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신발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조금 쓸쓸해진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신발을 파는 사람이다. 신발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고 신발을 발명한 사람일 리는 당연히 없고 그는 심지어 신발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그저 신발을 파는 일을 한다. 먼 곳에 있던 신발을 이곳에 가져와 판다. 밤 열두시에 비로소 시작하는 동대문 도매시장 골목을 익숙한 듯 쏘다니며 물건을 고르고, 새벽같이 차를 몰고 돌아와 가게에 들여놓고 다음날 아침부터 판다. 매달이 지나고 물건이 떨어지거나, 계절이 바뀌거나 하면 그는 밤늦게 차를 몰고 동대문으로 간다. 그는 이 일을 거의 사십 년을 넘게 해왔다. 십대 후반부터 부천에서 서울 사대문 안쪽으로 일을 다녔다. 87년 민주화운동으로 서울 곳곳에서 그와 비슷한 연배의 학생들이 최루탄을 피해가며 학생운동을 벌일 때에도, 그는 쓰러진 학생들을 조금씩 도와주며 출근을 하고 또 퇴근을 했다.
언젠가 젊었을 적 아버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지하상가 신발 가게 구석, 낮은 사다리 위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카메라를 보며 어설프게 웃고 있는 아버지 뒤로 새카만 구두들이 선반에 가득 했다. 그는 구두 왁스와 운동화본드 냄새들 사이에서 청춘의 시절을 보냈다. 그는 IMF를 비롯한 수많은 일들을 겪고 사십이 다 되어서야 자신의 가게를 갖게 되었다. 지금도 물건이 필요하면 그는 여지없이 동대문에 찾아가, 단골도매상에서 건네는 믹스 커피를 홀짝이며 물건을 고르고, 차가운 숨을 몰아쉬며 트렁크에 싣고 아침이 되어서야 가게에 도착한다. 잠이 쏟아져 자꾸만 감기는 눈을 비비며 오와 열을 맞춰 신발을 가지런히 가게 바닥에 늘어놓고 가져온 신발의 수량을 헤아린다. 그런 그의 모습을 몇 번이고 본 일이 있다. 정리를 끝낸 그는 낡고 파란 프라이스 건을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신발에 가격표를 붙인다. 모든 일은 엄숙한 침묵 가운데 이뤄진다. 대부분의 세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가게 문도 아직 열리지 않았고, 신발들은 오와 열을 유지한 채 침묵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가격표를 기다린다.
나는 여타 세상의 많은 자식들처럼 아버지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신발과 그를 동시에 생각하면 조금 쓸쓸해질 뿐이다. 분명 그는 이상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끝까지 말하지 않는 지독한 버릇을 가지고 있고,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고, 누구에게든 칭찬이라곤 할 줄 모르며, 더불어 내가 시도하는 모든 것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습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매일 아침 신발을 신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침묵 속에서 신발을 신고 모든 일과를 끝마치고 돌아와 그 신발을 벗고 비로소 쉬는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 그가 그 신발들을 팔아 번 돈으로 밥을 먹고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신형철이 언젠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빌려 말한 것처럼, 사랑이란 ‘교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나의 일처럼 그 교환은 늘 어긋난다. 아버지는 자신을 희생해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그저 애증을 깊게 품었을 뿐. 안타깝게도 그 불가능은 현재진행형이다. 나의 사랑과 애증과는 별개로,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버지의 과거와 지난 고생의 시간들을 되돌려줄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서로를 점잖게 비난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다만 멀리서 서로를 사랑한다. 이 부조리하고 병리적인 감정을 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용기를 내어 지금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는 내게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지금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지금도 그저 매일 묵묵히 신발을 팔아 따뜻한 밥을 사고 어떤 조용한 휴일을 사고 별 탈 없는 하루를 살 뿐.
이따금 길을 걷다가 신발 끈이 풀리면 나는 미운 그를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증오해 마지않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한다. 애증하고 사랑하는 그의 얼굴을 생각한다. 길바닥에 쪼그려 앉아 말없이 신발 끈을 묶을 때만큼은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로지 애정한다. 거친 운동화 끈을 양손으로 맞잡아 매며 그의 어떤 밤 열두시와 동대문 도매상가와 그곳의 낡은 계단과 차갑고 습한 공기를 생각한다. 그의 낡고 파란 프라이스 건을 생각하고, 그의 지친 옆얼굴과 그가 언젠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믹스커피와 그의 어설픈 미소와 그의 지나간 어설픈 청춘을 생각한다. 신발을 보면 이따금 그를 생각하고, 그렇게 신발과 그를 생각하면 오늘도 어김없이 조금 쓸쓸해지고 마는 것이다.
* 오늘의 뉴스 소개는 생략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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