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시. 어찌 됐든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시’라는 글자로 끝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이 갔다. 억지로 찾아낸 에이전시와 시의 연결 지점 하나에 이렇게 안정감을 갈구할 일인가 싶지만 그랬다.
대행업이란 어떤 일을 대신 하는 직종을 뜻한다. 나는 왜 이 직종에 속해 있는 걸까.
나의 본업은 시인이고, 나의 생업은 에이전시인이다. 선을 그어도 나는 나고, 본업이든 생업이든 나 하나의 체력과 시간을 쓰는 현실이 변하진 않는다.
이 일을 할수록 분명해진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려면 하루하루 더 큰 용기를 내야 한다. 돈이 아쉬워 용기와 거리가 먼 선택을 해 버린 걸까.
그럭저럭 적성에 맞지만 그다지 재미없는 일로 생활비를 벌다 보면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겸허해진다. 좋아하는 일이나 뻘짓으로 돈을 번 경험이 전무하거나 있어도 날이 갈수록 희귀해지기 때문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고 수습 기간을 한 달 정도 남기고 있다. 두 달간 고분고분하게, 그러면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해내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사무적인 일에도 주관은 필요했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문제를 수거할 때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기준은 엑셀의 피벗테이블과 비슷한 기능을 해야 한다.
에이전시에서 숙련화된다는 건 고객 데이터의 장인이 되는 것. 보호하고, 분석하고, 분류하면서 그가 지닌 생각의 추세를 보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시 쓰기와는 다른 영역의 숙련이지만, 기업의 탈을 쓴 사람들을 대한다는 점에서 모호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재미있다. 해 달라는 대로 해도 좋은 소리를 크게 못 듣는 일이지만 손이 부족한 누군가의 손을 자처하는 일에도 그것 나름의 매력은 있다.
뜨거운 것도 덥석덥석 잡아야 하는 손. 끊임없이 박수를 쳐야 하는 손. 칼질을 반복해야 하는 손.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 손의 역할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 제일은 손과 손을 맞잡거나 맞대는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따뜻한 순간은 외압에 의해 동료애가 짙어지는 순간이다. 생활 속 고충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 에이전시에 들어와서 내심 기대했던 일을 이뤘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두 사람과 점심 식사를 먹으면서 적응하고 방황하고 긴장하는 상황들을 공유하게 되었고 그게 많이 위안이 됐다.
남은 점심 시간에는 회사 주변을 산책하곤 했다. 언젠가 산책길에 초코 음료를 나란히 주문해서 골목을 걷다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 앞 벤치에 둘러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돔황차!“하고 말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웃음이 터져 멈추지 않았던 순간.
우리는 왜 도망치지 못하는가. 우리 중 누가 먼저 자리를 뜰까 궁금한 순간에도 이 사람들과 만나게 되어 오늘 하루도 잘 지냈다는 감사함이 가득하다. 수습 기간이 끝나면 앞으로의 근속 여부와 상관없이 보답의 선물을 드려야겠다. 그동안 덕분에 버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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