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고요, 에이전시인입니다

S#1 돌아온 까치발의 추억

2022.08.26 | 조회 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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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까치는 길조. 행운의 상징이다. 성인이 되고 처음 까치발로 걸었던 때를 기억한다. 이른 새벽 교내 편의점 오픈을 담당했던 아르바이트생 시절. 수업 준비보다 먼저 했던 건 까치발로 기숙사 방을 돌아다니며 출근 준비를 하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그렇게 꾸준하게 출근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얼마 전 나는 다시 까치발로 걷기 시작했다. 손가락 열 개를 접고 다시 펴 세도 모자란 내 밥줄의 행선지. 이번에는 에이전시다. 출근 준비가 아닌 출근을 해서 퇴근할 때까지, 입사 후 나흘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까치발로 걸어다녔다. 백여 명이 근무하는 직장인데도 타자 소리, 한숨 소리만 타닥타닥 하아하아 울려 퍼지는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이전 직장을 그만두며 발이 맞지 않는 서울을 떠나 살아보려고 했지만 코로나19를 앓은 3월 이후 좀처럼 어떤 의욕도 나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 들쳐업고 방 안에 드러눕는 날들이 지속됐다. 휴식의 효과도 잃어버린 채 반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주머니 사정에 떠밀리듯 답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답은 역시나 출근이었고, 이번엔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다.

입사 소식을 듣고 새 학기 증후군을 앓는 아이처럼 2주를 지냈다. 낮에는 매미들이 울고 저녁에는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 시기. 출근을 앞두고 청귤 10kg를 받아 한 알 한 알 정성껏 닦고 썰고 설탕에 재워 두었고, 나만 알 정도로 거주 공간 내부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출근 전날까지 치우고 또 치우고 마침내 위치를 바꾼 침대에서 머리 방향을 바꾸고 누워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 아무리 좋은 구두를 신어도 구둣발에 어울리지 않은 나의 걸음걸이가 양발에 큰 물집을 만들어 터뜨리는 내내 까치발을 멈추진 못했다. 까치가 길조이자 행운의 상징이라면 내 두 발에 실린 마음도 잘해보자는 다짐일 텐데. 다년간 무기력하게 지내며 체중만 늘어난 탓에 하루하루 중심잡기가 참 어려운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럴 땐 과거의 경험에서 힌트를 구한다. 좋았든 싫었든 그 경험이 지금의 파장을 만들었으니까.

긴장과 걱정으로 심신이 피폐해질 때면 점심시간에 밥을 거르고 낙산공원과 창경궁에 걸어갔던 첫 직장 시절. 그날은 여름 지나 막 가을이었고, 창경궁 벤치에 앉아 나무 주변을 걷던 까치 한 마리와 마주했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들어온 볕을 받아 한층 더 깊고 푸른빛을 띠게 된 까치의 날개를 기억한다. 쪽빛에 가까운 날개를 퍼덕이며 까치가 나무에 오를 때까지 모든 생각에 힘을 풀던 그 순간처럼. 열심히 살아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미리 치이지 않고 나는 내가 아주 잠깐의 고요를 소중히 대하길 바랄 뿐이다.

종일 누워 머리에 까치집 짓던 날들은 갔다
종일 누워 머리에 까치집 짓던 날들은 갔다

추신, 안녕하세요. 만물박사 김민지입니다. 부지런히 시를 써야만 시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레터를 못 보내고 있던 사이 저 자신 시인과 라임만 같은 에이전시인이 되고 말았네요. 앞으로는 주 1회 에이전시인이 된 시인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해요. 달고 짜고 매운 음식들을 즐겨 찾으면서 이제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겠다 하고 오래 못 가 다시 굴레로 돌아오는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수기들이 모이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시트콤 같을 때가 많을 거예요. 기대해주시고, 틈틈이 언제든 어딘가에 발표할 작품들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구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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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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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이아닌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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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2 years 전

    시인님! 새로운 시작 축하드려요:) 생활인은 건강해야한다. 자주 떠올리고 있어요… 시트콤 연재..아직 읽지도 못 했는데 공감입니다~!~!😂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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