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의 일상] Light

조금은 낯선 우리들의 재능

2023.08.29 | 조회 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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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의 모험기

일상을 모험한 기록을 나눕니다 :)

"Light!"

프라하에 계신 협력하는 교수님의 아들, 톰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말한 단어라고 한다. 엄마도 아니고, 아빠도 아니고, 빛을 외쳤다는 게 낯설다 못해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태어나서 가장 먼저 외친 단어가 빛이었을까? 물론, 아이를 가져보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의 어린 아이를 만날 일도 많이 없다. 그래도 태어나서 가장 먼저 외친 단어가 자신과 애착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도 아빠도 아닌 빛이라는 사실은 내 상식을 깨버렸다. 

 

그런데 아이가 맨 처음 하는 말에 대한 통념을 벗어나서이지, 톰만 놓고 본다면 그 아이니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톰을 본 것은 그의 아버지이자 같은 이름을 가진 톰 교수님과 줌 미팅을 할 때였다. 톰 교수님은 내게 3D 프린터를 보여주고는, 이것이 자기 아들이 평소에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 했다. 나는 교수님 나이에 3D 프린터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아이가 없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나이를 물었다. 그 때 (작은) 톰의 나이는 8살이었다. 공학을 전공했지만 여전히 기계가 생경한 나로서는 8살 작은 아이가 3D 프린터를 가지고 여러가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 아버지, 톰 교수님도 워낙 기계와 컴퓨터를 다루는 데 능한 사람인지라 백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8살에 3D 프린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톰 교수님도 언젠간 꼭 소개하고 싶을 만큼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이자,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내가 꾸준히 뉴스레터나 다른 매체에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소개하고픈 사람이다. 

 

다시 작은 톰으로 돌아오자. 다음에 작은 톰을 만나게 된 건, 방문 연구차 프라하 톰 교수님 연구실에 갔을 때다. 실제 로봇을 가지고 실험을 하기 위해 한 달간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한 주에 한 번씩 톰 교수님이 작은 톰을 데리고 연구실로 데려왔다. 처음 톰을 보았을 때 다른 아이들보다 수줍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 (나) 한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내가 인사를 했을 때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옆에 계신 톰 교수님이 나에게 인사하라고 말했고, 그때서야 입력된 명령어를 수행하듯 인사를 했다. 여기서 놀란 건, 톰은 꽤나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인사했는데, 방금 궁금해서 톰 교수님께 물어보니 자기 혼자 유튜브 보면서 배웠다고 한다. 이런 괴물. 

 

인사 후에 로봇, 컴퓨터와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하자, 갑자기 톰이 신났다. 우리가 말하는 주제에 대한 정보를 ChatGPT를 방불케하듯 늘어놓았는데, 거기서 톰의 비범함을 느꼈다. 왜냐면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박사 연구를 하는 나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는 10살 아이를 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재능의 차이를 직감했다.

 

그 이후로도 놀람의 연속이었다. 사물, 기계 또는 어떤 현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톰은 그 관심만큼이나 놀라운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톰의 사고방식은 과학과 논리 그 자체였다. 흡사 걸어나디는 컴퓨터에 가까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질감과는 너무 다른 것이어서 파악하는 데도,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보통의 공학전공을 가진 사람들과는 평소에도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 나였는데,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생경함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톰을 관찰하고 함께 대화하며 느낀 놀라움은 톰이 태어나 처음 말한 단어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클라이막스에 다다랐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면서 너무나 이상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지. 태어났을 때 부터 자기 앞에 일어나는 현상에 그렇게 관심을 가질 정도면, 그것이야말로 선천적인 재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강렬히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공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나의 부족함과 알맞지 않음을 느낀 것은 오래되었었다. 왜냐면 나는 공학을 하는 것이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새로운" 기술에 대해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었지, 실제로 깊이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재능있는 자들을 보면서도 내가 그것에 큰 재능이 없음을, 애초에 그들만큼 관심이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명해졌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했던 것들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도 톰과 비슷하게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글자를 읽는 법을 배웠을 때, 그 때 부터 온 동네 간판을 읽고 다녔다고 한다. 모든 글자를 읽으려 했고 그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씨리얼 뒤에있는 성분 분석표를 읽고, 샴푸 뒤에 있는 주의사항을 본다. 그것을 아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다. 한자 옥편을 보며 새로운 한자를 알아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조그만 애가 늘 한자 옥편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화장실에 갈때도.

 

그리고 엄마의 말에 따르면 엄마가 어른들에 일에 치여 나지막히 하소연을 하고 있는데, 4살 짜리 아이가 와서 그 말을 알아듣고 공감과 위로를 했다고 한다. 4살 짜리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에 엄마는 꽤나 놀랐다고 하고, 그 사실에 익숙해진 엄마는 나를 뒤이어 태어난 동생에게 실망했다고 한다. 

 

톰의 재능에 압도 당하듯 놀랐지만, 돌아보면 나 또한 반짝이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었다고 느낀다. 지금도 그 재능을 활용하며 새로운 것들을 보고 이해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잘 지낸다. 나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의 일부지만, 내가 가진 재능이 꽃피우는 모습일 것이다. 톰이 가지고 있는 언어적 영특함과 사물과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에 비해 스스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뿐이다.

 

글에서 소개한 톰, 그리고 짧은 묘사로 설명한 나의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 내 주변의 소중한 영혼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 또한 각자만의 재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내가 공학적 재능이 우수하게 여김을 받기 쉬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그 기준에 재어 열등하게 여겼던 것처럼, 누군가도 자신의 재능 보다도 통념적으로 요구하는 각 환경에 맞는 재능에 더 주목하고 뒤떨어지는 자신을 열등하게 여기고 있을 지 모른다.

 

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고유한 아름다운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꽃피우는데 집중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통념에 구속되게 하지 말고, 재능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키워 즐거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본인도 행복하고 주변인들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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