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회고

그리고 2024년 다짐

2024.02.08 | 조회 2.2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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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운의 사고실험

계속 질문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0  저는 천성이 편벽하고 조급해서, 주어진 현재에 감사와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적고, 그걸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하는 경우는 더 적습니다. 2023년 회고글에도 스스로 아쉬웠던 점을 한바닥 쓰다가, 문득 1년 전의 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년 마지막 몇 달간 이어졌던 지독한 무기력증, 점점 희미해지던 일의 이유와 목적... 그래서 부족함을 느낄지언정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현재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토크쇼라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지지하고 도와준 팀원들, 아무 신용도 없는 PD/진행자를 믿고 출연해주신 게스트분들, 뒤에서 함께 애써주신 파트너/클라이언트분들, 하나도 안 보는 줄 알았는데 종종 연락해서 재밌다고 말해준 친구들, 세상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신 모든 시청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작년 한 해 동안 사는 게 정말 재밌고 힘이 났어요.

2  이 일을 하다 보면, 컴퓨터 화면에 기록된 숫자 너머에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일부러 잊으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습니다. 조회수 하나 좋아요 하나를 모두 인격을 가진 개인으로 인식하게 되면 그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게 될 것 같아서. 그러다 언젠가 그 기대가 실망으로 돌아오는 날엔 제가 흔들리고 말 것 같아서.

3  작년 11월에 송길영 박사님 에피소드를 발행한 뒤, 살면서 받아본 칭찬의 총량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던 와중에는 더 이를 악물었어요. 영상에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입꼬리가 조금이라도 솟을라치면 잠깐, 하고 마음속의 목소리가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4  취하지마. 네가 뭐라도 된 듯 착각하지마. 저 사람들이 널 기억할 거라 기대하지도 마. 어디까지나 일회성의 관심일 뿐이니까. 기대라는 건 네가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높은 숫자를 쌓았을 때나 부릴 수 있는 사치야.

5  그러면서도 나약한 마음은 몇가닥의 기대를 포기하지 못했었나 봅니다. 송박사님 에피소드를 잇는 홈런이 될 줄 알았던, 역대 사고실험 중 순수 재미는 최고라고 자신했던 미스치프 에피소드의 조회수가 다시 거꾸러졌을 때는 정말 막막한 기분이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조회수라는 건 얼마일까, 그만큼을 쌓기 위해선 이 일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까. 어쩌면 매번 0에서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6  그때 제가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준 건 (1편보다 조회수가 더 줄어든) 2편에 달린 누군가의 댓글이었어요. 마치 제 마음속을 고스란히 읽어보고 쓴 것 같은, 정확한 칭찬 하나. 문득 신형철 평론가가 언젠가 자신의 소망은 정확한 칭찬을 하는 비평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났습니다.

7  “정확한 칭찬은 자신이 칭찬한 작품과 한 몸이 되어 함께 세월의 풍파를 뚫고 나아간다. 그런 칭찬은 작품의 육체에 가장 깊숙이 새겨지는 문신이 된다 (…) 비평가인 나는 세상의 모든 훌륭한 작가와 시인들에게 바로 그 불가능한 선물을 주고 싶은 것이다. 정확한 칭찬이라는 정확한 사랑을.”

8  6년 전의 어느 글에서, 저는 가공의 삶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창작자는 본인의 삶을 온전히 바쳐야 한다고, 그것이 등가교환의 법칙이라고 썼습니다. 어느새 콘텐츠를 업으로 삼은지 3년이 넘어, 강연에서 제법 그럴듯하게 PD입네 떠들고 다니는 지금에서도 제가 아는 창작의 공리는 저것 하나뿐입니다.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싶다면 내가 먼저 타인에게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면 내가 먼저 타인의 손을 잡고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9  1 1 발리 공항으로 향하는 안에서, 2024년에는 칭찬을 칭찬으로 정확히 들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저도 누군가에게 정확한 칭찬을 선물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정확하게 칭찬하기 위해서 저는 먼저 정확하게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다시 답을 정확하게 듣는 사람이 되면, 마침내 정확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 있을까 해서, 저를 일으켜준 댓글들을 비로소 읽고 또다시 읽어내렸습니다. 화면 활자들 너머 헤아릴 없이 많은 여러분의 얼굴들을 상상하면서.

@cloud.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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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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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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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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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0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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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또

    0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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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용

    1
    3 months 전

    성운님 팬입니다. 한국 최고의 인터뷰 진행자가 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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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nfldlq

    0
    3 months 전

    양질의 콘텐츠 제공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ㄴ 답글
  • Goody

    5
    3 months 전

    EO엔 두고두고 보고싶은 영상들이 많아요. 마치 고전 명작같은 느낌인데요, 인터뷰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감탄하곤 했습니다. <최성운의 사고실험> 시리즈물을 보면서 아 이분의 질문과 시선이 담긴거였구나, 하고 그 질문에 대해선 명쾌해졌어요. 저는 모두가 한번쯤 창업을 하는 시대가 온다, 라는 EO의 메시지를 응원합니다. 저 또한 왜?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제게 마지막으로 남는 의미를 가지고 진심으로 하루를 보낼 때 너무나 재미난 세상을 발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EO의 콘텐츠들이 저의 진심을 어떻게 표현해야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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