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많은 인간으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마 말을 쉬이 옮기지 않으려 하는 나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들은 말을 옮기지 않으려다보니 자꾸만 나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게 된다. 뭐, 이렇게 말은 하지만 가까운 이들에겐 이것저것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미주알고주알 털어 놓기 일쑤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다른 이들의 말은 옮기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습성은 그런 나의 원칙에 따라온 일종의 부록 같은 것이다.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따금 전화통화를 하면 언제나 남의 얘기를 한다. 누가 그랬다더라, 나한테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맞느냐, 이러쿵저러쿵. 나는 별 말 없이 그 얘기를 듣는다.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별 말 없이 듣고 넘길 때가 많다. 전화를 끊고 나면 매번 나의 다짐은 더 확고해진다. 남의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사실 매번 이런 다짐이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무심코 누군가의 흉을 보기도 하고 또 이내 후회하곤 한다. 저지르고 후회하고 매번 다시 다짐하고.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사실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의견들 역시 그 다짐 너머로 유예된다. 이렇게 유예된 이야기들은 비밀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낡은 상자에 담긴다. 날마다 상자가 쌓여간다. 세상엔 어떤 뚜렷한 의도나 함의도 없이 비밀이 되어버리는 것들이 있다.
인간은 그런 비밀들로 구성이 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 내가 입고 있는 옷도, 내가 가진 약간의 지식도 재산도 미소도 아닌, 내가 하는, 하려던 말조차 아닌, 그 너머에 있는 내가 다만 하지 않은 말들, 내가 행하지 않은 선의와 악의들, 몰래 흘린 눈물들, 비밀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기억의 창고 어딘가에서 발에 채이고 먼지에 파묻혀가고 있는 것들로 나는 구성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다.
2022년 1월 27일 그러니까 바로 어제, 뉴욕 소더비 경매에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 ‘슬픔의 남자(Man of Sorrows)’가 출품되었다. <슬픔의 남자>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 유명 오페라 가수였던 Adelaide Kemble Sartoris(1815-1879)의 소유였던 때부터 현재까지 줄곧 개인의 소유였기에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현재에 이르러 경매 출품을 위해 기술적 분석을 하던 소더비 팀은 그림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했다. 작품 <슬픔의 남자> 안쪽에 숨겨져 있던 <자애로운 성모 마리아, Madonna of tenderness>의 이미지를 발견한 것이다. 적외선 촬영으로 발견된 흔적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기 그리스도의 머리를 뺨에 대고 부드럽게 안고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일명 ‘언더 드로잉(Underdrawing)’은 과거에도 발견된 적이 있는 현상이다. 당시 보티첼리의 그림이 그려졌던 르네상스 시대에 그림 패널(Panel)은 비싸고 귀중한 물건이었다. 당시 보티첼리의 작업실에서는 정기적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그리스도를 테마로 그림이 그려졌고, 최초 이것을 주제로 그려졌지만 중단된 그림 패널 위에 <슬픔의 남자>가 덧입혀 그려졌을 것으로 소더비 조사팀은 추측하고 있다.
비밀은 결코 날카롭지 않다. 은밀히 숨겨진 것들은 날카로운 형태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슬픔의 남자 뒤에서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마리아의 형상에 가깝다. 비밀은 보드랍고 포괄적이며 모든 것을 함의한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것. 우리는 그것들을 제외한 모든 사실과 거짓과 가정들과 추측, 연민, 숨, 배려, 거짓되고 진실 된 한 때의 참회, 수없이 많은 다짐 등에 비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것은 물론이고 타인의 비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매일 반복된다.
분명 보티첼리가 자애로운 마리아의 그림 위에 <슬픔의 남자> 그림을 그린 것에는 다른 어떠한 의도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그렇게 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떤 은밀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이 완성된 후 대략 오백년이 흐른 뒤에야 밝혀졌다. 작품을 그릴 당시 55세 이상이었다고 추측되는 보티첼리는 당시 마지막 십 년 남짓의 생애를 남겨두고 있었다. 물론 그때의 그는 그 사실을 몰랐을 테지만.
뉴욕 소더비의 수석 부사장이자 고전회화부문 디렉터인 Chris Apostle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티첼리가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이 그림에 우리 모두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그림에는 심오하고 깊은 감정적 부담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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