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둘 다 탄소로 구성되어있다는 이유로 자주 비교된다.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있어도 그 결합과 압력에 따라 형태가 바뀐다는 사실은, 구성 요소보다도 질서 (결합) 또는 노력 (압력) 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비유하는 데 단골 주제로 쓰인다.
이번주 설교 말씀에 이 비유가 또 등장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려 다이아몬드를 구성하는 데 쓰이는 탄소의 결합 방식을 예를 드셨다. 매번 쓰이는 비유지만, 매번 신기하다 느낀다. 탄소 원자 사이에 연결에 따라 최종 결과물이 이렇게 달라진다니. 보이는 것만 아니라 성질도 너무나 달라진다는 게 늘 신기하다.
그렇게 비유가 사용된 의도에 따라 놀라움을 누리고 있는 중에, 머릿속에 번뜩 스쳐가는 의문이 있었다. 과연 다이아몬드가 흑연보다 가치있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모두가 다이아몬드가 흑연보다 가치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데 의문이 들었다.
다이아몬드는 귀하다. 흑연은 흔하디 흔하다. 다이아몬드는 단단하다. 흑연은 무르다. 다이아몬드는 예쁘다. 흑연은 더럽힌다. 다이아몬드는 비싸다. 흑연은 싸다.
보편적인 경제 원칙에 따르면, 희귀할 수록 값이 올라간다. 다이아몬드는 만들어지기도, 캐내기도 무지 어려운 탓에 귀하다. 그런데 희소함이 진짜 가치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가?
흑연만큼 인류 지식사에 기여한 물질이 있을까? 흑연은 오히려 흔하기에 더 널리 쓰일 수 있었기에, 흑연이 인류 사회에 공헌한 가치는 다이아몬드가 주는 희소성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넘어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흑연은 다이아몬드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늘 친근한 거리에서 우리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주는 존재다. 나는 흑연에 빚졌다. 흑연 덕에 실체화된 아이디어들이 많다. 흑연 덕에 내 마음을 편지에 살아있는 형태로 남길 수 있었다. 흑연 덕에 문제집들을 풀어 공부할 수 있었고, 흑연 덕에 지금도 사각사각 일기를 쓴다. 다이아몬드는 아무것도 안했다. 다이아몬드는 늘 저 멀리 혼자 빛난다.
다이아몬드보다 흑연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지도, 주목받지도, 가치있다고 여겨지지도 않을 지라도, 늘 친근하게 존재하며 희소성의 가치가 아닌 보편적인 유용성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다. 흑연이 자신을 소모해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되고 편지가 되어 남아있는 것처럼, 다이아몬드처럼 영원히 빛나는 모습으로 남아있기보다 진정 가치있는 것으로 치환되고 싶다. 삶이 끝날 때, 다 쓴 흑연심처럼 진정 가치있는 것을 위해 완전히 소멸된 모습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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