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는 주황색이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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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 조회 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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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한때 한창 사랑했던 대상이 그리운 것도 슬픈데 사랑했던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도 슬픈 일일 거야. 자신과 멀어졌다는 기분. 원하는 모습이 뭔지 몰라도, 원하는 모습이 있어도 그것대로 되지 않아도 지나 버린 시간에 내가 생생했구나 하고 느끼는 거니까.

그 슬픔을 누가 안고 있든 타인으로서는 위로할 길이 없어. 그래도 가능하면 곁에 붙어. 남이어도 기대고 기대하게 되는 남이 돼. 나만큼 살거나. 나보다 몇 년 덜 살거나. 몇 년을 더 산 사람들이 자꾸 과거로 가려고 할 때. 그럴 때 지쳐도 계속해서 꿈을 심어주고 사랑을 주고 믿음을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을 결국 좋아하게 돼.

조건이 따라주지 않아 망한 농사와도 같은 거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날씨 탓 같은 걸 해도 슬픈 건 슬픈 거야. 우리는 누구나 농부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마음이라는 거대한 토양을 가지고 있으니까. 

얼마전에 양대파라는 걸 알게 됐어. 양파와 대파의 모양 그 중간 어디에 있는 농작물.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알려줬어. 양대파 재배기술 특허를 낸 사람은 김도혜 씨라고. 김도혜 씨는 중학생 시절 부모님이 키운 양파들이 버려지는 게 아까웠대. 그 아까운 노력들을 모아 요리를 해서 막냇동생에게 내밀었는데 너무 잘 먹었대. 평소에 대파라면 고개를 내젓던 동생이 대파를 닮은 양파의 싹을 잘 먹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대. 

곁에 있는 사람의 노력을 알아주는 마음. 그 사랑이 양대파를 만든 거야. 우리는 뭘 만들 수 있을까. 서로에게 어떤 걸 발견해서 버려지지 않는 마음을 개발할 수 있을까. 과거를 그리워하고 현재를 안타까워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사랑을 하고 싶어. 누군가의 노력을 배턴처럼 이어받기도 하는 것. 모두가 포기하려 할 때.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할 때. 방법을 찾아보고 우연에 닿아보는 것.

파프리카는 주황색이 맛있어
파프리카는 주황색이 맛있어
추신, 한 주 동안 잘 지내셨나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던 한 주였죠. 푸른 자연, 붉은 장미, 흔들흔들 아카시아. 오월에도 부지런히 시야를 맑게 하는 자연이 있어 그저 고맙네요. 문득 기분을 맑게 하는 자연처럼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지난 레터에 담긴 원고는 내용에 맞춰 답답함을 녹이고자 문단을 나누지 않았는데, 그게 또 읽는 데 갑갑함을 드리지 않았을까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좋질 않았답니다. 소심함인지 세심함인지. 아무튼 조그마한 것에 조마조마하고 설레는 사람인지라. 이번 글은 그냥 양파를 물고 양파를 써는 것처럼, 송송 대파를 써는 것처럼 써봤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특허를 낼 만한 마음이 있겠죠. 모두 편안한 밤 보내셔요. 오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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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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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경

    1
    over 2 years 전

    요즘의 저한테 힘이 잔뜩 되어주는 글이예요 •• ♥ 늘 사랑이 젤 어려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웃게 하고,,,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은 날 기분좋게 하지만, 간절한 사랑은 매번 애타고 어렵네요 허허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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