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비스트입니다 (Part 1)

미국 정치 커뮤니티의 중심 워싱턴 D.C. 경험기

2023.12.13 | 조회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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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의 서재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 1년 많은 시간을 미국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 D.C.에서 보내며 커뮤니티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원하고 만들고자 하는 커뮤니티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 지를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 과정에서 겪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심바의 서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해가고자 한다.

올해초 회사에서 중요한 업무를 맞게 되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미국 정부의 관련 정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치 및 정책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우리는 최고위급 미국인 로비스트 한 명을 고용해 그를 중심으로 워싱턴 D.C.에 전문적인 로비 조직과 핵심역량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들의 역할은 회사의 목소리가 적시에 주요 정치인들에게 전달되어 우리의 이익이 대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초기 조직이 구축되는 것과 한국 본사와 현지 팀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할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장기 출장에 오르는 나의 발걸음은 무겁고 막막하기만 했다. 로비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생각할 때면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작품으로 알려진 ‘하우스 오브 카드’의 권력을 둘러싼 지저분하고 추악한 장면들만 떠오를 뿐이었다.  

D.C.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낯선 곳이었다. 다행히 한국에 있는 지인의 지인을 통해 현지에서 18년 넘게 활동 중인 한국계 미국인 로비스트와 연결될 수 있었고, 도착 바로 다음 날 점심 약속이 어레인지 되었다. 사전 프로파일링을 통해 그는 한국과 미국 정부 사이의 브릿지 역할을 하는 로비스트로 상당한 영향력을 보유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이도, 경험도 나보다는 훨씬 더 위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만남에 앞서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혹여 나의 부족한 연차와 경험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나를 하대하며 얕보지는 않을까 등의 복합적인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약속 전날, 실수로 다소 위험해 보이는 지역에 예약한 호텔 방에서 조신이 누워있던 중, 문뜩 그가 한국계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혹시 한국어로 대화를 할 경우 자연스레 위계질서(hierarchy)가 형성되어 불리(?)할 것 같다는 쓸데없는(지금 돌아보면) 걱정과 함께, 먼저 문자를 보내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세팅 해야겠다는 나름의 전략을 수립했다. 텔레그램으로 간단한 자기소개와 내일 만남이 기대된다는 짧은 영문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후 그가 텔레그램 메시지를 읽은 것이 확인되었지만(카카오톡의 ‘1’과 비슷한 기능) 한동안 회신은 오지 않았다. 내가 보낸 메시지가 혹시 잘못되었나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답장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며 ‘괜히 보냈나’하는 마음과 함께 인생에 1도 도움이 안되는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나도 모르게 잠에 들었다. 울리는 전화벨에 눈이 떠져 핸드폰을 확인하니 그의 번호였다. 번뜩 일어나 긴장한 상태로 통화 버튼을 눌렀고, 우리의 첫 대화는 그의 사과로 시작했다. 진작에 회신을 했어야 했는데 연이은 미팅들로 인해 기회가 없었다며 너무나 미안하다고 하였다. 무의식적으로 예상했던 권위적인 톤이 아닌 상당히 부드럽고 섬기는 목소리였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 해지며 나도 매우 인자한 톤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했으니 걱정 말라고답변 하였다. 그는 이번에 우리 회사가 고용한 로비스트를 잘 안다고 말하며 대화에 흐름을 이어갔다.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He’s my dear friend)라고 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여기서는 ‘dear friend’라는 말이 습관처럼 사용된다. 인맥 중심의 커뮤니티 사회로 친분을 과시하는 것이 생존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우리 회사에 대한 칭찬도 덧붙였다. 이미 본인은 우리 사업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며 우리의 신재생에너지와 방산 사업이 향후 한미 동맹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은 듣기 좋은 톤과 문장으로 구성된 아부가 몇 차례 이어졌고, 다음날 예정된 점심 시간과 장소를 재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5분 정도의 통화를 마무리 했다. 긴장이 풀어지며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어떤 얘기를 할지 혼자 머리 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려보며 편안하게 잠에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렇게 워싱턴의 커뮤니티로 조금씩 스며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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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lly

    0
    about 2 months 전

    한국에서는 로비스트라는 직업이 없어서, 글을 읽고 한번 찾아봤어요. 사실 '로비'를 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있지만 그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의미여서 이렇게 직업을 접목해서 그 역할에 대해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니 새롭네요. 수행해야 하는 임무 특성 상 인맥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게 느껴지고, 심바님이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서 충분할 것 같아요. 심바님이 구성해나갈 커뮤니티가 기대됩니다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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