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의 묵상] <잠 13>

기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

2023.12.10 | 조회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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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의 모험기

일상을 모험한 기록을 나눕니다 :)

“Hope deferred makes the heart sick, for a longing fulfilled is a tree of life.”

잠 13:12

상처받은 사람들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 기대를 저버린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이들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기대를 무척이나 했던 그들은 기대를 안하는 데 성공한다. 상처를 받지 않게 되서 안심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기대를 저버리는 것의 최선은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일 뿐 그 이상 가지 못하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면 마음은 늘 그 너머를 바라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다고 애써 외면할 뿐이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기대를 잃은 적이 있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오늘의 말씀은 기대했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생명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마음이 시들어간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기대는 한 생명으로서 필요조건 같은 것이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시들어가는 현상이 생긴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즉, 스스로 생명에서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기대를 하면 충족되지 않아 상처가 되고, 기대를 안하면 결국엔 이것도 충족되지 않아 괴롭고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모르는 세월이 길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방황했다. 그 방황 속에서 기대를 반드시 충족시키시는 주님을 만났다. 지금껏 좌절하고 실망하고 상처받은 이유도 진정 기대해야할 대상이 아닌 다른 연약한 자들을 기대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좌절과 실망은 필연적이었다. 

여전히 주님을 기대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여러차례 깨어져 버린 기대는 관계에서 상대방을 신뢰하고 기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불안정한 신뢰는 관계를 쉽게 해치곤 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를 기대하신다. 나의 깨어진 기대가 아버지와 관계를 맺는 데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나는 비로소 평안과 감격을 느낀다. 그 때 한 걸음 나아간다.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된다. 조금 더 기대하게 된다. 생명 나무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게 된다. 

미래도 아닌 오늘을 사는 중에 주님을 믿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마치 예수님 옆을 지키던 베드로가 닭이 울기 세번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부인했듯이 말이다. 나는 나의 깨어진 기대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대하실 주님을 기대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다가와 조용히 생선을 구워주신 것처럼,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냐고 말씀하신 것처럼. 깨어진 기대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는 내게 인자하고 친절하게 다가오셔서 다시 기대할 기회를 주실 줄로 기대한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말씀을 묵상하며 찬양 한 곡이 스쳐지나갔다. 잔치공동체라는 찬양팀의 <주를 기대해> 라는 곡이다. 읽는 분들이 이 찬양을 듣고 가사를 머금으며 주님을 더욱 기대하는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잔치공동체 - 주를 기대해

주를 기대해 어둔 곳 지날 때  온전한 빛이 우릴 비추시네 주를 기대해 걸음 주께 있네 선하신 힘이 우릴 이끄시네

잔치공동체 - 주를 기대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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