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생생 월드 쏙쏙

제 29회, 청소

2022.07.15 | 조회 369 |
0
|

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갑자기 좀 우스운 말 같지만, 콱 죽어버리는 것보단 하루하루 기어코 매일 살아내는 일이 백배 천배는 더 어렵다. 내가 술에 취하면 자주 내뱉는 말이다. 삶은 한편으로는 찬란하지만 그 찬란함을 위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의 부스러기 따위가 너무나도 많다.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주기적으로 그것들을 기꺼이 청소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주기적으로 나는 나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며 여러 사건과 시간과 사람들이 남긴 잔해들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어딘가에 밀어 넣거나 버려버린다. 그것들을 청소하지 않으면, 쌓여있는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감정의 통로에서 끌어내 치워버리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한 번은 어딘가에서 막히게 된다. 반드시.

아, 어렵고 어려워라. 살아간다는 것.
아, 어렵고 어려워라. 살아간다는 것.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불가항력으로 찾아오는 매일을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새로운 하루가 찾아올 때마다 기존에 느껴봤거나 혹은 사는 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들이, 나나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안으로 무작정 흘러 들어온다. 우리의 의지와는 결코 무관하다. 장담할 수 있다. 물론 다행히도 어떤 감정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주로 긍정적인 감정들이 그렇다. 뜻밖의 칭찬이나 사랑의 감정, 우정의 신호, 낯선 이의 호의 같은 부드럽고 씹어 삼키기 쉬운 감정들은 소화하기에 용이하다. 그러나 다른 많은 감정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은 대개 쉽게 흘려보내기 쉽지 않다.

  대책 없는 우울 혹은 부정적인 말들이나 상황, 예를 들면 누군가와의 이별, 숭고한 페어웰, 영원한 안녕과 같은 것들은 불현 듯 우리를 덮쳐오는 자동차 같다.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하나하나의 감정들은 마치 자동차 한 대를 통째로 해체해놓은 것 같아서 도통 어디론가 흘려보내기 어렵다. 영 요원하다. 크랭크축처럼 커다랗고 어딘가에 걸리기 쉽게 생겨먹었거나, 작은 베어링 같이 마음의 바닥에 흩어져 온통 굴러다니거나, 대형 트럭 8기통 엔진처럼 대책 없이 커다랗기 때문에 처치가 영 곤란한 것이다.

  어쨌든 청소해야 한다. 치워내야 한다. 투덜거리고 울며 불평해봐도 어쩔 수 없다. 기어코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자존감의 베어링을 줍고, 슬픔의 크랭크축을 뽑아내고 지게차를 가져와 썩어 문드러진 심장같은 엔진을 통로에서 치워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찾아서 치우고 정리해야 한다. 물론 어떤 경우엔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찾아내긴 해야 한다. 막힌 곳을 찾아내서 정리하고 감정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언젠가 어떤 새벽에 이유도 모른 채, 하수구가 막혀 온 집이 물에 잠기는 꼴을 보게 된다. 집 밖으로 도망쳐도 소용없다. 누군가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어떤 형태든 대가를 지불하게 되며, 결국 마무리는 나 자신밖에 할 수 없다. 나의 집이고 나의 마음인 것이다.

  지난 20211011, 한 인도네시아 여성이 수족관 청소를 하지 않은 남편의 애완물고기 아로나와를 튀김 요리로 만들었다. 용을 닮은 고대 어종인 아로나와는 종류에 따라 보통 10만원부터 150만원 사이의 가격에 구할 수 있지만, 희귀한 종의 경우 몇 천 만원 혹은 몇 억 원에 달하는 값비싼 애완동물이며, 중국인들은 부와 번영의 상징이라고 믿는다. SNS서비스 TikTok에서 miakurniawan01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여성 Mia는 남편이 키우던 아로나와를 비늘을 제거한 뒤 튀기는 20초 분량의 영상을 공유했다. 이 클립은 입소문을 타고 며칠 만에 700만 회 이상의 조회수와 20만개에 육박하는 좋아요를 받았다. Mia는 남편이 어항 청소를 하겠다고 반복해서 약속했지만 계속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녀는 더러운 수족관을 참을 수 없어 직접 나서서 청소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과정에서 아로나와는 병이 들어 결국 죽어가게 됐다. Mia는 죽어가는 물고기를 그냥 두느니 튀김으로 만드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조금은 농담 같은 기사를 가져와 써놓았지만 어쩐지 마냥 웃을 수가 없다. 서글픈 일이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금요시음회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