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사이로 빼꼼, 종종걸음 바쁜 다람쥐.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귀한 도토리와 알밤을 여기저기 숨기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그렇게 숨겨 묻은 장소를 까먹곤 한다나. 그 덕에 싹을 틔운 도토리가 참나무 숲을 이룬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도토리 대신 소재를 묻어둔다. 버스를 타다가, 샤워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생각나는 소재들. 그때그때 메모장을 꺼내 분주하게 적어둔다. 나중에 뭐라도 쓸 수 있겠지 싶어서. 그러고 곧 잊어버린다. 다행히 메모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다. 다람쥐에겐 없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있으니까. 하지만 써먹지 못한 소재는 싹도 틔우지 못하고 썩기 일쑤다. 기억도 나지 않는 문장 한두 줄. 한참을 미루다 유효기간이 지난 감정들.
고이 묻어두는 게 좋은 소재도 있다. 언젠가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생각의 숲을 이룰지도 모른다. 하지만 웬만한 소재는 바로바로 써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지금 가장 또렷한 나를 담는 게 에세이의 재미니까. 겨울이 와서 글 쓸 거리가 동나면 어쩌지, 그런 건 미래의 내가 해결할 문제다. 고만고만한 소재는 미루지 말고 해치우자. 그래서 이번 소재는 떠올리자마자 바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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