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기쁨과 슬픔

나와 N 사이에 있는 투명한 장벽에 대하여

2022.12.19 | 조회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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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나를 설명하자면 책을 좋아하는 고3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이건 내가 책에 미쳐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공부에 대하여, 학교에 대하여 할 말이 널리고 널렸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들갑을 떨지 않기 위해 후자를 말해볼까 한다.

 

  공부는 좋지도 싫지도 않다. 성적은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 학교도 마찬가지. 좋지도 싫지도 않다. 개근은 아니지만 정근은 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좋은 점도 있고 싫은 점도 있다. 배움 자체는 기쁜데, 평가 방식은 별로다.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부분은 쓸데없다고 여겨지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재미있고 때때로 유용하다. 좋은 친구들이 있고,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 있다. 등교는 싫고, 하교는 좋다.

 

  모두가 나와 같은건 아니었다. 2년전 쯤 친구 N은 학교는 무조건 싫다고 말했었다. 나는 N이 안타까웠다. 계속 학교를 다녀야 할텐데 그렇게 싫어하진 않았으면 싶었다. 나는 기쁨을 하나씩 설파하기 시작했다.

  "오늘 급식이 얼마나 맛있는데!"라는 말은 지독한 편식쟁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배우는 거 재밌지 않아?"라며 배움의 기쁨을 말하자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N은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나는 N에게 수업 용어 해독법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정확히는 수업을 듣지 않느라 놓친 개념을 하나씩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수업을 놓쳐버린 탓에 이 또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난 포기하지 않고 이 수업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설명했다. "우린 모두 노동자가 될꺼고, 노동자의 권리를 알아야 해!" N은 정치와 법 수업에서 잠깐 수업을 듣는 것 같았으나 거기까지였다. 난 삼각함수의 유용성을 설명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내게도 딱히 유용하지 않았다.

  N은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도 학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N과 나의 차이를 떠올린다. N은 종종 지각을 했고 수업시간엔 대부분 잤다. N은 책을 싫어하고 게임을 좋아한다. N은 편식을 하고...

  생각해보면 N이 이상할 건 없었다. N말고도 그렇게 행동하는 애들은 많았다. 수업시간엔 절반 이상이 숙면을 했다. 수학시간엔 코 고는 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었고, 수업을 듣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무도 지각이나 조퇴를 하지 않은 날은 거의 드물었다. 학교도서관에서 1년에 10권의 책만 대출해도 다독상을 받을 정도로 책 읽는 사람은 귀했다. 그러니 N의 시선에선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는 N과 나를 가로막는 투명한 장벽 같은게 있어서 나는 가끔 기쁘고 N은 그렇지 않은걸까? 누군가에게 가혹한 학교는 종종 내게 슬픔을 가져다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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