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유튜브를 통해 매주 2회 1) 금요 라이브(서울 10pm), 2) 일요일의 티키타카(서울 10pm) 콘텐츠를 발행합니다.
2021년 1월, 저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맑고 화창했지만, 도시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또 한편에서는 ChatGPT와 같은 새로운 것들이 탄생하고 있었습니다.
3년 간의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마무리하며, 제가 보고 듣고 배운 것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겨봅니다.
1. 무엇을 보았는가
1 ) '시장의 진자운동'(market pendulum)
2021년 실리콘밸리에서 '과잉과 수축', 그리고 '마켓 사이클'이 무엇인지를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금융투자업 분야에는 '부채 사이클'과 '테크 사이클'이 있습니다. 2008년의 과잉과 수축을 만든 것은 부채 사이클이었고, 2021년의 과잉과 수축을 만든 것은 테크 사이클이습니다.
하워드 막스는 사람들이 10년 정도 지나면 '주기는 없다'라고 성급하게 결론내린다고 말했지만, COVID는 그 기간을 1년으로 줄였습니다.
COVID가 시작된지 8개월만에 사람들은 'PDR'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다.
한국투자證 "기업의 꿈도 가치측정"…PDR(Price to Dream Ratio)지표 개발 (2020.10.14, 조선비즈)
버블이 꺼지고, 다시 현실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주가·꿈 비율(PDR)’은 어디로 갔나 (2022.1.27, 서울경제)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3년은, 역사상 가장 짧은 시기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가 창출되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시기로 기억될 것입니다.
시장이 과열되었을 때 시계추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2 ) 운용사들의 자기 정당화 (self serving)
2021년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매출액'('이익'이 아닙니다) 대비 50배 이상을 넘어갔을 때, 어느 운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지금은 닷컴 때와 다르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1) 확실한 수익모델을 기반으로 돈을 벌고 있고, 2) 매출 성장률이 50%-100% 수준으로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펀드에 투자하면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2023년 동일한 운용사는 실수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가 틀렸다.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보여준 2021년의 매출성장률이 최소한 2-3년 이상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이 틀렸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밸류에이션이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펀드에 투자하면 좋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언제나 그럴듯한 논리는 있습니다.
'독립적 사고능력'이 없으면 돈을 잃게 됩니다.
3 ) '유토피아'에 대한 아이디어가 만든 디스토피아 -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가 지금과 같은 범죄도시가 된 데에는 정치의 역할이 컸습니다.
- 2014년 캘리포니아 주는 $950 이하의 재산손해가 발생하는 범죄를 '경범죄'로 분류하고, 이에 대해 기소처분하지 않는 법안인 Proposition 47이 통과되었다.
- 샌프란시스코 시는, 마약중독자들이 주사기를 돌려쓰는 데서 발생하는 질병문제 해결을 위해 새 주사기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1998년부터 시작했다. 2018년에 이미 매달 주사기 40만개 이상을 무료료 나눠주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의 홈리스들이 집을 갖지 못한 것은 너무 빠르게 상승하는 주택 가격 때문이고, 이는 사회가 책임져야할 부분이므로, 그들에게 거주공간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한국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과 법안이 오늘날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들었습니다. 1차원적인 생각, 순진함,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선의라는 것은 필요하지만,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선의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2 . 무엇을 배웠는가
1 ) 의사결정 모델에 대한 생각
2023년 한 해에만 200개 이상의 벤처운용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만난 200개의 벤처 운용사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섹터, 지역, 투자대상 단계, 역발상, 포트폴리오 집중도 등 여러 측면에서 돈을 버는 방식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제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운용사의 '의사결정 방식'이었습니다. 벤처운용사들의 '투자 의사결정 방식'은 크게 아래 2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 파트너 개인이 각자 예산과 권한(discretion)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투자
- 파트너 전체가 합의(consensus)를 도출하는 방식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혼합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5명의 파트너가 각자 재량에 따라 투자하지만, 특정 파트너가 특정 투자 건에 대한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운용사도 있습니다. 다만 해당 운용사의 경우에도, 최근 10년간 단 한번도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없었습니다.
초기단계에 투자하는 벤처운용사일수록 창업자의 역량에 대한 질적 판단이 의사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파트너 재량에 따라 투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성숙단계 기업에 투자할수록 재무지표나 사용자 지표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합의기반의 의사결정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특정 분야별로 각 파트너의 역량과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1인 1표 제도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하면 투자의사결정 과정에서 1) 정치적 의사결정을 방지하고, 2) '신뢰도 가중 의사결정'을 구현해낼 것인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여러 명의 투자담당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용사 내에서 이런 미묘한 역학관계를 누가, 어떻게 조정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벤처펀드에 투자여부를 결정할 때, 이런 미묘한 의사결정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결정 방식'에 설계가 결국 뛰어난 성과로 연결되며, 그것이 지속가능한지를 분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 팀은 개인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Commit to produce an outcome greater than one would have developed in a silo"
팀워크(collaboration)에 대한 정의입니다.
지난 3년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알게된, 팀워크에 대한 단순한 진실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팀으로 일한다는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 충돌과 헌신(disagree and commit)이 필수적이다.
- 목표 뿐만 아니라 수단까지 같아야 한다.
- 지속가능한 팀워크가 이루어지려면 무관심(apathetic), 이기주의(selfish), 이타주의(selfless)가 아닌 호혜주의(otherish)가 필요하다.
- 서른살이 넘은 특정 개인의 근원적인 행동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3 ) 나는 두 번 틀렸다
2019년 비상장 기업이던 팰런티어는 시장에서 $10B의 밸류에이션으로 구주가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3년 전인 2016년 신주증자 당시 밸류였던 $20B에 비해 반토막난 가치였습니다.
당시 팔로알토에 위치한 팰런티어 본사에 방문해서 소프트웨어 데모까지 볼 기회가 있었지만, 여전히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생각해서 투자를 포기했습니다.
팰런티어는 그로부터 1년 후인 2020년말 뉴욕증시에 상장했고, 2021년 1월에는 시가총액 $80B을 기록했습니다.
2년 만에 8배가 벌 수 있는 투자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내가 틀렸구나, 이런 cutting edge 기업은 무조건 투자를 했어야 했구나"
다시 2년 후인 2023년 1월, 팰런티어의 시가총액은 곤두박질쳐서 $15B까지 반에 반토막이 나버렸습니다.
"나는 두 번 틀렸다"
3 . 남은 이야기들
다음 번에는 아래와 같은 3가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2021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다르게 했을까
- 앞으로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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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록
3년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의견 교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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