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생생 월드 쏙쏙

제 21회, 일기

2022.05.20 | 조회 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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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이번 주의 주제는 일기지만 오늘은 먼저 동물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한번은 대학교 2학년 때 수업을 빼먹고 동물원에 간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다. 봄이었다. 숫자 7로 시작하는 파란 버스를 타고 나를 포함해 7명이 학교를 벗어나 동물원에 놀러갔다.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가고 싶었으니까. 무척 더워 보이는 북극곰 우리와 냄새나는 낙타 사육장을 지나 좀처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원숭이 사육장 앞에 도달했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정확히 어떤 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혹은 내가 잘못되어 있거나. 물론 그것은 찰나의 감정이었고, 당시도 지금도 그 기분과 감정의 세부를 분석하고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만한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문득 모두 비현실적이라고 느꼈을 뿐이다. 감정은 그저 지나갔고, 적당히 동물원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입구에 위치한 화단 비슷한 곳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저 후배 중 한명이 그날 우연히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고 날씨가 좋았을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 꽤나 오랫동안 동물원에 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동물원에 갔을 때는 그 후로 대략 8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파리로 유명한 동물원이었고 나는 기린과 암사자를 보았고 앵무새를 보았고 판다를 보았다. 그날은 전처럼 비현실적인 감정 같은 건 느끼지 않았다. 즐겁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문득 그 동물들이 내가 다녀왔던 일에 대해 기억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날도 집에 돌아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습관처럼 기록하다가 기록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혹은 하지 못하는) 그들이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졌을 뿐이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동물원에 있는 대개의 초식동물들은 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와는 반대로 원숭이를 포함한 잡식동물이나 사자 같은 육식을 하는 동물들은 내가 다가가면 나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 부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먹이가 나름 멋지게 차려입고 자신의 집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해 보였을까. 더 깊게 각인하여 더 오래 기억하려고 했던 것일까.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동물원에 발길을 끊었다.

  나는 기록하는 동물이다. 그것 말고도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 많다고 항변하면 나는 할 말은 없지만 그저 반복해서 말할 수는 있다. 나는 기록하는 동물이다. Homo Archivist라고도 한다. 새로운 개념만 나오면 온갖 단어에 접두사 Homo를 붙이는 일이 썩 달갑지는 않지만 실상이 그런 걸 어쩌겠나 싶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언젠가 세월 속으로 사라진다.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이고, 현대 사회에서 아카이빙 즉 공유 기록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사소한 사건부터 국가 단위의 중차대한 사건까지 또 공식적인 기록 아카이빙은 물론 개인차원에서 행해지는 개인 기록의 중요성 역시 나날이 커지고 있다. 모두가 카메라와 메모장을 손에 쥐고 다니는 시대의 기록은 과거보다 더욱 손쉬워졌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 정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데이터 광산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이들은 대체로 권력자였다. 대표적인 기록물들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가 그 예일 것이다. 왕족이 아닌 이들의 기록도 적게나마 남아있지만 모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양반가의 기록일 뿐이다.

  이따금 일기 비슷한 것을 쓴다. 어떤 거창한 사명감 같은 걸 가지고 쓰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저 쓰고 싶어서 쓸 뿐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쓰고 싶어서, 쓸 수 있어서 쓴다. 언젠가 우리 중 누군가의 기록도 미래의 어떤 박물관에 전시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쓰고 있는 것, 기록하는 것 모두가 다른 어떤 때도 아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엇이니까. 기억은 기록되고 어떤 기록들은 보존된다. 금요시음회의 글들 모두 좋든 나쁘든 슬프든 기쁘든 모두 기록되고 어떤 의미에선가 보존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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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그런 기록 중에는 조금은 치기 어리고 부끄러운 과거도 있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된 재밌는 뉴스가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지난 2020년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한 남자가 부모님 집 다락에서 수십 년된 일기장을 발견했다. 해군 역사학자이자 토론토 대학의 교수인 Nick Gunz는 집을 공사하던 중 이 일기장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일기장은 19839살에서 10살 정도였을 때 그 집에서 살고 있었던 Alison Jenkins가 쓴 것이었다. 일기장 앞면에는 그녀의 이름과 절대 읽지 말라는 귀여운 경고가 적혀 있었다. Gunz는 자신의 트위터에 앨리슨 젠킨스, 나는 당신이 198310살 때 쓴 일급비밀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적으면서 그는 일기장 전면에 적힌 심각한 경고에 따랐으며 단지 그녀의 이름과 나이만 훑어보았다고 덧붙였다. 며칠 후 Gunz는 페이스북을 통해 Alison Jenkins가 캐나다 벤쿠버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Gunz는 이윽고 일기장을 그녀에게 소포로 보냈다. 그렇게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교사인 Jenkins37년 만에 자신의 일기장을 되찾게 되었다. 그녀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지금도 가끔 남자친구에게 다른 오래된 일기장을 읽어준다. 그 일기들은 과하지만 또한 멜로드라마틱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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