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매정한 취향수집

제 6회, 편지

2022.02.04 | 조회 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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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는 일은 서글픕니다. 그런 편지를 누군가 나 대신 보낸다면 어떨까요. <윤희에게>는 부치지 못한 편지로 시작해 부쳤을지도 모르는 편지로 맺습니다. 그 매듭이 어떤 모양인지는 알 수 없어도 마음 한구석의 기억을 묶어둔 것임은 틀림없어요.

 

 

누군가는 둘의 이야기를 우정이라 읽는다지만,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사랑입니다. 편지로 쓰였으니까요. 부유하는 단어들을 정제해 문장으로 엮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내어 마음을 다듬고 손으로 적는 일은 크기와 관계없이, 사랑만이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윤희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자마자 그에 적힌 마음의 흔적을 조금은 알아채게 됩니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이십 년이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봐. 살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니? 뭐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오늘은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네 생각이 났어. 남들에겐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이 전부 다 너를 향해 있더라. 웃기지 않니? 언제 어떻게 돼버려도 상관없다고 저주했던 아빠 덕분에, 너한테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다니. 오랫동안 네 꿈을 꾸지 않았는데, 이상하지. 요즘 자꾸 네 꿈을 꿔. 너도 가끔 내 꿈을 꾸니? 네 꿈속의 나는 어떤 모습이니? 내 꿈속의 너처럼 미소를 짓고 있니? 바보 같은 걸까? 나는 아직도 미숙한 사람인 걸까?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나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내가 부끄럽지 않아.

 

 

쥰과 윤희
쥰과 윤희

 

겨울이면 눈과 달, 밤과 고요뿐인 곳이 있습니다. 눈에 싸이는 것을 넘어 눈에 묻혀버리는 오타루예요. <윤희에게>는 그 오타루의 눈을 헤치고 기억 안에 쌓아둔 마음을 녹여 꺼냅니다. 하얗게 경계를 무너뜨리는 눈 덕에 마음의 경계도 무너진 걸까요.

 

부치지 못할 편지가 우연히 붙여졌고, 받아야 할 이가 아닌 사람이 받는 바람에 윤희와 쥰이 재회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주변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돕는다면 묶지 못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니. 그래서 영화 속 이야기겠지요.

 

그렇게 사랑을 돕는 이는 쥰의 고모 마사코와 윤희의 딸인 새봄인데요. 쉽게 입맞춤도 하지 못하는 알콩달콩 풋사과 같은 새봄이의 연애 이야기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을지도 모르니, 구독자님을 위해 쉿 할게요.

 

새봄과 윤희
새봄과 윤희

 

마사코와 쥰
마사코와 쥰

 

 

유독 좋았던 장면 중 하나는 마사코 고모와 쥰이 포옹하는 장면이에요. 어색하게 말없이 천천히 서로를 안는 그 장면에 왜인지 화면 너머로도 위로를 받았어요. 어색하더라도 필요할 때에, 생각지도 못한 포옹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로맨스의 주인공보다는 따스히 안을 수 있는 사람이 왜인지 더 낭만적인 것 같달까요. 지금은 그저 이불에 혼자 안길 뿐이지만요.

 

따듯한 핫초코 한 잔을 타 이불에 파묻혀 다시 이 영화를 보며 윤희와 쥰의 모습을, 보냈을지도 모를 편지의 마지막 추신을 되뇌입니다.

 

 

 

"나도 네 꿈을 꿔."

 

 

 

 

 

구독자님의 꿈에도 누군가의 마음이 가닿기를 바라며.

좋은 꿈 꾸세요.

 

 

 

 

추신. 이번 겨울 일본에서 <윤희에게>가 개봉했다고 해요. 도쿄의 한 영화관, 소감을 남기는 게시판에 누군가 이런 문구를 남겼대요.

'저희는 함께 살아갈게요!'

모두의 사랑이 녹지않고 계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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