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첫번째 레터를 발송하고 지난 2주간 파리에 다녀온 클로이입니다. 귀국하자 마자 두번째 레터를 작성하고 있어요. 시차 적응에 실패해서 한국 기준으로 밤에 발송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프랑스 기준으로는 지금 한낮이거든요. 그나저나 파리의 봄, 정말 좋았어요! 길어진 해를 만끽하며 노천 카페에서 커피나 디저트를 즐기는 파리지앵들처럼, 천천히 먹고 마시고 걷고 보고 돌아왔습니다.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방문한 파리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친절했습니다. 그리고 멋진 전시들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어요. 시간 관계상, 그리고 파리가 처음인 동행과 함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퐁피두 센터를 방문하였습니다.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비롯한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작품들도 좋았고, 오르세에서 열리는 1874년 인상파의 탄생 전도 즐거웠어요. 특히 퐁피두 센터의 브랑쿠시 전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
브랑쿠시 Brancusi: Art is just beginning
2024년 3월 27일 - 7월 1일
6층 특별전시실 Gallery 1 Level 6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의 대규모 회고전 성격인 이번 전시에는 120여 점의 조각품을 비롯해 사진, 드로잉, 관련 문서 등 약 400여 점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외형에서 시작해 본질로 나아가는 브랑쿠시의 조각은 하나의 양식화 된 형태로 통합적으로 구축되는데요. 그의 말대로 우리는 (플라톤 이래) "진정한 삶-이데아-이 아닌 모방된 삶-그림자-만 볼 수 있으니까요 We only see the reflection of real life." 브랑쿠시가 표현한 본질만 남긴 단순화된 형태는 고요하고 때로는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퐁피두 센터의 아름다운 파리 시내 뷰를 배경으로 설치된 브랑쿠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공간 속의 새' 연작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는 충분히 관람할 가치가 있었어요. "각각의 새 조각은 다음의 새를 이끌었고, 그 모두는 이전 것과 달랐습니다 Each Bird led to the next, each differing from the previous one." 나무나 금속 등의 다른 재료로 표현했을 때의 느낌, 각 재료의 매끄럽거나 거친 표면은 거의 시각적인 것을 넘어 촉각적인 느낌을 줍니다. 좌대까지도 조각의 일부로 표현한 물성-형태의 관계 또한 감상의 좋은 포인트입니다.
사실상 좌대의 형상만이 남아 반복되고 있는,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을 전시실의 끝에서 마주했을 때, 그리고 한 켠에서 상영되고 있던 실제 루마니아에 위치한 끝없는 기둥의 영상 및 사진을 보면서. 이전에 읽었던 마틴 게이퍼드의 책 <예술과 풍경>의 한 페이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저자는 오로지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루마니아의 수도 부큐레슈티부터 다섯시간을 차로 달려 트르구지우로 간 경험으로 책을 시작하거든요.
무한을 조각한 끝없는 기둥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견고한 3차원으로 재현한 작품인데요. 루마니에에서 실제 조각을 감상한 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실제 작품을 직접 보는 경험은 정말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의미 있는 경험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퐁피두 센터의 이번 브랑쿠시 전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파리의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에는 이밖에도 유명한 현대 화가들의 작품이 상설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5층에서는 20세기 초반 현대 미술을 여는 피카소, 마티스를 비롯해 샤갈과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 프란시스 베이컨과 마크 로스코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요. 4층에서는 20세기 후반, 1960년대 이후의 작가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퐁피두 센터는 루브르와 오르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으니, 꼭 다른 작품들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합니다.
2025년부터 5년간 긴 공사에 들어갈 예정인 퐁피두 센터를 마지막으로 방문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2024년 파리 여행은 추천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2025년 10월부터 한국에서 퐁피두 센터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을 거라는 기쁜 소식이 있지만요. (링크) 파리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의 시공간을 따라, 파리를 걷고 파리를 그린 작품들을 만나보는 건 무척 즐거운 경험이니까요. 올해 여행계획을 세우고 계시는 문화예술 애호가라면 이번 기회에 꼭 파리의 사계절을 만끽해보시길 바랍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