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랑의 「그러니까... 편지#1」

다시 새로운 개편이다.

  바로 이전엔 월드뉴스에 곁들인 허접한 잡소리였고 (아시겠지만 허접한 잡소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필자 본인의 코너 한정이다) 그보다 전엔 동화에 관한 생각과 목소리들을 담은 팟캐스트였다. 이번 새로이 개편된 코너엔 어떤 이름을 붙여줘야 할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어떤 내용을 담아야할지 여러모로 궁리를 하다 결국 어떤 형태든 여러분들에게 가 닿길 바라니, 일단은 편지라는 이름을 붙여볼까 한다. 그러니까 너무 거창하진 않게.

그러니까, 편지 #1

  여기에 한 가지 쓸데없고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과 쓰고 있는 내가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물론 우리는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일수도 있다. 전혀 모르는 사이일수도 있고.(물론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우리가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은 내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으며(간절한 바람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글을 읽도록 개발된 일종의 웹 봇 혹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생명체일 수도 있겠다.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읽고 쓸 수 있는 고등 외계생명체. 음, 당신이 무엇이든 간에 우선은, 환영한다. 당신의 정체에 대해 명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볼 순 있다. 당신이 이곳까지 들어와 이 허접한 편지를 읽는 외계생명체라면 인류까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적어도 한국 사회의 밑바닥까진 들여다 본 셈이다. 축하한다. 이제 당신은 지구촌 어느 구석에 가던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한민국에 대해선 알만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라지는 건 없다.

  당신에게 건네는 이 편지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까,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을지 오래 고민했다. 거실 익숙한 소파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좋아하는 감자칩을 입에 넣으며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면 좋을까 잠시 골몰하고, 주머니에 언 손을 쑤셔 넣고 눈 쌓인 내리막길을 서둘러 내려가며 생각하고,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또 어떤 조용한 저녁에 조용히 생각했다. 만약 내가 갈 수 있었다면 어떤 외딴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사막 하늘에 가득한 별을 구경하느라 당신 따윈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여러 단어들이나 개념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우리는(금요시음회) 왜 단어가 아닌 문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떤 저녁, 제목도 모르는 재즈 음악들을 듣다가 내가 가진 문장들을 조금씩 꺼내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중 마침내 한 문장을 고르고 소파에 앉아 랩탑을 무릎 위에 올리고, 물주머니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워 배위에 올린 뒤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다.

달라지는 건 없다. 달라지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이야기에 앞서 나의 안부를 조금 전하고자 한다. 첫 번째 안부는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며칠 전 나는 통풍에 걸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 통풍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갑자기 부어오른 발등을 붙잡고 찾아간 병원 좁은 진료실에서 날 마주한 의사는 나에게 지극히 도스도옙스키 같은 문장을 던졌다.

“일단 보기에는 통풍이 확실한 것 같은데요.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겠군요. 음… 그런데… 지금 이 나이에 통풍이 오면… 쉽지 않을 겁니다…….”

  쉽지 않겠지만 나의 병은 아마도 통풍일 것이다. 병명이야 어쨌든 나는 문득 도스도옙스키나 톨스토이 소설 속 어느 주인공처럼 추운 날씨와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에 지병을 앓고 있는 존재감이라곤 없는 하급 공무원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병명도 정확치 않다니. 너무나 소설적이지 않은지.

  며칠 전 저녁 갑자기 왼쪽 발등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곤 발등 안쪽으로 조금씩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군가 주먹으로 툭툭 슬쩍 치는 것 같았고 나중엔 조그만 칼로 끊임없이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워 발이 어딘가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했고 왼쪽 발을 땅에 디딜 수가 없어 절뚝거리며 걸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피검사 결과 내 몸 안에 축적된 요산수치가 7.8이 넘어야 정확한 병명을 통풍으로 진단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 나의 요산수치는 6.7이 나왔다. 의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곤 일단 며칠 항생제를 투여하고 지켜보자고 했다. 병명은 여러 가지로 생각하건데 통풍이 맞을 것이라 했다. 만약 통풍이 아니라면 그것도 문제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나의 왼쪽 발등은 노을이 저무는 작은 언덕처럼 붉게 부풀어 올랐고, 그 언덕을 조그만 나이프로 집요하게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계속됐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은 집까지 절뚝이며 삼십분이 걸렸다. 고통 때문에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깁스를 하거나 목발을 짚으면 좋았겠지만 의사가 판단하기에 그만한 통증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가 없었다.

  검사 결과 요산수치는 통풍에 미달이었지만 염증수치가 정상범주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은지 오래고, 특별히 과식을 하지도 않고 체중도 정상범위다. 그러나 어쨌든 염증수치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이다. 오래 앓고 있는 식도염 때문일까? 얼마전 다녀온 일본 여행이 문제였을까? 알 수 없다.

  계속되는 통증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에서 집까진 평소에 십 여분, 느긋하게 걸어도 십오 분 걸릴 거리였는데 그 길을 삼십분에 걸쳐 돌아왔다. 물론 강제로 느긋해진(?) 귀갓길의 좋은 면도 있었다. 천천히 걷고 있으니 주위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그야말로 노인의 시선이었다. 길에는 평소의 내가(주위 풍경 따위 쳐다보지 않으며 아주 빠르게 걷는) 인식하지 못했던 처음 보는 가게들이 많았고, 낯선 간판들과 사람들과 더러운 비둘기들과 회색빛 하늘마저 모두 새롭게 보였다. 그야말로 노인의 시선. 모든 사물과 사람과 세상이 아주 느린 속도로 절뚝거리며 나의 시야를 빠져 나갔다. 발걸음이 성치 않으니 핸드폰을 보며 걸을 수도 없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걸으면서 핸드폰을 하지 않으니 손목염증과 행인과의 접촉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도 낮을 것이다. 어차피 오래 걸릴 일, 나는 평소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골목길로 들어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달라지는 건 없다?

  흔히들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도 한다. 시쳇말로 시대가 바뀌었단 말은 너무나 많이 들어서,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정색하고 그들에게 대체 무슨 시대에서 무슨 시대로 바뀐 것이냐고 진지하게 묻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물론 그들의 그 선언은 일견 올바른 선언이다. 시대는 바뀌었고 항상 바뀌고 있다. 내가 세상을 인지한 시점 훨씬 그 전부터 시대는 변화해왔다.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근현대사 교과서에나 나오는 전후세대나 포디즘(Fordism)의 시작을 목도한 세대는 아니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까.

  나도 언젠가 술에 잔뜩 취해서 저것과 비슷한 선언과 망발들을 내뱉었을 테니 변명 겸 조금 덧붙여보자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그러니까. 내가 뭐 그렇게 배운 사람은 아니라서 경제학적이나 사회학적으로 시대를 구분할 재주는 없지만. 아무튼 우리는 젊든 어리든 늙었든 대충 뭉뚱그려서 언젠가부터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대충 이 정도로만 알고 있다. 나를 너무 나무라지 않길 바란다) 이 말은 그러니까 사실 오늘날 이 시점의 우리는 모두 적어도 경제학적으로는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뜻이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술에 취한 혹자들이 부르짖는 바뀌었다는 그 시대는 적어도 경제학적 시대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무슨 시대가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는 걸까? 우선 시대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대란 어느 특정한 기준에 의하여 구분한 일정 기간을 의미한다. 특정한 기준. 그러니까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 아래, 그 속에 수많은 시대 속에 잠겨 살아가고 있다. 그 시대를 정의하는, 존재 하게하는 특정한 기준은 현대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공행진을 하니 욜로 세대가 나타났다. 준비하기 어려운 미래를 생각하기보단 현실을 즐기자는 주의였다. 또 코로나의 창궐로 수많은 변화와 시대의 표상들이 나타났다. 비대면 생활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간소화된 결혼식이 나타났다. 우러전쟁이 일어났고 마스크는 일상이 되었고 온라인 교육이 활성화되었고 그 사이 기존 사회적 통념들을 변화시키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수없이 많은 변화가 시대를 바꾸고 바뀐 시대가 또 다른 시대를 불러온다.

  정치학자 홍기빈의 말을 빌려 일부를 설명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시대는 수없이 다양한 물건을 다량 생산하는데, 변화무쌍한 수요에 맞춰 그것을 생산하는 생산 조직 자체가 역동적이어야 한다. 이건 고용과 해고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탄력성’ ‘유연성’ 같은 말이 나온다. 기간 인원은 정규직을 쓰고 나머지는 유연하게 쓰는 것이다.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물질과 물건들 틈에 파묻힌 동시에 너무나 많은 변화와 고용의 불안정 속에서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고용되지 못하거나 고용에서 도태된 이들이 생겨난다. 실업과 가난은 불안을 가중시킨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모든 순간에도 새로운 물건과 새로운 서비스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경제적인 상황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중추적인 기준들을 만들어내고 그 기준 아래 생산된 모든 것들이 또 새롭고 세밀한 기준들을 만들어낸다. 그 기준들은 또 다른 기준들과 관념을 부른다. 시대는 끊임없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가 진행되고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불안함을 피하기 위해 온몸의 힘을 모아 모아 ‘안정’이란 개념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렇게 사람들의 꿈은 안정이 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정성을 얻든지 먹이 사슬 위에 올라가는 것(권한이 있는 위치에 오르는 것). 이게 사람들의 꿈이 되어간다.

  우리는 (아직 존재해본 적 없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쓴다. 우리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바로 그 사람이 너무 빨리 되는 바람에 치열하지도, 창조적이지도, 타인에게 영감을 주지도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정혜영 작가의 말이다. 이쯤해서 최초의 문장으로 다시 돌아 가보도록 하자.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튼 생은 계속 된다. 생의 고행은 계속 된다. 시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하든 내가 가난뱅이든 부자든 누군가를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간에 인생은 계속 된다. 탕웨이가 여우주연상을 받든 빌 머레이가 31년만에 고스트 버스터즈 3로 돌아오든 간에 말이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내가 나라는 존재 안에서 ‘나’라는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는 점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에 입각해 시시각각 수많은 선택을 해야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선택버튼을 누르다보면 아뿔싸 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

  현 시대 속에서 우리 안의 주종은 종종 뒤바뀐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의 가치보다 명예와 사회적 위치와 남들의 시선 때문에 직업을 고르거나 조건을 따져 잘못된 사랑을 선택하기도 한다. 홍기빈에 따르면 ‘불안’때문이고 정혜영의 말을 빌리면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서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아래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사람’의 모습에 ‘어떤 특정 나이’에 도달하기 위해,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정열과 내가 원했던 어떤 모습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불안하고 때때로 가난하며 그 안에서 존재적 불안과 가난을 종종 착각한 채 그것에 기대어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깎아내리거나 세속적인 것을 경멸한다는 뜻은 아니다.(정말 모든 것을 버리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경계하기는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종종 가치의 경중과 사물과 마음의 주종을 혼동하고,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조금만 객관적으로 보면 알 수 있는 욕망에 이끌린 실수들을 저지른다. 단테의 『신곡』「천국」편에 보면 천국에 다다르는(말그대로 천국에 입국 중인) 고행자 피에트로 다미아노 조차 천국에 들어가는 와중에 오래전 고행 중 사순절에 맛본 올리브를 잊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삶의 맛이란 그렇게 지독한 것이다. 고행자조차 그럴 진데… 

  달라지는 건 없다. 그리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우리 생에 언제까지나 달라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고 난 뒤에야 더욱 달콤하고 멋지고 가치 있게 느껴지는 사물들과 고유와 어떤 마음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 달라지지 않는 게 뭔데? 그건... 나도 모른다.(정말이다.) 그래서 이쯤 시를 한 편 소개하고 얼른 도망치려고 한다. (언젠가 그 개념에 대해 피에트로 다미아노 처럼 어딘가에 입국하는 순간에라도 깨닫게 되면 여러분에게 전달하도록 노력해보겠다) 

  아무튼 이 시는 이를테면 생에 있어 결코 달라지지 않는 것 이외에, 삶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소하고, 한편으론 사소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찬미다.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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