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지냈나요?
태연히 건네는 이기적인 인사지만 그래도 꼭 답해주셨음 해요. 그동안 잘 지냈나요?
저는요, 글쎄요. 내가... 잘, 지냈나? 잘 지내냐는 질문을 들을 때면 자동응답기처럼 “아임 파인, 땡큐. 앤유?”하며 도망쳐버리고픈 심정입니다. 궁금한 것은 당신의 안부이니 내 것은 인사치레만 해두고 넘어가려 합니다.
안부보다야, 그동안 사랑해 온 것들을 이야기하는 게 저에게 더 맞겠지요. 저는 지난 네 계절동안에도 여전히 열심히 사랑하고 살았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견고히 쌓아 올려 저만의 방을 꾸렸어요. 그 안에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폭신한 침대만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책임지고 싶지 않은 책임이 늘어난 어른이란, 단단한 벽돌인 줄 알았던 가림막이 그저 모래알에 불과했단 것을 깨닫는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언제나 그래왔지만 요즘은 특히나 ‘언어’라는 것에 더 관심이 갑니다. 문자로 쓰이지 않는 언어들이요. 저는 문자를 쓰고 고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비로소 저를 설레게 하는 언어들은 문자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그려지는 것. 종잇장을 밥처럼 갉아 먹던 책벌레 시절을 지나, 소리에 매료되어 길을 잃었다가, 다시 보는 것으로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이야기한 적 있었나요? 저는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던 순간, 평생 이렇게 무언가를 좋아하며 살게 될 거란 운명을 깨달았답니다.
요즘 제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입니다. 제목부터 제가 열렬히 좋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죠. 주인공 진우는 청각장애인이에요. 그는 모은과 사랑합니다. 청인인 모은은 진우와 대화하기 위해 수어를 배워요. 둘은 종종 필담을 나누기도 하지만 마음이 익어갈수록 둘 사이를 오가는 수어가 잦아집니다. 뻔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그렇습니다. 당신의 언어와 표현법이 궁금해지고요. 급기야 당신처럼 생각하고 싶어지고, 당신이 보고 듣는 세계를 다정히 침범하길 욕망합니다. 언젠가 우리의 모든 언어가 같아지길 꿈꾸면서요.
제가 아는 사랑은 서로를 만지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당신의 커피 취향이 궁금하고, 이런 날엔 따듯한 걸 마셔야 할 텐데 염려하고, 가장 좋아하는 양말 따위가 궁금하고, 크리스마스면 꺼내 보는 영화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둔 책을 함께 보고 싶은 일입니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당신이 더 알고 싶어 그 폭신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꾸만 당신 생각이 나서 아무런 일도 하고 싶지 않은 낮을 맞는 일입니다. 그렇게 질척거리고 싶지 않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매일 안부를 묻는, 그런 마음이지요.
그러니 제가 전할 인사는 이뿐입니다. 잘 지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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