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채점표와 논술과 별

2022.12.21 | 조회 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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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연말이다. 한 해가 이렇게 끝나버린다는 것이 아쉽다. 이건 높은 확률로 내가 수능을 망쳐서 그럴 것이다. 수능, 수능, 수능...!

  내가 얼마나 수능을 망쳤냐면, 국어와 한국사를 제외한 모든 과목의 성적이 1-2등급씩 떨어졌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내가 국어와 한국사 공부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국어는 겨우 연계교재를 다 풀었고, 한국사는 학교 수업–일주일에 1시간–을 들은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수능최저를 맞히지 못해 수시는 모두 불합을 받았고 정시만이 남은 상황이다. 정시도 염두를 해두긴 했으나, 나의 수능이 망할 거란 건 성적표를 받기 전까지 몰랐던터라.. 요즘은 많이 착잡하다.

 

  수능을 치고 나서 최저를 맞히는 상상을 몇번이나 했다. 영어를 2등급 받거나, 경제를 1등급 받거나... 나는 최저를 어떻게든 맞힐 것이니 논술을 잘 쳐야했다. 수능 이틀 뒤, 논술 시험날이었다. 지방에 사는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보는 건 처음이었고, 논술 시험을 치는 것도 처음이었고...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논술시험은 오전 9시, 나는 새벽 4시쯤에 아빠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엄마도 함께 갔다.

  새벽은 캄캄했고, 고요했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다. 가로등과 터널, 아빠 차가 뿜어내는 불빛만이 환하게 빛났다. 나는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을 멍하니 볼 뿐이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새벽에도 하늘은 어두웠다. 얼굴을 창문에 더 가까이 대자 먼지같은 점들이 보였다.

  가로등이 촘촘히 세워져있는 구간이 지나고 창문을 열었다. 눈을 크게 떴다. 별이었다. 좀전에 본 것은 먼지가 아닌 별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리도 별들이 많이 보이다니! 쌀쌀한 바람에 창문은 곧바로 올려야했다. 나는 다시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눈을 부릅떴다. 별들은 내가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난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어서 창 밖을 봐. 별이 엄청 많아!" 엄마는 반신반의했지만 창문을 열어보곤 감탄했다.

 "별이다."

 

  별을 한참 감상하다가 잠에 들었다. 일어나보니 해는 뜨고 있었고, 차가 서울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김밥을 까먹었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모의 논술을 뒤적거렸다. 손목시계를 까먹었지만 벽시계가 있었다. 논술시험은 지금껏 풀어본 기출문제와 모의논술보다 훨씬 잘 친 것 같았다. (비록 수능최저를 맞히지 못해 떨어졌지만...)

 

 

  가채점표를 쓰지 않아서, 난 수능이 망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슬픈데...

  가채점표를 썼더라면, 논술을 치러 가지 못했을거다. 그러면 촘촘히 아름다운 별들을 못 봤을테고... 이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덧. 아, 아빠 미안. 새벽부터 운전을 했구나...

오늘은 아빠에게 효도할 것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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