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홍콩까지 간 김에 아트 투어

준비물: 체력

2024.05.21 | 조회 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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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구독자, 2주간 전시를 보러 갤러리나 미술관, 박물관에 다녀오셨나요? 저는 리만머핀 갤러리에서 개최한 '알렉스 프레가' 전시를 보러 다녀왔습니다. 갤러리스트 분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전시를 보니까 못 보던 작은 요소들까지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전시를 잘 관람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하지만 미술사나 작가, 작품에 대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고 생각해요. 아트투어의 준비물은 체력입니다.

 

아트 투어 = 워킹 투어

아트 투어 혹은 갤러리 투어라고 하면 여유가 먼저 떠오르죠. 쾌적한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미술품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아트 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걸어야 합니다. 서울에서도 갤러리들이 사간동, 삼청동에 모여 있듯이 해외에서도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데요. 사이사이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아니라 걸어서 가게 됩니다. 길거리를 걷다가 갤러리에 들어가서 전시를 보고 나오는 걸 반복하다 보면 힘이 쭉, 빠집니다. 게다가 외국어로 쓰인 전시 텍스트와 다양한 현대 예술 작품을 보고 나오면 뇌도 그 누구보다 바쁘게 일을 하죠. 실시간으로 체력이 뚝뚝 떨어집니다.

아트바젤 홍콩을 보러 갔을 때, 저는 전시 일정을 확인해두기는 했지만 일부러 갤러리 투어 일정을 짜지는 않았어요. 우선 아트바젤 홍콩에서 보는 작품의 양이 상당할 테니까, 약 2일 정도의 일정에 여러 갤러리를 돌면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여행 동선에 맞는 곳들만 들리기로 했습니다. 오전에는 잘 지키고 있었어요. 구룡반도로 넘어가서 투모로우 메이비만 들리고, 필립스 전시는 포기했습니다. 리츠 칼튼과 협업한 디저트와 커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침사추이의 페로탕과 페닌슐라 호텔의 설치 작품을 보고 홍콩섬으로 돌아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센트럴까지 돌아보고 오니, 하루만에 갤러리는 8곳, 전시는 10개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홍콩 아트투어

하루 동안 다녀온 갤러리는 총 8곳이었습니다. 투모로우 메이비, 페로탕, 하우저앤워스, 데이비드 즈위너, 사치 예이츠, 페이스, 탕 컨템포러리, 화이트스톤. 그리고 전시는 두 곳을 더 봤어요. 페닌슐라 호텔 로비, K11 MUSEA 파크에 설치된 조각 작품들이었습니다.

조던에서 침사추이, 그리고 센트럴까지 
조던에서 침사추이, 그리고 센트럴까지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는 기간 동안 전 세계의 컬렉터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와 아트피플 등 다양한 미술계 사람들이 홍콩에 모여들죠. 그래서 아트바젤 홍콩 보다 그 주변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풍성해지는 게 이목을 더 끌기도 해요. 국제 마라톤이 열리면 전 세계 러너들이 모여서 엑스포와 쉐이크 아웃 런을 하고, 스타트업 박람회가 열리면 전 세계에서 스타트업 창업자가 모여 드는 것처럼요. 프리즈 서울이 열리면, 서울 곳곳에서 갤러리의 전시와 파티가 열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특히 '사치 예이츠(Saatchi Yates)'는 런던의 갤러리인데 이번 아트바젤 홍콩 기간을 맞이해 한시적으로 이수진 작가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항상 아트투어를 가기 전에는 여러 착장을 챙겨요. 혹시 모르니 재킷도 챙기고, 정장도 한 벌 챙기죠. 그런데, 막상 가면 가장 편한 신발과 편한 옷을 챙겨 입게 됩니다. 특히 이번 홍콩은 너무 더워서 반바지를 챙기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어요. 와이드 팬츠가 없었다면, 아마도 하나 새로 샀을 거에요. 오프닝 파티나 특별히 드레스 코드가 있는 행사가 아니라면 역시 편안한 옷이 최고 입니다.

 

홍콩에서 무엇을 봤나요?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 가장 핫한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 제프 쿤스의 거대 회고전을 치렀던 아트 인텔리전스 글로벌은 모두 웡축항(Wong Chuk Hang)에 있었는데요. 전시 소개만 봤을 때, 개인적으로 끌리는 전시는 없었기 때문에 과감히 포기했어요. 온전히 여행할 수 있는 날은 토요일 하루 뿐이라 '금발마작'에 가서 마작패를 사고, 구룡반도 쪽을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동선상 가기 좋았던 '투모로우 메이비'를 다녀오고, 다시 센트럴로 가려는데 침사추이에 '페로탕' 이 있어서 들렸어요. 페로탕이 위치한 K11 뮤제아(MUSEA)에 가는 길에 스타의 거리에 있는 야외 전시 작품을 봤고요. 전시를 보고 나오니까 페닌슐라 홍콩이 있어서 로비에 전시를 보러 잠시 들렸습니다. 이렇게 실처럼 연결되다 보니까, 어느새 전시를 4개나 봤더라고요. 그리고 센트럴로 넘어왔는데, 또 우연히 '하우저앤워스'가 보였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깔끔한 건축물이라서 눈이 갔었거든요.

 

투모로우 메이비 TOMORROW MAYBE

사실 오류 때문에 이 화면에서 더 이상 넘어가고 있지 않았던 류성실의 작품
사실 오류 때문에 이 화면에서 더 이상 넘어가고 있지 않았던 류성실의 작품
Joy LI, <Silver Monster>(2022). 마치 류성실 작품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앞에 놓여 있었다
Joy LI, <Silver Monster>(2022). 마치 류성실 작품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앞에 놓여 있었다

대안공간에 가까웠던 투모로우 메이비는 젊은 작가 그룹전을 하고 있었어요. 이튼 호텔 홍콩 2층에 있는데, 입구를 찾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었어요. 상주하는 갤러리스트가 없었고,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전시했습니다. 

 

페로탕 PERROTIN HONG KONG

이즈미 카토(Izumi Kato)는 몸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작가였습니다
이즈미 카토(Izumi Kato)는 몸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작가였습니다

페로탕 홍콩은 공간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빅토리아 하버를 바라볼 수 있는 통창이 있었고, 그 공간에서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스타의 거리 야외 조각

빅토리아 하버를 배경으로 에르빈 부름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아트바젤 홍콩 기간의 사치죠
빅토리아 하버를 배경으로 에르빈 부름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아트바젤 홍콩 기간의 사치죠
폴란드 작가인 '알리시아 크웨이드(Alicja Kwade)의 작업은 마치 이곳을 위한 작업 같았습니다
폴란드 작가인 '알리시아 크웨이드(Alicja Kwade)의 작업은 마치 이곳을 위한 작업 같았습니다

 

하우저앤워스 Hauser & Wirth

글렌 라이곤(Glenn Ligon) 개인전, 텍스트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글렌 라이곤(Glenn Ligon) 개인전, 텍스트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글자를 단지 '캔버스' 위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텍스트가 회화처럼 보이는 건 늘 새로운 일입니다. 읽을 수 없도록 배치해도, 읽을 수 있도록 구도를 잡더라도 캔버스 위에 올라간 텍스트가 주는 기묘한 파열음이 여전히 존재하죠. 같은 그림도 노트에 그리면 '낙서'라고 치부되는 것처럼요. 작품 앞에 서서 질문하게 됩니다. "그럼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가. 개념인가, 매체인가?"

 


H Queen's

"여기가 맞나?" 센트럴에 도착해서 하우저앤워스가 보여서 전시를 보고, 딤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가 있다고 해서 도착한 건물에는 룰루레몬 밖에 안 보였어요. 홍콩에서는 용기를 내서 어디든 일단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엘리베이터로 안내를 해주는 직원 분들이 계셨어요. 그리고 "어디에 가냐"고 물어보셔서 데이비드 즈위너에 간다고 하니, 엘리베이터를 타는 줄을 세웠습니다. 문이 열리고 신사 분이 데이비드 즈위너 층을 눌러주셨어요. 그제서야 엘리베이터 버튼을 보니 이 건물 안에 갤러리가 7개는 있었습니다. 

도장깨기를 시작하자
도장깨기를 시작하자

 

데이비드 즈위너 David Zwirner

울프강 틸먼(Wolfgang Tillmans)의 사진전을 하고 있었는데, 회화적인 느낌의 사진을 잔뜩 봤다
울프강 틸먼(Wolfgang Tillmans)의 사진전을 하고 있었는데, 회화적인 느낌의 사진을 잔뜩 봤다

 

탕 컨템포러리 아트 TANG CONTEMPORARY ART

에드가 플랜(Edgar Plans)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에드가 플랜(Edgar Plans)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화이트스톤 Whitestone

아루타 수프(ARUTA SOUP)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제목은 <Peacemaker>
아루타 수프(ARUTA SOUP)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제목은 <Peacemaker>

탕 컨템포러리 아트의 에드가 플랜, 화이트 스톤의 아루타 수프를 보았는데, 귀여운 작품이 계속 마음에 남는 걸 보니 많이 지쳐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치 예이츠 Saatchi Yates

이수진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었던 사치 예이츠. 런던에서 보고 9개월 만에 홍콩에서 만나다니.
이수진 작가의 개인전을 열고 있었던 사치 예이츠. 런던에서 보고 9개월 만에 홍콩에서 만나다니.

작년 런던에서 들렸던 사치 예이츠를 홍콩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어요. 홍콩까지 진출했구나! 하고 혼자서 흐뭇한 표정으로 전시를 봤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찾아보니, 이번 아트바젤 홍콩 기간에만 H Queen's 에서 전시를 열었던 것이었어요. 이렇게 우연하게 만나는 기쁨이 있어요. 이번에는 찾아가지 않았지만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같은 옥션 하우스들도 이 시기에 좋은 전시를 많이 개최합니다. 


구독자, 여기까지 다 읽으셨나요? 스크롤만 내리셨나요? 아침부터 저의 홍콩 갤러리 투어 후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으로만 쫓아도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여러분의 '갤최몇'도 궁금하네요. 하루에 전시 몇 개까지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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