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많음에도

2023.01.08 | 조회 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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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

진지하지 않은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 엄마와 자주 하는 대화는 다음과 같다.

엄 : 할 일 없으니까 이것 좀 해 줘.

나 : 이것까지만 하고(혹은 읽고).

엄 : (잠시 기다리다) 언제 (방에서) 나올껀데?

나 : 아, 잠깐만...

 

  나는 오늘도 방에 틀어박혀서 뭔갈 하고 있다.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수능 공부할 때는 무슨 소리만 나면 방에서 나왔으면서 왜 나오질 않는 거냐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수능 공부는 재미없고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너무나도 재미있다. 오늘은 엄마가 드라마를 보느라 내가 싼 김밥을 늦게 썰었다. 그러니 이건 엄마를 닮아서다.

  수능이 끝나면... 으로 시작하는 계획을 아주 많이 세웠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 절반도 해내지 못했다. 읽어야 할 책, 봐야 할 영상, 밀려있는 뉴스레터...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운전면허도 따야하고 심지어는 블로그도 써야 한다. 그러나 읽겠다고 계획한 책보다 계획하지 않은 책을 더 많이 읽었다. 영상 시청은 내게 너무 낯설어서(평소에 온갖 영상을 '나중에 볼 영상' 목록에 넣어만 뒀다) 보다가 말았다. 뉴스레터는 읽는 속도와 쌓이는 속도가 엇비슷해서 여전히 메일함에는 100개가 조금 넘는 메일이 있다. 운전면허는 문제를 조금 풀어보다 말았고, 블로그는 지금 쓰고 있다. 역시 계획은 계획이고 수능이 끝나도 계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아무튼 나는 계획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는 중이다.

 

 

  그런 나를... 엄마는 "백수"라고 했다.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의 슬픔이다. 만약 내가 다른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백수가 아닌 "방학을 맞이한 고등학생"이었을텐데... 나는 나의 모교를 사랑하지만 학사일정까지 사랑할 수는 없다. "백수"라는 단어가 주는 타격감은 컸다. 국어사전은 백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한푼도 없는 처지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배신감을 느꼈다. 나의 친애하는 네이버 국어사전이 백수를 무려 속된 사람이라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잠깐 사실 확인을 해보자. '한푼도 없는 처지'는 딱히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라는 말은 애매하다. '빈둥거리는 사람'은 슬프게도 지금의 나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결론을 내리자면 나는 애매하게 백수라는 말을 부인하기가 힘들다.

  분명 분주히 뭔갈 하는 중임에도 "백수"를 면하지 못하는 슬픔은 헤아릴 수가 없다. 나는 하루빨리 국립국어원이 '백수'라는 말의 순화어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무업기간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더불어 '특별히 하는 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길 바란다. 나의 바람이 늘어만 가는 요즘이다.

 

 

덧. 뉴스레터 작성을 미루다가 블로그에 작성한 일기를 보냅니다. 다음번에는 서평을 보낼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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