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오늘 레터의 제목은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의 전설적인 블로그 글에서 제목을 빌려왔습니다. 원제는 The days are long but the decades are short인데요. 그가 만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36가지의 인생 조언을 쓴 글입니다. (그때 이미 그는 Y Combinator의 회장을 맡으며 실리콘밸리의 구루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 개인적으로 샘 알트만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인생 조언'을 개조식으로 나열한 글을 좋아하는 편은 더더욱 아닙니다. 나열은 메시지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떨어뜨려서, 가급적 하나의 글에서는 하나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믿는데요. 그러나 위의 글을 다시 꺼내보면서, 뷔페식 글의 효용은 매번 읽을 때마다 와닿는 부분이 달라지는 데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샘이 자신의 모든 조언에 동의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나라도 건진다면 저에게 좋은 일이니까요.
2 36가지 중에서 지금의 제게 와닿는 조언들을 골라보면 이렇습니다 :
- 12)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 당신의 인지 부하를 차지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면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일입니다. 삶에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치우세요.
- 24) 새로운 일을 자주 해보세요. 비단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 행복감을 증진시키고, 삶의 재미를 더할 뿐 아니라 - 당신의 사고방식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걸 방지해줄 겁니다.
- 26) 사람들과의 관계를 쉽게 망치지 마세요.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지 마세요.
- 28) 지위를 좇지 마세요. 알맹이가 없는 지위는 오래갈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 29) 무엇이든 적당히 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극단적으로 하면 문제가 됩니다.
- 36) 하루는 길고 십 년은 짧습니다.
3 제가 고른 6가지 조언은 다시 3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2번과 24번은 저 역시 스스로 깨달았기에 공감이 가는 말들입니다. 특히 [사고실험]을 만들어온 지난 1년의 경험에서 크게 배웠던 것들이고요. 26번, 28번, 29번의 경우 아직까지는 크게 문제된 적 없지만, 언제든 제게도 닥칠 수 있기에 잊지 않으려고 다짐하는 말들입니다.
4 마지막으로 36번이 남았습니다. 하루는 길고 십 년은 짧습니다. 솔직히 샘 알트만이 정확히 어떤 의도로 이 문장을 쓴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십 년은 짧으니까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세요“라는 지침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하루하루는 버틸 수 없이 길더라도 십 년은 금방 갈 거예요“라는 위로로 읽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정말 가치중립적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요. 시간이 지나 다른 조언들은 잊혀져도 이 글의 제목만큼은 불쑥 떠올랐던 걸 보면, 강렬한 힘을 가진 문장임은 틀림없습니다.
5 그리고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 오늘 레터의 주인공 콜린 마샬님의 지난 10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2014년 한국으로 이주해 와서, 요약을 지양하고 경험을 지향했던, 그리하여 <한국 요약 금지>라는 책을 탄생시킨 10년의 시간.
6 콜린님과의 에피소드는 모처럼 1, 2부가 둘 다 2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는데요. 언제나 그렇듯 영상이 예상보다 더 잘 될 때면 이유를 찾고 싶어집니다. (잘 안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인이 본 한국’과 ‘언어 학습’이라는 주제가 생각보다 힘이 셌나, 콜린님의 출중한 어휘력과 문장력 때문인가, 아니면 은은하게 깔린 ‘국뽕 코드’가 사람들을 자극해 댓글 토론이 활발해진 탓인가, 하고 말이죠.
7 하지만 위에 열거한 이유들은 모두 부차적인 요소라는 사실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사고실험]의 본질은 한 인물에 대한 심층 탐구이고, 영상이 흥행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인터뷰이가 매력적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10년 동안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한 사람은 귀하기 때문입니다. 촬영하는 시간 자체를 즐기고 계시다는 게 영상 너머로도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사고실험] 촬영은 기본적으로 3시간 가량 진행하지만, 콜린님과의 대화는 4시간 가까이 이어졌는데요. 끝까지 꼿꼿한 자세와 경쾌한 태도를 유지하시는 콜린님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호기심은 천성이 아니라 체력과 노력의 함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 지금은 2024년 5월 24일 23시 57분이고, 3분 뒤면 제 만 서른 살 생일도 끝이 납니다. 이제 정말로 30대입니다. 누구처럼 36가지는 못 쓰더라도 한 가지 원칙이나마 써보고 싶었는데, 그럴듯한 하나를 못 떠올려서 시간을 다 날렸습니다. 그래서 조언 대신 스스로에 대한 당부로 두서없는 글을 마칠까 합니다. 언제나, 결코, 자신과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리지 말 것.
(추신. 생일자로서 뻔뻔한 부탁을 하나만 드리고 싶습니다. 2주 전 발행한 서윤정 프레시 매니저님과의 [사고실험] 영상을 한번 봐주시면 좋겠다는 것인데요. 역대 [사고실험] 중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에피소드이자, 제 안의 가장 좋은 부분들을 아껴모아서 만든 영상입니다. 아쉽게도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모든 직업인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즈음 레터 발송이 자꾸 밀리고 있는데, 서윤정님 에피소드 레터는 다음주에 꼭 발송하려고 하니 그 전에 영상을 봐두시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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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실험화이팅
뉴스레터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36번은 정말 두가지 다른 의미로 받아드릴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드렸습니다. 멀리서보면 10년은 금방 지나가버리니까, 하루를 짧다고 핑계대면서 쓸데없는 일을 하지말고, 최대한 의미있고 중요한 일들을 하면서 살아야한다고 말하는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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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개미
하루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콜린 마샬님의 인터뷰를 너무 즐겁게 봐서 뉴스레터 가입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외국어 공부도 하고 여행도 좋아해서 너무나 흥미로운 편이었는데요 여행을 가면 그 곳의 사람과 교류하며 문화를 알아다는 것을 좋아합니다. 비슷한 맥락의 프로그램들도 좋아하는데요, 한국에 살고있는 외국인이 모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나 한국에서 살고있는 외국인이 본인의 모국을 한국인과 함께 여행하며 안내하는 '위대한 가이드'도 무척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위대한 가이드가 '한국/외국' 컨텐츠의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인터뷰는 레벨 자체가 달랐던 거 같아요. 제가 재밌어 하는 방식을 여행이 하닌 삶으로 사는 분이라 그런 내공이 있었던걸까 생각했습니다. 외국어에 대한 조언도 의사소통하는 도구로써의 '말'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느끼게 해줘서 좋았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느리지만 계속 나아가는 에너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끈 것 같고요!! 그리고 저는 예전에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걸 느꼈는데, 요즘엔 호기심도 체력에서 나온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인체라는 정밀기계를 잘 관리하며 써야겠단 생각을 종종해요. 서윤정님 영상도 챙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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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씽
레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콜린 마샬님의 인터뷰를 보고 온 다음이라 현장이 더 생생하게 그려졌어요. 이번 레터에는 좋은 메시지들이 많았음에도 유독 '호기심은 천성이 아니라 체력과 노력의 함수인지도 모르겠다'는 성운님의 문장이 와 닿았습니다.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이 들어가는 일인지를 느꼈기 때문이겠죠. 다음에 이 글을 다시 읽는다면, 그 때의 제 상황에 맞춰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달라지겠죠? 좋은 인터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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