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려고 들지도 않지만 억지로 져주는 법도 없다. 거부감이 드는 일이나 대상이 생기면 말을 아끼거나 안 하는 방식으로 대해왔다. 그조차도 버거워질 때면 떠났다. 한 번쯤은 신나게 떠들었어야 했나. 작정하고 날을 세우거나 다 알면서도 말려들었어야 했나. 그러나 사랑하지 않았다. 나에게 싸움은 사랑의 영역이다. 마냥 달려들거나 마냥 당하기만 하는 건 싸움이 아니다. 사랑이 아니다.
누군가와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 속에서 배운다. 각자의 문제를 공동의 영역으로 끌고 와 문제라고 힐난하다가도 "그 부분은 내가 이렇게 해볼게" "그 부분은 내가 이렇게 도울게" 하고 이야기가 진전되면 마음이 놓인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더 깊은 사랑이 더 깊은 상처를 만든다는데 괜찮은 걸까. 방어기제가 세서 좋아하는 감정이 깊어지는 게 매번 두려웠다. 어차피 지치게 될 걸. 어차피 질리게 될 걸. 어차피 멀어지고 헤어지게 될 걸. 조금의 위기에도 파국을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그럴 일 없어" 꼭 끌어안고 다독여주는 존재가 인생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서로 좋아서 나를 낳았다는 부모님도 그럴 겨를이 없었다.
체력이 고갈되고 더 싸워봤자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생각에 휩싸일 때. 그때가 파국이다.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면 자꾸 잘못을 하고 잘못을 알아도 쉽게 바뀌지 않는 게 인간인지라 함께해야 하는 사랑일수록 싸우고 화해하는 체력을 키워둬야 한다. 그 체력은 어디서 키워야 할까.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쉽게 유리해지지 않는 길을 택할 때 나는 강해진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고 꾸며내지 않고 누군가의 진심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 양심껏 사랑하는 사람. 나는 언제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거저 달라고 비는 사랑은 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를 다 지워 버릴 만큼 노력하는 건 사랑이 아닌데. 정도를 찾는 일은 늘 혼자 할 수 없었다. 좋든 싫든 겪어야 했던 일과 대상들로부터 하나둘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런 면이 있다."
이런 면 저런 면 다 알고도 도망가지 않고 새로운 시간을 함께 살아가려는 단 한 사람만 만나도 사람은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그 용기에 힘입어 나아지는 건 순전히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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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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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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