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인의 천국 바로여기

어쩌다 보니 뉴질랜드 수영장 도장깨기 한 사연

2025.12.04 | 조회 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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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 실전편

2025 세계를 떠도는 야채빵(메진,빵돌)의 여행기

#혜진

수영장을 처음 가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와나카에 머무를 때였다. 와나카는 뉴질랜드 남섬 센트럴 오타고 지역의 호수와 산을 끼고 있는 조용하면서도 활기찬 마을인데 1시간 거리의 퀸즈타운이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뉴질랜드 최고의 핫플레이스라면 와나카는 로컬들이 사랑하는 근교 여행지이다. 퀸즈타운이 해운대라면 와나카는 송정의 포지션이랄까? 물론 송정을 찾아가는 관광객이 있듯 여행자가 아주 없는 곳은 아니고 우리도 2년 전 여행 때 들렀던 적이 있다. Roy’s Peak을 등산하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산행은 아름다웠지만 와나카 시내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이 마을에 대한 인상이 특별하진 않았다.

2023년 3월 Roy's Peak 산행. 같은 날에 찍은 사진 맞고요.. 시시각각 날씨가 변했다
2023년 3월 Roy's Peak 산행. 같은 날에 찍은 사진 맞고요.. 시시각각 날씨가 변했다
와나카에서 가장 유명한 와나카 나무. 호수 한가운데 자라는 특이한 이 나무를 찍으려고 관광객들이 오는 것 같다. (사진 출처 구글맵..ㅎ)
와나카에서 가장 유명한 와나카 나무. 호수 한가운데 자라는 특이한 이 나무를 찍으려고 관광객들이 오는 것 같다. (사진 출처 구글맵..ㅎ)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은 다양할 텐데 나는 매번 새로운 곳을 찾거나 최대한 많은 곳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은 아니고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을 여러 번 가는, 여행지에서 나만의 단골 가게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번 찾다 보면 가게 직원들도 알은체해주고 스몰톡도 자연스러워지면서 낯선 곳이지만 내가 잘 아는 가게, 인사 나누는 사람이 있다는 감각이 만족스럽다. 그러다 이어지는 로컬의 추천은 여행을 뻔하지 않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래서 도착한 마을에 가짓수는 적어도 제대로 하는 카페, 식당, 펍이 한두 개씩만 있어도 즐기기 충분하다고 느낀다.

다시 찾은 와나카는 완벽했다. 눈부신 날씨가 우리를 반겼고 퀸즈타운 뺨치는 아름다운 호숫가 풍광과 여름 성수기를 맞은 적당한 북적임,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와 끝내 우리의 최애 식당이 된 채식 브런치식당,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 탭이 갖춰진 로컬 펍까지! 우린 당초 3일 계획으로 왔지만, 이 마을의 사랑스러움에 반해 일정을 하루 연장해 4일 동안 와나카를 즐겼다.

여름의 와나카 호수. 머무는 내내 날씨가 굉장했다
여름의 와나카 호수. 머무는 내내 날씨가 굉장했다
뉴질랜드 최애 식당 Big Fig. 저녁으로 먹고 다음날 브런치 먹으러 또 올 정도..
뉴질랜드 최애 식당 Big Fig. 저녁으로 먹고 다음날 브런치 먹으러 또 올 정도..

우리가 좋아했던 카페는 Corner Peak Specialty Coffee라는 곳이었고 사실 일반적인 카페는 아니고 야외 테이블, 릴렉스 체어 몇 개 가져다 둔 작은 트레일러 커피 스탠드였다. 잘 갖춰진 실내에서 우아하게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빵스민이 웬일로 커피 스탠드에 가자기에 의아했는데 구글맵을 열어보니 별점이 꽉 찬 5점에 리뷰에는 하나같이 와나카 최고의 커피라는 찬사가 가득했다. 게다가 Wolf Coffee Roasters의 원두를 쓴다고! Wolf Coffee는 퀸즈타운과 와나카 사이에 위치한 애로우 타운에 있는 평이 좋은 로스터리인데 2년 전 커피를 마시려고 들렀다가 임시 휴무 이슈로 못 마시고 돌아간 슬픈 전설이 있다.

소이 플랫화이트와 진저 슬라이스. 3일 연속으로 왔다. @Corner Peak Specialty Coffee
소이 플랫화이트와 진저 슬라이스. 3일 연속으로 왔다. @Corner Peak Specialty Coffee

트레일러 앞 의자에 앉아 오트 플랫화이트와 소이 플랫화이트를 마시며 니 거가 낫니 내 거가 낫니 하던 우리 시선을 끈 것은 길 맞은편의 큼지막한 ‘와나카 레크레이션 센터’ 건물. 레크레이션 센터가 뭐지? 하고 찾아보니 어머나 50m 8레인에 자연광 통창을 가진 수영장이 있는 공공시설이 아닌가. 2024년 수영에 (재)입문해 신나게 풍덩이다 라이프가드 자격까지 따버렸지만, 여행으로 제대로 된 랩수영을 못 한 지 한 달 반째,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다!

다음날 수영복을 챙겨 들고 신나게 캠핑장을 나섰다. 뉴질랜드 수영장엔 자쿠지가 있다는 것도 여기서 처음 알았다. (보통 6~10명쯤 들어갈 수 있는 목욕탕 온탕 정도의 사이즈) 따끈한 자쿠지에 잠겨 몸을 노곤하게 예열하고 수영하니 힘들지도 않았다. 너무 신이나서 1500미터를 가뿐히 돌고(평소엔 1000미터 정도 한다)나와 호숫가 펍에 앉아 마시는 헤이지 IPA 한 잔! 캬~~~~

오 수 완!
오 수 완!
호숫가 앞 탭 많고 맛있고 분위기 좋은 펍. 이틀 연속 왔다. 맨체스터에서 이주왔다 번아웃 온 유기농 버섯농부와 합석해 인생(및 휴가지) 상담도 했음 ㅋㅋㅋ
호숫가 앞 탭 많고 맛있고 분위기 좋은 펍. 이틀 연속 왔다. 맨체스터에서 이주왔다 번아웃 온 유기농 버섯농부와 합석해 인생(및 휴가지) 상담도 했음 ㅋㅋㅋ

그때부터 우리의 캠핑은 많이 달라졌다. 이동할 지역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싶으면 공공수영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고 반드시 방문해 수영을 즐겼다. 어느 마을 수영장이든 50m레인과 따끈한 자쿠지는 꼭 있었고 스팀룸(사우나)가 있는 곳도 많았다. 게다가 우리가 방문한 곳 중 절반 이상은 야외풀이었고 다들 키가 커서 그런지 수심도 보통 1.8m를 넘었다. 뉴질랜드 인구밀도가 낮다는 건 수영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보통 한 레인을 나와 빵스민 둘만 썼으니까(가끔 각자 한 레인씩 쓰기도 했다). 수영인 여러분 심장이 뛰시죠? 여기가 바로 우리의 천국입니다..!

수영을 한다는 것은 샤워도 한다는 얘기. 세상에, 노지캠핑의 환상의 짝궁은 다름 아닌 수영장이었던 것이다. 이 굉장한 발견을 캠핑 생활 한 달여 만에 깨우친 빵스민과 나는 그 이후로 비가 많이 오거나 빨래가 심각하게 쌓인 경우가 아닌 이상 유료캠핑장을 가지 않는 상급 캠퍼로 진화했다.

 

우리가 사랑한 뉴질랜드의 수영장 몇 군데를 소개해 본다.

1. Marlborough Lines Stadium 2000

명실상부 빵스민과 나의 최애 수영장. 와인산지로 유명한 남섬 말보로 지역의 메인 도시(라기엔 마을..)인 블레넘에 위치해 있는데 부유한 동네의 위엄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규모와 시설이었다. 와인 잘 팔리나 봄.. 이 수영장을 다니기 위해 이 동네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이 근처를 여행하며 3번이나 방문했음.

실내 사진은 공홈에서 퍼왔다. 가로로 25m 레인이 있고 저 멀리 50m레인이 세로로 배치. 사진의 정면 창쪽으로 나가면 야외풀이 있는 테라스가 있다.
실내 사진은 공홈에서 퍼왔다. 가로로 25m 레인이 있고 저 멀리 50m레인이 세로로 배치. 사진의 정면 창쪽으로 나가면 야외풀이 있는 테라스가 있다.
아름다운 야외 풀. 사진/영상 찍는 것도 허락해 줬다
아름다운 야외 풀. 사진/영상 찍는 것도 허락해 줬다

2. Todd Energy Aquatic Centre

북섬 최고봉인 타라나키 산을 가기 위해 들렀던 뉴플리머스. 산행 후 샤워나 할 겸 기대 없이 들렀다가 눈이 뿅 튀어나온 아름다운 수영장. 저멀리 보이는 것이 바다가 맞습니다. 7레인 중 왼쪽 2레인은 가운데 칸막이(?)를 설치해 25m 레인도 만들어 두었다. 왼쪽엔 잘 안보이지만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얕은 풀들과 테이블, 의자가 충분히 있어서 피크닉 오기 좋은 분위기였다. 뉴플리머스 일정이 짧아서 너무 아쉬웠고, 이곳을 기억하기 위해 수모도 하나 샀음.

첨부 이미지

3. Wanaka Recreation Centre

조용하고 아늑했던 첫 수영장. 와나카의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더 좋게 만들어준 공신. 빵스민은 은퇴 후 와나카에 살고 싶다고 한다..ㅋㅋㅋㅋ 뉴질랜드의 첫 수영장이라 살짝 긴장해서 사진 찍어 볼 생각도 못했기에 구글에서 사진 찾아왔다.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실내수영장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실내수영장
여기는 따끈따끈 자쿠지.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여기는 따끈따끈 자쿠지.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4. Viaduct Harbour : 수영장은 아니지만 레인이 있으니까!

뉴질랜드 최대도시 오클랜드는 매년 여름이면 유동인구가 많은 바이덕트 하버에 플랫폼과 레인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수영을 할 수 있게끔 한다. 우리의 에어비앤비 호스트 스티브가 한번 꼭 가보라고 해서 갔다가 이 이국적이고 색다른 경험에 두번 방문했다. 레인이 설치된 곳은 수심이 아주 깊지만 계단 앞쪽은 수심이 얕아 어린이들도 물놀이를 할 수 있다. 플랫폼 위에서 가볍게 수돗물 샤워가 가능하고, 탈의실도 있다. 한쪽 편엔 다이빙대가 설치 돼있어 쉴새 없이 풍덩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라이프가드가 3~4명 정도 상주하고 도움을 준다. 발 안닿는 바다 수영을 두려워하는 빵스민도 여기선 곧 잘 수영했다!

해가 살짝 뉘엿해져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 뜨거운 낮엔 수많은 사람들이 물개들 처럼 가득 누워있다ㅋㅋㅋ
해가 살짝 뉘엿해져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 뜨거운 낮엔 수많은 사람들이 물개들 처럼 가득 누워있다ㅋㅋㅋ
열심히 평영하는 메진. 꽤나 상체가 잘 떴다 만족스럽군
열심히 평영하는 메진. 꽤나 상체가 잘 떴다 만족스럽군

뉴질랜드(뿐만 아니라 해외 대부분)의 수영장은 입수 전 샤워를 강제하지 않고 수모나 수영복에 규정이 없다. 긴 머리를 펄펄 날리며 수영하거나 티셔츠를 입고 수영을 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고 비키니 입고 랩수영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럼에도 내가 다닌 어떤 수영장보다 물이 깨끗하고 락스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아 의아할 지경. 이유를 찾아보니 그들은 사용자들을 통제해서 수질을 관리하지 않고 수영장 물을 많이 순환, 교체하고 청소를 자주 한다고 한다. 너넨 맘대로 편하게 써 우리가 물 관리 알아서 할게… 인 것이다. 수영장 상주 라이프가드들도 적극적으로 청소나 수질관리 활동을 하는데 조금의 부유물(벌레, 나뭇잎, 머리카락)도 즉시 뜰채로 건져 냈고 매시간 자쿠지와 수영장 물 온도, 사우나 내부 온도를 체크해 기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때, 수영하러 뉴질랜드 가고 싶지 않아?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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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발행에 깊은 사과 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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