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쓸데라곤 없는 이야기

(부록)2022.11.25.

2022.11.25 | 조회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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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모종의 불안감을 느낀다. 어쩌면 기묘한 안정감. 물론 생각보다 자주 드는 느낌이다. 그것은 느낌인 동시에 어떤 생각이다. 생각 속 불안. 불안 속에서 꾸는 꿈. 불온 속에서 느끼는 어떤 기묘한 안정감. 이런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나의 삶이 불안하면서도 안정되어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 나의 가정, 나의 현재상태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에 나오던 어떤 왕이 궁전의 모든 집기로 쌓아올린 탑처럼. 동화 속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한 왕은 어느 날 문득 저 하늘 위 달에 닿고 싶었다. 그래서 궁궐 내부의 모든 책상과 식기와 샹들리에와 사다리와 온갖 도서와 문서들, 자질구레한 의자와 작은 가구 따위를 한데 모으라 명령하고 그것들로 탑을 쌓아 달에 닿으려고 했다. 하늘 위 저 밝은 달에.

  어쩌면 우리도 모두 매일 동화 속 왕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자질구레한 접시나 가구 따위를 모아 각자 어딘가에 닿는 탑을 쌓으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그 매일매일을. 그것이 우리가 하루 또 하루, 매일매일 공들여 끝끝내 마치고야 마는 일과다. 기묘한 안정감. 어쩌면 다행인 것은 우리가 상념과 추상 속에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에 세우는 기묘한 이 탑은 동화 속 왕의 그것과는 달리 영영 쓰러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따라 쓰러진 것 일수도 오히려 바로 선 것 일수도 있다. 상념과 상상 속엔 명확한 물리법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매일 세상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수행자처럼 공들여 몸을 씻고 밥을 어딘가에 욱여넣고 필요하거나 도통 필요 없는 일을 하고 또 그 사이사이에 조그맣게 웃고 이따금 어딘가에 퇴적되듯 앉아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세상은. 나와는 관계없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물론이다.

  내가 오래전 대학생활 동안 자신의 의지로 가장 많이 한 행위는 경상대 옥외 옥상에 위치한 벤치에 가서 낮잠을 자던 일이다. 그것만은 틀림없이 나의 의지로 해냈다. 인문대생인 나는 굳이 멀리 떨어진 경상대로 가서 또 그곳 옥외 옥상까지 굳이 올라가서,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버려져있는 듯 놓여있는 벤치를 그늘로 끌어 옮겨 거기에서 다리를 꼬고 잠을 청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곳 외에 쉴 곳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그것은 내게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물론 끝끝내 누구에게도 이런 말은 못했지만.

  일종의 의식. 굳이 변명해보자면 나에겐 쉼이 필요했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일과 일 사이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휴식이. 그저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난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구에게 설명할 수도 설명할 힘도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도 내겐 없었다. 아니면 그저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돌이켜봐도 그것은 당시의 나에게 필요한 행위였다. 그것만은 지금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한쪽 팔로 팔 베게를 하고 벤치에 드러누워 다리를 꼬고 있으면 대학 교정이 내는 갖가지 소리들이 들려온다.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들이 건물 아래를 지나치고, 몰래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나오는 이들이 나를 발견하고 멈칫하는 소리가 멀어지고, 경상대 뒤편 숲 너머로 커다란 트럭소리가 넘어 사라지고 어딘가에서 몰래 들어와 교내를 돌아다니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지난다. 인간이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만이 낼 수 있는 소리들을 내며 서로 가까워지고 또 멀어진다. 나는 그 소리를 듣다 얼마간 잠이 들었다가 끔찍한 육체의 무게를 느끼며 다시 일어난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오늘도 기꺼이 살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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