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표지만으로 책 고르기

책은 예쁜 거 사면 안되나요?

2024.07.30 | 조회 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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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구독자 무더운 여름 보내고 계신가요? 최근에 문학동네에서 하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보았어요. 바로 #내가만드는동경표지 였는데요. 김화진 작가의 장편소설 <동경> 표지를 독자들이 만든 이미지, 찍은 사진으로 새로 만들어서세상에 하나뿐인책을 만들어주는 이벤트였어요. 보통 책은내용 보고 고르잖아요. 저도 주로 소설의 문장을 읽고서 책을 사는데요. 그렇지만 책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표지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신간 소설 중에서 표지만 보고 추천하고 싶은 소설책을 골랐습니다. 표지만 보고 골랐어요. 구독자도님도 마음에 드는 표지가 있으신가요? 마음에 드는 표지가 있다면 @visitor.see 인스타그램을 태그하고 알려주세요. 답장도 좋습니다.

나만의 소설 표지를 만드는 문학동네
나만의 소설 표지를 만드는 문학동네 "동경" 출간 이벤트

01. 색으로 만드는 긴장감

물속의 입

김인숙, 물속의 입, 문학동네, 2024.07. / 17,000원 / ⓒ문학동네
김인숙, 물속의 입, 문학동네, 2024.07. / 17,000원 / ⓒ문학동네

디자이너: 이혜진

저는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해서 사게절 내내 괴담을 찾아 듣고 있어요. 주로 팟캐스트로 괴담을 듣고 있는데요. 주로 괴담 팟캐스트는 기괴한 커버로 어필하는데요. 김인숙 작가의 호러 선집 <물속의 > 아주 단순한 이미지와 자주색으로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호러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붉은 색을 사용하거나, 오히려 깊은 어둠을 만들어내는데, D70077(윈터 스카이) 색이 검은색 그라데이션과 함께 기묘한 구멍을 만들어내죠. 게다가 제목이물속의 이라고 하니, 색과 단어 사이에서 느껴지는 인지부조화가 만들어내서 읽고 싶어졌습니다. 


02. 누구의 이름으로?

아이가 없는 집

알렉스 안도릴, 유혜인 옮김, 아이가 없는 집, 필름, 2024.06. / 18,000원 / ⓒ필름
알렉스 안도릴, 유혜인 옮김, 아이가 없는 집, 필름, 2024.06. / 18,000원 / ⓒ필름

디자이너: 이현진

책 표지에 이름이 들어간다면 누가 좋을까요? 아이가 없는 집의 디자이너는 시리즈의 주인공을 꼽았습니다. 책 표지 절반 가까이를 할애해 ‘JULIA STARK’(율리아 스타르크)라고 시리즈의 탐정 이름을 넣었죠. 한국에서는 생소한 탐정의 이름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각인시키고 싶었을까요. 기존에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던 저자, 제목, 번역가 등 크레딧은 오히려 작게 보이고 과감하게 영문 타이포그라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스타르크’라는 성이 아이언맨을 연상시킬 수도 있고, 생소한 작가 이름을 보고서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과감한 승부수였어요.

*알렉스 안도릴(Alex Ahndoril) 부부 작가인알렉산드라 코엘료 안도릴알렉산데르 안도릴 새롭게 지은 필명입니다. 기존에는라르스 케플레르 활동했다고 해요. 


03. 언박싱을 책으로 만들면

입속 지느러미

조예은, 입속 지느러미, 한겨레출판, 2024. 05. / 15,000원 / ⓒ한겨레출판
조예은, 입속 지느러미, 한겨레출판, 2024. 05. / 15,000원 / ⓒ한겨레출판

디자이너: with text (이지선, @withtext_ ) / 일러스트 : 안유진 / 타이포그래피 : 무난한moonanhan

책은 결국 ‘열어봐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언박싱을 하는 한겨레출판의 새로운 소설 시리즈 턴(turn)이 눈에 들어왔어요. 과자 박스를 열어젖히는 듯한 띠가 인상 깊었어요. 제목 직전에 멈추어서 괜히 더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책을 ‘펼치는’ 행위가 곧 시각적으로 ‘열어보는’ 행위로 치환되는 시각적 즐거움을 기꺼이 즐겨보고 싶어졌습니다. 책이 가지는 전통적인 물성에서 벗어나 ‘포장’이거나 ‘언박싱’처럼 디지털 경험이 하나씩 묻어나오는 것 같아서 가장 디지털에 가까운 물성을 지닌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겨레출판의(TURN)’ 전자책 플랫폼 리디와 함께 기획하는 장르소설 전문 시리즈입니다.


04. 그림 한 장으로 말하기

네가 되어 줄게

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2024.06. / 12,500원 / ⓒ문학동네
조남주, 네가 되어 줄게, 문학동네, 2024.06. / 12,500원 / ⓒ문학동네

디자이너: 김성령 / 표지그림 : 인디고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은 조금 피하는 편이에요. 그런데네가 되어 줄게 너무 뻔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을 담고 있는 일러스트라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1990년대 동네에 있을 같은 간판 디자인, 그리고 1993 <-> 2023 이라는 함축적인 숫자와 캐노피에 적어놓은조남주 장편소설라는 표지에 필수요소들이 담겨있어서요. 띠지와 함께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같다는게 오히려 장점이었어요. 앞선 표지가 내용을 숨기거나, 함축적으로 전달해서 흥미를 끌었다면 오히려 일러스트형 표지가 많은데도 내용을 한번에 전달하는 영리한 표지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5. 동시대 시각 언어로 만든 고전

문자 살해 클럽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 서정 옮김, 문자 살해 클럽, 난다, 2024.06. / 16,000원 / ⓒ난다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 서정 옮김, 문자 살해 클럽, 난다, 2024.06. / 16,000원 / ⓒ난다

디자이너: 이기준

표지만 봤을 , 눈을 비비고 다시 봤습니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혼란을 주는 표지는 사실상 책을 고르는 사람 입장에서 눈길을 한번 끌지만, 가독성을 중시하는 독자라면 오히려 넘어갈 수도 있을 같은데요. 음각처럼 오히려 글씨를 어둡게 표기해서 오히려 눈을 찡그리면서까지 제대로 읽고 싶어지는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어요. 그리고 띠지의 네온 컬러가 다시 한번 눈길을 잡아끕니다. 그리고 띠지에 있는 검은 박스의 작가의 이름과 번역가의 이름을 좌상단에 바짝 붙이는 형식으로 배치해서 시각적으로 편안한 구도를 깨트리죠.  시각적 불안이  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듭니다. 책 표지란, 시각적으로 책을 열어보고 싶도록 만드는게 가장 중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도발적인 책 표지 디자인 때문에라도 저는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가 동시대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가는 1950년에 사망했고, 살아있을 때는 단 하나의 작품도 출간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후 39 후에서야 작품이 책으로 발간되었다고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고전소설과 러시아 작가를 국내에 소개하는 영리한 디자인이에요.


06. 물음표 없이 질문하기

못해 그리고 안 할거야

리디아 데이비스, 이주혜 옮김, 못해 그리고 안 할거야, 에트르, 2024.07. 21,000원
리디아 데이비스, 이주혜 옮김, 못해 그리고 안 할거야, 에트르, 2024.07. 21,000원

디자이너: 원과사각형

표지에서 짧은 이야기가 완성되어버린다면, 사람들은 책을 좋아할까요? 리디아 데이비스의못해 그리고 할거야(Can’t and Won’t)”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같아요. 표지가 한편의 우화같거든요. “최근 나는 어느 문학상을 받지 못했는데,”라고 시작하는 표지의 텍스트에 이어서 제목으로 추정되는 문장이 나오죠. 그리고 책은리디아 데이비스 이야기집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져요. 물음표가 없이 물음표를 만들어내는 표지에요. 특히 글자들이 모두 같은 크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엇 하나 강조되지 않아서 오히려 표지가 우화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행간을 읽는다 표현을 쓰고는 하는데, 표현을 디자인으로 옮긴다면못해 그리고 할거야라는 생각을 해요. 색으로 나뉘어진 구획 사이로 당신은 무엇을 읽어냈나요?


호명되지 않는 크레딧

"책"하면 저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그리고 출판사와 대표 편집자가 누군지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책에는 본문과 표지 디자이너가 있죠. 표지에 사용된 그림이나 사진을 찍은 작가도 있습니다. 마치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감독과 주연 배우 크레딧만 크게 보이듯이 책에도 평소에 신경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크레딧 속 이름이 있습니다. 책의 어딘가에 이름이 있지만 호명되지 않는 디자이너들을 생각하며 이번 레터를 적었습니다. 


*디자이너는 책에 표기된 것을 따랐습니다. 표지 디자인 크레딧이 있을 때는 표지 디자이너를, 판권에 있는 디자이너만 있다면 판권 속 디자이너 분의 성함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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