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시니어들은 무엇에서 행복을 찾을까? 2019년에 나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행복과 관련하여 떠올리는 단어 49개 중 중심에 있는 것은 가족, 건강, 돈, 여행, 친구이었다. 이렇듯 여행은 다른 어떤 여가보다 행복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작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해외에 여행가기가 어려워졌다. 국내 여행도 경우에 따라서는 제약이 있고, 제약이 없더라도 방역을 고려하면 조심스럽다. 필자는 2020년에 스코틀랜드에 여행가려고 대학친구들과 4년을 준비해서 2019년에 모든 예약을 마쳤는데, 코로나19가 불의의 습격을 해와 언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이렇게 여행을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여행을 하려고 하는가? 여행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여행을 하는 이유는 우선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여행을 직접 설계하며 준비하는 재미가 크다. 특히 여행을 설계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동선을 짜며 예약을 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먼저 여행지를 정하게 되는데, 그 때는 어렸을 적에 동생들과 세계지도 책을 펴놓고 지명찾기 놀이를 하면서 그곳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경험해서 좋다. 여행지를 정하려고 후보지 몇 군데를 선정하면서 관련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머리 속에서 현지를 직접 돌아다니는 것처럼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한 것은 아니었다. 2016년에 아들의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러 런던에 가야 했는데, 여러 가족들과 축하할 겸 여행을 같이 가니 계획이 필요해서 시작해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숙소는 에어비엔비를 이용하여 예약하고 현지 동선은 런던을 몇 번 방문했던 경험을 기초로 짰다. 중요한 것은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바뀌어 지하철 위주가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앱을 켜고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만 지정하면 다양한 이동경로를 보여주어 일반버스를 이용해서도 쉽게 갈 수 있었다.
그 뒤로 친구들과 스위스, 일본을 같이 다녀왔고, 다른 팀과 일본을 가는 데도 여행설계에 참여했다. 가족과는 캄보디아의 시엠립(Siem Reap, 앙코르와트가 있는 곳), 중국의 남서부에 있는 쿤밍, 말레이시아의 코타 키나발루에서 자유여행을 했다. 쿤밍에 갔을 때는 영어를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는데, 중국어를 잘하지 못해 파파고와 같은 앱을 이용하여 대화를 하거나 한자를 직접 써서 필담을 하니 언어 문제가 어느 정도는 극복되었다. 이러한 여행 경험을 기초로 저멀리 남미 칠레의 파타고니아까지 가려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준비하고 있는데, 이 여행 역시도 코로나19로 일정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다 하여 그냥 있을 수는 없어 앞으로 갈 여행지를 간접적으로 여행하고 있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내공을 쌓으며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 법이다. TV에서 제공하는 여행 프로그램도 보고, 인터넷상에서 여행그룹에 가입하여 현지인들이 올리는 정보를 보며 현지 생활을 익히고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는 스코틀랜드 관련 그룹들 중에서 선별하여 몇 군데 가입하여 실시간으로 게시되는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과 함께 정보를 모으고 있다.
여행을 가는 두 번째 이유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보며 얻는 자극이다. 해외여행을 다녀보면 사람이 사는 기본원리는 대개 비슷하다. 그렇지만 풍경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며 사고방식이 다른 것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특히 음식은 원칙적으로 현지 음식을 먹으면서 다양한 맛이 주는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 갔을 때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이 주는 맛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맥주를 마시더라도 현지에서 생산된 맥주를 먼저 마셔본다. 이러한 행위들이 모두 여행이 주는 자극이자 즐거움이다.
여행을 가는 세 번째 이유는 일상에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과 정서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즐거움도 힘든 일도 같이 겪으면서 생겨난 정서적 유대는 훨씬 더 밀접하며 오래 간다. 스위스에 여행 갔을 때 친구들 7명이 그린덴발트의 롯지에서 큰 방을 하나 잡고서 4박 5일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불편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코고는 소리도 자장가로 들릴 정도로 유대감이 더 강해져 귀국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친구들은 여전히 같이 여행을 다니는 그룹으로 확실히 자리매김되었다.
그 외에도 여행을 가야 할 이유는 많을 것이다. 일일이 더 열거하기보다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쓴 네덜란드의 작가 세스 노터봄(Cees Nooteboom)이 <태풍의 눈>이라는 책에 쓴 글을 인용하고 싶다. "진정한 나그네는 늘 태풍의 눈에 머무르지 않나 싶다. 태풍은 세계다. 나그네는 태풍의 눈으로 그 세계를 본다.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놓치고 지나가는 것을 고요한 태풍의 눈은 바로 잡아낼 수 있다."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와 함께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좀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초기에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데 초점을 많이 맞추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여행지에서 보고 느껴야 할 것을 순간순간 놓치면서도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조차도 때론 핸드폰이나 컴퓨터 안에서 방치되곤 했다. 이제는 체험에 중점을 두되 사진찍기 위주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문제는 체험이 오래 기억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블로그 등에 사진과 함께 체험의 느낌을 메모 형식으로라도 남겨 두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좋을 것이다. 훗날 이런 글들을 모아 여행기를 책으로 내는 것도 도전해볼 만하다. 그러면 사진도 살고 체험도 살아 나중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자유여행을 하더라도 여러 명이 단체로 가게 되면 개인의 흐름이 방해받을 수 있다. 개인마다 선호가 달라 같은 동선에 있어도 박자가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이 가되 부분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는 방식이면 좋을 것 같다. 같은 곳에 가더라도 전 일정을 모두 같이 하기보다는 일정 시간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혼자 또는 소규모로 나누어 진행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동선을 동일하게 하더라도 중간에 여유시간을 충분히 잡아두면 개인의 자유가 더 커질 수 있다. 개인의 자유가 커지려면 짧은 시간이나마 단독으로 움직여도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단독으로 여행을 해내려면 무엇보다 여행 관련 앱(지도, 교통, 언어, 음식점 등)을 잘 이용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그런지 2021년에 발표된 '꿈꾸는 여행자 운영사업' 참여자들의 후기를 보면 앱을 활용하여 여행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원하는 비율이 5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행을 떠나려면 예산 문제로 가성비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한 번에 많은 곳을 방문하기보다는 한두 군데 위주로 여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국내든 해외든 짧은 시간에 여러 군데를 여행하는 것은 우선은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현지 체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퇴 후에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해외여행의 경우에는 현지에 장기간 머무르는 체험형 여행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것이 지겹다면 기차나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한두 곳 정도를 더 정해서 이동하여 지내다 오면 좋을 것 같다. 장기간 여행을 하므로 부부 단독으로 지내는 것보다는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 부부가 같이 하면 고립감도 피할 수 있고 어려움도 같이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여행의 경우에는 짧게 자주 가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특정지역에서 해외여행처럼 한 달씩 오래 머무르는 체험형 여행도 선호된다.
이제는 여행을 하더라도 기후 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동하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기후 위기의 원인이 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교통수단별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교는 여러 여건을 고려해야 해서 쉽지 않지만, 평균적으로는 여객기가 뿜는 이산화탄소량이 고속버스나 철도에 비해서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해외에 나가려면 당연히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내가 하는 여행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여행은 대개 제주도를 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여객기 이외의 교통수단을 이용하게 되지만, SUV차의 경우는 여객기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것을 알 필요는 있다.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가를 보내는 방법이다. 여행을 왜 하며 어떻게 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여행할 필요가 있다. 흥청망청 소비하고 떠들썩하게 즐기며 과시하는 여행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여행 방식을 찾아 도전하며 즐겨볼 때이다. 빨리 코로나19를 극복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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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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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스
은퇴준비에 필요한 좋은 내용입니다. 저도 3달전 홈쇼핑 해외여행 상품 예약을 했는데 델타변이 코로나사태 등으로 당분간 어려울것 같네요. 앞으로도 좋은 뉴스레터 기대합니다
광화문통신
의견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백신접종률이 높아지면서 트래블 버블(여행 시 격리 면제) 협정을 맺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까지 방문할 여행지를 공부하며 준비하시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좋은 내용을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계속적인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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