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이 반 넘게 변할 동안 필라테스를 해 왔다. 동네 주민센터의 소도구 필라테스부터 누자베스를 틀어주는 기구 필라테스까지 여러 곳을 전전했다. 그러다 겨우 정착한 곳이 지금 다니는 센터. 오른쪽 어깨가 솟은 게 신경쓰여 도수치료사 출신 선생님을 찾았는데, 이제야 필라테스의 교정 효과를 체감하게 됐다. 자세가 불편한 어르신, 환자 분들이 다니는 곳이어서 내가 3달 만에 에이스가 되었다. 어느새 운동 목표도 자세교정에서 근력 향상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은 재주 부리는 곰을 훈련시키듯 기이한 동작을 시키고, 내가 어떻게든 해내면 즐거워했다. 우리 센터에 이거 되는 분은 여름 님밖에 없어요!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시키셨잖아요 선생님.
그렇게 1년쯤 지나자 다리에는 제법 힘이 제법 붙었다. 하지만 팔은 여전히 흐느적거린다. 팔 때문에 못하는 동작을 많이 발견했다. 캐딜락 철봉을 양손에 잡고 휘리릭 제비 돌기. 이걸 못 하겠으면 철봉 잡고 다리 들어올리기, 이것도 못 하겠으면 철봉 매달리기. 아니 붙잡고 늘어지기 말고 붙잡고 매달리기… 욕심을 줄이며 시도해 봐도 잘되는 게 하나 없다. 덕분에 요새는 팔 운동에 매진이다. 이두, 삼두, 능형근, 중하부 승모근, 있었는지도 모르는 근육 이름을 외치며 3kg 아령을 양손에 쥔다. 이러고 나면 팔이 3일은 삐걱거린다. 나름대로 특훈을 하는데도 여전히 철봉에 매달리는, 아니 붙잡고 늘어지는 날들이 계속되는 중.
팔 운동 제법 했잖아요, 이건 제 몸이 무거워서 팔이 지탱을 못 하는 거 아닐까요. 선생님은 딱 잘라서 아니라고 했다. 팔에 힘이 없어서 그래요. 팔이랑 코어에 근육을 키우면 할 수 있어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스트레칭을 도와주셨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근육이 뭉치는 걸까요, 그러다 서로의 근육 대신 스트레스에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센터 에이스는 지난주에 권고사직되었고, 20여년 경력의 원장님은 회원수가 줄어 큰일이었다. 서로 도울 만한 건 없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은 걸,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서 운동을 포기한다는 걸 우리가 어쩔 순 없으니까.
세상에 매달리는, 그것조차 어려워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전부인 요즘. 내가 무거워서, 내가 못나서 축 처지는 게 아니란 걸 믿는 수밖에 없다. 나도 선생님도, 중력을 이기기 힘든 누구라도 마찬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가 자신을 끌어올릴 근육을 갖도록 응원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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