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매정한 취향수집

제 31회, 휴가

2022.07.29 | 조회 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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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이번 여름휴가 계획 있으신가요? 혹시 이미 다녀오셨나요? 저는 아직 다녀오지 않아서, 휴가에 대해 어떤 이야길 할까 고민했어요. 어렸을 땐 가족들과 막히는 도로에도 열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가곤 했죠. 제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까지도 여름이면 가족들과 종종 여행을 가곤 했는데, 지금은 딱히 그런 게 없네요. 사실 저희 가족들이 다 짐을 싸고 멀리 다녀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땐 부모님이 어디 데려가 주시면 마냥 좋아 따라다니곤 했는데. 머리가 크면서 저도 제 성향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휴가라고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거의 없고, 어떻게 해야 더운 여름 밖에 안 나가고 집에 눌러 붙어 있을까-가 고민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휴가' 영화가 있어요. 저는 폭염의 날씨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구독자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어요.

 

 

영화 <나 홀로 집에>
영화 <나 홀로 집에>

 

 

최고의 크리스마스 영화지요. 어렸을 땐 별로 안 좋아했어요. 보는 제가 다 아팠거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로 꼽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근데 볼수록 정드는 거 있죠. 이제서야 말이에요. 보기만 해도 아프다 느끼던 감상이 이제는 포근하다-로 바뀌었어요.

 

아시다시피 <나 홀로 집에> 시작은 크리스마스 휴가, 가족 여행입니다. 휴가란 왜인지 여럿이 모여 어딘가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혼자서는 뭘 하든 외로울 것만 같고요. 게다가 케빈은 어린아이이니, 얼마나 더 걱정되겠어요. 다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구하는 엄마의 걱정이 무색하게, 케빈은 아주 잘 혼자만의 '휴가'를 즐깁니다. 도둑도 무찌르면서요.

 

말하자면 '좀도둑 소탕'이 얼개인 영화를 왜 포근하다고까지 느끼는 걸까요. 저는 <나 홀로 집에>라는 번역을 참 좋아하는데요. '홀로'에 방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케빈 홀로 사건을 해결하는 듯해요. 하지만 케빈의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도움과 위로를 건네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1편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가게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게 된 무서운 이웃집 할아버지, 2편에서는 '비둘기 아줌마'가 대표적이지요. 하다못해 장난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호텔 직원들마저도 케빈을 돕는 것처럼 보여요. 어린아이를 지키는 어른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당연하고, 꼭 필요하고, 동시에 소중해요.

 

현실이라면 상상하기도 싫어요. 열 살 남짓 어린아이를 집에, 대도시에 홀로 두고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다니요. 온 가족이 아이의 빈자리를 미처 느끼지도 못하고요. 이런 점만 생각하면 세상에, 이렇게 공포스러운 비극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이 영화의 장르는, 감사하게도 코미디예요. 가족과 지구 반대편에 홀로 떨어져 있어도, 어떻게든 유쾌하게 고난을 헤쳐 나갑니다. 이렇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영화가 참 드물어요. 요즘엔 더 없죠. 코미디 장르인 것과 동시에, 우리에게 '믿는 구석'을 주기에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웃 누군가가 케빈을 보살핌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구석, 엄청난 대도시이니 누군가는 케빈을 구할 거라는 믿음. 그런 것들이 마음 놓고 웃게 하지요. 홀로 남았음에도 홀로가 아님을 되새길 수 있기에 <나 홀로 집에>라는 제목과 영화를 좋아하게 됩니다.

 

영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런 마음 놓음이 휴가라고 생각해요. 마음 놓고 일상에서 떠나는 거요. 그래서 휴가 때면 굳이 먼 곳으로 훌쩍 떠나보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긴 여름휴가도 일주일이 채 되지 못하는데, 우리는 그 시간만이라도 어떻게든 일상과 최대한 멀어지려 계획을 세우고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저에게 '일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예요. 매일 아침 힘들게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해서 저녁 먹고 온 기운을 소진한 채 눕기만 할 수 있는 것을 일상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그게 제 일상은 맞지만, 저에게 '일상'이란 말과 의미는 특별한 것이라 생계를 위한 기계적인 삶에 일상이라 이름 붙이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저에게 휴가는 일상을 지키는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온한 방 안에 누워 밀린 영화와 드라마를 챙겨 보는 것. 에너지를 소진할 필요 없이 채우기만 하는 것. 저에게 휴가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휴가와 여행이 동의어가 되기도 하지만, 이전에 말씀드린 적 있지요.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집 떠나는 거, 별로예요.

 

저는 폭닥한 이불에 싸여 휴가 같은 주말을 보낼 계획입니다. 전염병의 기세가 아주 무서워요. 2년 반 동안 잘 피해오다가 저도 끝내 당하고 말았답니다. 오늘 편지에도 어떤 말을 적은 건지 모르겠어요. 제가 <나 홀로 집에>를 좋아한다는 것과,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전한 것 같네요. 정말... 구독자님은 코로나 같은 거 걸리지 마세요. 꼭이요! 무탈하고 건강한 7월 마무리하시고, 8월도 잘 맞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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