail.net 으로 지원(문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달걀 깨기

글 : 프리나우트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깨어진 껍데기 사이로 미끄러져 나오는 날계란과 비슷하지 않을까. 꿈을 좇아서 혹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늘 있던 세상에서 한 발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 꽁꽁 싸매고 있던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 같다. 조금만 힘을 주면 ‘파삭’ 부스러지는 계란이지만 속 살을 꺼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날계란을 가만히 놔두고 들여다보라. 어디 실금하나 생기는지. 계란후라이만 해도 얼마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요리던가.

단단한 면에 대고 달걀을 두드린다. '톡톡' 적당한 힘으로 두드리고 제대로 금이 갔는지 확인한다. 이제 불 위에서 기름과 함께 뜨겁게ᅠ달구어진ᅠ프라이팬 위에 날계란을 '챱' 하고 올려내면 된다. 소금을 탁탁 뿌려 지글지글 구워낸 달걀 프라이는 모양 따위 상관없이 얼마나 맛있는지.

*

나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마치 종이로 만든 올록볼록 홈이 파인 계란판 안에 가지런히 들어가 있는 계란 같았다. 크기도 색도 비슷해서 다 똑같이 보이는. 아무리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소리쳐봤자 고만고만한 것들이 몰려있는 와중에 눈에 띌 리가 없다. 어디 조금 깨지거나 움푹 파여있다면 한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지만. 

대학교 2학년. 목적 없이 정해진 학점을 채우기 위해 바둥댔다. 흥미와 상관없는 시간표를 짜서 듣는 수업에 이골이 날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동아리 활동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수업도 빼먹고 도장에서 운동을 할 지경이었다. 나는 검도부였다. 입학 초 동아리 모집 기간에 검도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동아리방 문을 열어젖혔다. 검도는 중학교 때부터 배웠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눈앞에 닥친 수능 공부에 매달리느라 억지로 관두고 일 년만이었다. 일주일에 5일 가던 운동을 하루도 못 가고 하고 싶은 걸 꾹꾹 참았더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는 호구를 뒤집어쓰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땀에 푹 젖는 그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교내 잔디밭에 친구들과 둘러앉아서 과자 쪼가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도 흥이 절로 돋았다. 자꾸만 좋아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처음으로 너무나 단단하게 싸여 있어서 깨려고 시도해 본 적도 없는 껍데기를 두드려댔다. 게임스쿨을 다니겠다고 선포하고 학교를 휴학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딘답시고 남이 깔아주는 길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해본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지금도 연락하는 소중한 인연을 포함해 많은 사람 들을 만났다. 내 삶을 주도하는 느낌이 들어 짜릿했다. 비록 게임스쿨에 다니며 큰소리치던 대단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더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외국으로 나가겠어.'

나고 자라난 한국을 떠나 '외국'이라 불리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생활해 보고 싶었다. 목적지로 삼은 곳은 '일본'이었다. 이유는 심플했다. 영어는 젬병이라 패스. 문법이 비슷하고 같은ᅠ한자권이니까ᅠ조금은 말을 배우는 것도, 적응하기도 쉬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졸업할 때까지 일본에 가기 위한 준비에 열정을 쏟았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경제 같은 것들에 관한 공부도 했다. 나를 둘러싼 또 다른 껍데기는 오래도록 금이 간 끝에 열렸다. 그 결과 생전 처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바다 건너 일본에 도착했다. 여기서 끝이냐고? 아니다. 일다운 일도 받지 못하던 파견직 생활을 하며 또 새로운 곳을 꿈꾸던 나는 다시 도전했다. 이번엔 제대로 된 회사에서 한 사람의 기술자로 인정받으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지는 결혼과 육아는 밤새 이야기해도 부족하므로 생략하겠다.

생각해보니 나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져가며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를 벗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산이 한번 바뀔 시간 동안 가졌던 '엄마'에서 벗어나 '나' 로서의ᅠ자아를 찾는 중이다. 아이와 육아의 범주에서 벗어난 모임에 대해 생각한다. 글쓰기에 집중하여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나의 이슈(issue)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처음부터 달걀을 잘 깨는 사람은 없다. 힘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 달걀 속을 떨구어 버리는 일도 생긴다. 파사삭 부서진 달걀 껍데기가 섞여버려 두 눈을 부릅뜨고 골라내야 할 때도 있다. 힘없이 살살 두드린다면? 달걀은 그 속살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뭐, 깨질 때까지 계속 두들겨야지 별 수 있나.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다면 말이다. 하다 보면. 결국 적당히 계란을 쥐고 두들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한 손으로 탁탁 깨고 멋들어지게 프라이팬 위로 날계란을 올릴 날도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계란은 두드리면 언젠가는 깨진다는 것이고 계란 프라이는 모양이 어떻든 맛있다는 것이다. 나는 맛있는 계란 프라이가 먹고 싶다. 그러니 끊임없이 껍데기를 깰 것이다. 기분 좋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져 나오는 날계란처럼 시원한 결과에 미소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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