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중국집 해물짬뽕밥
- 엄마 김치찌개
- 짜파게티와 파김치
- 떡
- ...
- .....
집 떠난지 석 달, 먹고 싶은 음식 메모가 하나하나 늘어갔다. 질 좋은 사워도우와 산지에서 먹는 아보카도 그리고 반숙 계란 조합은 몇날며칠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식이라는 본능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브리즈번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첫번째 음식. 탕수육과 짬뽕밥이었다.
다음 날은 택범의 아내, 유빈씨가 끓여준 해물 순두부, 그리고 한국에서 공수해온 과메기와 참이슬. (순두부 찌개의 감동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또 다음 날, 첫째 딸 유리와 함께 간 곳은 ‘찹쌀도너츠’ 푸드 트럭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메라딘과 나는 찬장에서 짜파게티를 발견하고는 (물론 동의를 구하고)먹어치웠다.
덕분에 한식으로의 끌림은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러니 어떻게 브리즈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브리즈번 입니다, 한국이 아닙니다>
뉴질랜드의 다음 목적지로 호주 브리즈번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짬뽕밥이랑 순두부찌개…는 아니었고 친구 “택범”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창인 택범은 호주에 살고 있다. 덕분에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만나도 커피 한 잔, 식사나 한 번 겨우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게다가 택범은 나와 메라딘을 뉘일 방 한 칸을 내어주겠다 하시오니(급 존칭)가지 아니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유일한 조건은 “주말에 나랑 같이 잔디 좀 깎자”였고 깎았다.)


< 밥 값을 조금 해보고자 했습니다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택범은 매일같이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은 지 덥지 않은지 물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주저하지말고 빨리 얘기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다리를 힘주어 뻗어도 벗어날 수 없는 길고 넓은 침대가 있고, 뜨거운 물 샤워를 매일 세 번도 할 수 있으며, 언제든 냉방이 가능하고,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도와줄 친구가 있다는 것에 더 바랄 게 없었다.
“오토 기어와 후방카메라만 있으면 열 시간도 운전하겠다”
수동기어로 시동을 꺼뜨릴 때, 메라딘이 내려서 차량의 뒤를 확인하며 주차를 할 때면 매번 내뱉던 말이다. 거친 야생의 뉴질랜드 운전 경력을 인정한 택범은 본인의 차를 내줬다.(그는 재택근무자다) 캠퍼벤보다 훨씬 많은 편의장치를 가진 차 덕에 우리는 브리즈번의 구석구석을 즐기는 것은 물론, 브리즈번을 벗어나 누사(Noosa), 바이런 베이(Byron Bay), 골드코스트(Gold Coast)를 다녀올 수 있었다.
시드니, 브리즈번 사람들이 은퇴 후의 삶을 꿈꾸는 곳. 누사에는 명성에 걸맞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골드 코스트의 화려하다, 웅장하다는 느낌 보다는 잘 가꾸어진 휴양지 느낌이 강했다. 해안을 옆에 두고 산책로를 걸으며, 바다와 바위가 자연적으로 빚어낸 ‘Fairy Pool’에서 시간을 보냈다. 소품 등 다양한 것들을 다루는 작은 상점가가 있었는데, 다행히 그 때 만큼은 정신을 차리고 지갑을 지켜냈다.


<Fairy Pool, 해변만큼 사람이 많더라>
바이런베이에서는 잔잔한 휴식에 파도가 쳤다. 사람들이 많은 메인 비치를 벗어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은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택범과의 저녁 약속 시간에 맞춰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다가오는 파도는 생각보다 높았고 나는 안경이 파도에 벗겨질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안경을 잡으려고 한 순간, 손은 눈 보다 빨랐으나 파도는 더 빨랐고 파도에 안경이 쓸려나갔다. 동시에 나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는데, 순간 무언가 내 발을 스쳐갔다. 아마도 그건 안경과의 작별인사가 아니었나 싶다.(아련) 그 안경은 이번 여행을 위해 제작했고 꽤 비쌌다.(렌즈만 수십만원..ㅠ) 흐릿한 시야로 주위를 제 아무리 살핀 들 안경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이런베이에서 브리즈번 까지는 두시간 거리. 메라딘이 운전을 해야 했는데, 이 운전이 메라딘에게는 뉴질랜드, 호주의 첫 운전 이었다.(그의 마지막 오른쪽 운전석 경험은 7,8년전 오키나와 였다) 설상가상. 출발과 동시에 비가 내렸다. 아주 세차게. 메라딘은 첫 운전에 초 집중했고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안경에 대한 상실감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력감에 찌그러져 있었다. 다행히 메라딘은 무사히 집까지 패배자를 인도할 수 있었다.(다행히 예비로 가져간 안경이 하나 더 있었다)
골드코스트는 택범도 합류했다. 유명한 파이집을 들르고 말로만 듣던 골드코스트에 닿았다. 주말 골드 코스트의 인파는 피할 길이 없었다. 여느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고층 빌딩과 상점이 즐비하고 그만큼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을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큰 해변이 있었다. 두 아저씨는 2012년 시드니에서 이후 처음으로 바다에서 함께 놀았다. 그 때의 느낌은 친구의 옆에서 지금의 나를 잊는 것 같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나이가 몇 이고 하는 것들을 잊고 마치 함께 다니던 학원의 옆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빌려쓴 선글라스와 함께 캥거루도 봤다>
며칠 집을 비우게 된 택범의 아내, 유빈씨가 남긴 말은 “우리 오빠 운동 좀 시켜주세요.” 였다. 하필 그 쪽에 일가견은 물론 경험까지(ㅠ) 있는 메라딘은 집 주위를 탐색해 러닝 루트를 만들어 냈다. 여느 날과 사뭇 다르게 한국 군대 기상 나팔로 택범을 일으켜 아침 러닝을 나갔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단 한 번도 나란히 뛰어본 적 없는 택범과 나.(우리는 농구를 했지만 러닝과 무관한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메’서운 조교를 앞에 두고 러닝을 했다. 두 친구는 나란히 뒤쳐지기 시작했으며, 택범은 아침 회의를 핑계로 코스를 이탈해 집으로 향했으나,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회의에 지각할 뻔 했다고 전해진다.


<'메'서운 조교를 따라갈 수 없는 이들과, 회의를 핑계로 도망...?>
브리즈번은 뉴질랜드 수업을 잘 마친 우리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 같았다. 무얼 배웠는지 또 앞으로는 무얼 배울지 정리하거나 계획하기보다 멀리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쉬는 시간 이었다.(나와 택범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본 것, 들은 것, 지금의 생각을 체에 거르지 않고 맥주 한 잔에 전하는(그 시절에는 언어학원 주방에서 먹는 라면에 무생채였다) 가벼움이 있었다. 나는 택범을 만나러 처음 시드니에 갔었던 기억으로 지난 십 수년을 산 것 같은데, 앞으로 수십년을 뜯어먹고 살 큰 추억에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전한다. 친구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에게.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