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매정한 취향수집

제 15회, 벚꽃

2022.04.08 | 조회 3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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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이번 한 주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조금 과장하자면, 매일이 새롭고 기다려지는 일상이에요. 아침마다 커피를 한 잔 사서 출근하는데요. 귀를 틀어막은 이어폰의 음악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텀블러 속 얼음의 경쾌한 달그락 소리를 들으며 그리 달갑지 않은 출근길을 걸어요. 출근 직전, 회사 앞 벤치에 앉아 오늘의 기분을 점검해요. 대개 하는 생각은 '아, 집에 가고 싶다'이죠. 하지만 요즘은 달라요. 분을 다투며 피어나는 벚꽃을 관찰하며 살거든요. 아침 출근길과 점심 산책 시간, 저녁 퇴근길, 때에 다르게 조금씩 더 피어나고 있네요.

 

 

4월 8일, 오늘 아침의 벚꽃
4월 8일, 오늘 아침의 벚꽃

 


이 아름다운 것이 느리게 피어나 조금이라도 더 만끽할 시간을 줬으면 싶다가도, 어서 흐드러지게 만개해 조그마한 바람에도 비처럼 내리길 바라기도 해요. 이러다 비가 오면 너무나 억울하겠지만, 비 오는 날 맞는 벚꽃비만큼 낭만적인 것은 없다고 느끼며 허무함을 달래기도 하죠.

 

 

벚꽃비 내리던 날
벚꽃비 내리던 날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빛,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다 그 자체. 땅에 발붙이고 사는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건 벚꽃이라 생각해요. 오늘의 편지에는 벚꽃을 향한 저의 사랑을 가득 담아보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가득히 사랑하는 것은 이름부터 들여다봐야 해요. 말하기 우스울 정도로 참 한결같은 취향을 가졌다 생각하실까요. 그래도 이런 말이 있잖아요. "어떻게 이름도 이래?"하면 끝난 거라고.

 

어떻게 이름도 벚-이지.

 

벗-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한글로만 이루어진 말은 자꾸만 입안에 굴리고 싶고요. 벚-이 사실은 '버찌'를 줄인 말이란 것도 너무 귀엽습니다. 버찌. 나무-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단단한 것을 말하는 단단한 발음을 가졌지만 뭔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지요. 꽃-도 세상에 비슷한 말은 더 없을 것 같은 독보적인 매력을 가졌고요. 버찌, 벚, 벚나무, 벚꽃. 이름부터 이리 예쁜데 생긴 것은 더 예뻐요.

 

 

 

 

 

단단한 나무 끝에 어찌 그리 연약한 것이 피어나서, 바람에 송이째 톡 하고 떨어질 정도로 쉬울까요. '쉽다'는 표현을 이렇게 써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참 쉽습니다. 너무도 쉽게 발밑에 톡 떨어져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일 년에 반 달 남짓 우리를 매혹하는 벚꽃.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됩니다. 짧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느끼는 것일까요. 쉽게 떨어져 내리기에 마음 줄 수밖에 없는 걸까요. 해가 바뀔 때마다 그 짧은 반 달, 15일 정도를 위해서 살아보자 다짐하기도 해요. 절망스러운 이상 기후로, 벚꽃이 3주 넘게 피어 이상했던 어떤 봄을 회상하면서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데, 그래서 더 기뻤던 때를 다시금 기대하면서요. 올봄은 사월이 되자마자 날이 무섭게 따뜻해지고 있어요. 이러면 벚꽃의 생이 짧아지는데-하며 불안해하는 사월의 여덟 날을 보냈습니다.

 

 

 

 

읽던 책 위에 벚꽃잎을 누이면 활자가 비쳐 보이지만, 투명하지도 불투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투명하다 말하기에도 애매한 듯해요. 비에 젖으면 마치 비누 꽃처럼 녹아버릴 것만 같죠. 바다를 파란색, 또는 투명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벚꽃도 흰색, 아니 분홍색, 투명, 불투명, 무언가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들어요. 무엇이라 굳게 정의할 수 없는 그 오묘함에 끌리는 것 일지도요.

 

저는 무엇이든 또렷하게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니, 생각이라기보다 그게 맞다고 여겨요. 분류는 그저 효율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요. 한 가지로만 설명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 저에 대해 말한다면 고민을 거듭해 한 가지 말로 정리하기보다 두서없이 늘어놓는 것이 더 반가울 것 같아요. 우선 누군가 저에 대해 말하려 한다는 것만으로 벅찰테지요. 이렇게 매일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쏟아내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그런 대상이 될만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하다가도 이왕 하는 거, 잘해보고 싶어요. 영속은 없다고 믿던 봄을 지나, 이제 매년 봄의 벚꽃을 기다리고, 어쩌다 보니 잘 살고 싶어진 제가 어색하네요.

 

 

 

 

언젠가 파란 벚꽃잎을 몸에 새기자 다짐하고 있어요. 세상에 없는 것이지만 파랑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고, 벚꽃은 가장 아름다운 존재 중 하나이니까요. 예쁘고 사랑하는 것을 몸에 새기면 살아감이, 조금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요? 몸에 새긴 말도 안 되는 파란 벚꽃을 자랑해보면서요. 언젠가 실천하게 된다면, 구독자님께도 꼭 자랑하러 올게요.

 

 

다음 한 주도 무사히, 건강하게, 즐겁게, 되도록 재미있게, 벚꽃 바람도 많이 맞으면서 보내시길 바라요. 그 아래에서 이 노래도 꼭 들으시구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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