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에필로그

2021.08.28 | 조회 1.4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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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신희와 시연의 서간문 프로젝트

 

 

(1) 독자님들의 소중한 후기와 질문

 

'모든 편지에서 조심조심하는 마음이 읽혀서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잘 읽었답니다.'

 

'신희 님과 시연 님이 처음 만났다던 무덥고 몽롱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여름날 속에 있는 기분으로 10주간의 편지를 함께 읽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적으로 쓴 편지가 수신인 외의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공개되는 걸 꺼려하는 사람이라, 서로에게 쓴 편지를 또 다른 누군가가 구독할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두 분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앞으로 저는 두 분의 근황을 모른 채 살아갈테지만, 이렇게 스스로의 여름을 기꺼이 나눠주신 두 분을 떠올리며 마음 따뜻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쁘고, 고맙습니다. 이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다시 돌아올 봄에도 늘 건강하세요. 쭉 응원할게요!'

 

'풀타입 포켓몬 신희와 불타입 포켓몬 시연의 편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두 사람의 다정함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서로의 편지에 담긴 이야기로 수신인에게 수식어를 달아주는 것부터 그랬어요. 나무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에 '나무가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준 것처럼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관계란 무엇인지 늘 어려워하고 고민하는 제게 많은 공감과 위로가 되어준 편지였습니다. 어떤 구절에서는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지요.🥲 서로의 섬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었다가,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었다가,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하는 두 분을, 멀리서 통통배를 타고 바라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연재가 끝나고도 저는 종종 통통배를 띄워 바다로 나갈 것 같아요. 멀찍이 배를 세우고 바라보려고요. 망원경없이, 그냥 멀리서 온전히 두 눈으로요. 제 여름에 따스한 위로와 행복을 가져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두 분이 쓰는 글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두 분 모두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요.'

 

'편지 읽는 건 2분도 채 안 되지만, 편지 안에서 둘의 고민이, 읽는 모든 누군가의 고민일 수도 그리고 나의 고민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편지만 읽는 짧은 시간뿐만 아니라 따로 더 무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잠깐 동안 매주 기대되는 토요일을 만들어줘서 고마웠어. 남의 일기장 보는 것 같아서도 재미졌고.'

 

'개인적으로 저는 진짜 '어사'인 사람에게 '어사'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데요. 두 분은 어떻게 서로를 '어사'라고 규정하게 되었는지? '어사'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있을까요?'

-> '어사'라고 서로를 부를 수 있을 만큼은 가깝기 때문일 수도 있고요. 자기객관화를 위해 노력하는 글 쓰는 사람들이어서일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호기롭고 뻔뻔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2) 

정신없는 학기 중에 격주로 짧지 않은 편지를 쓰고, 그걸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뉴스레터로 발송한다는 용감한 생각을 했다. 어쩌면 내 삶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무모함과, 그것을 가까스로 수습하는-혹은 때로 수습하지 못하는-날들로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편지를 발송한 뒤, 연재를 성실하게 지켜봐 준 친구가 마지막 인사라며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카톡을 읽으며, 그리고 독자님들이 익명 설문지에 남겨준 소감들을 읽으며, 그제서야 10주간 내가 연재를 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조심조심 글을 쓴 우리의 마음을 함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읽어준 사람, 종종 우리가 나눈 여름을 떠올리며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고 해준 사람, 아주 뜻밖의 위로와 응원을 전해준 사람, 매주 기대되는 토요일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던 사람, 위로와 행복을 가져다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는 사람이 있었다. 인간이 간사해서 감사하고 행복한 일들은 잘 잊게 되니 남겨두고 싶었다. 드러내어 표현을 하지는 않아도 마음으로 응원하고 매주 편지를 읽어준 사람들도 있음을 안다. 모든 독자님들에게, 연재를 무사히 마친 나와 시연에게, 김금희 작가님의 표현을 빌려 "끊이지 않고 흐르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 하루가 무서워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만성적인 불안감을 매일 꾹꾹 씹어 삼키는 현재 나의 솔직한 내면을 이 편지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4학년인데 졸업은 할 수 있을지, 다음 달 월세는 낼 수 있을지, 내일 아침엔 원하는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지 나는 아무 것에도 자신이 없다.

그래도 계속 살아 있겠다고 약속하겠다.

2021827,

그리고 살아 있다면 아마 계속 글을 쓸,

신희

 

 

 

(3)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4일 안에 당신 곁을···.”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개인 휴대폰이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친구들에게 많은 편지를 받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손편지는 아니었고 문자 메시지로.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편지였다. 괴이한 도시전설이었다.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전달하지 않으면 나에게는 불행이 닥친다고 했다. 나는 부랴부랴 주변의 가장 친한 친구들 일곱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그렇게 나와 내 친구들은 마치 폭탄을 돌리듯이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내 친구들 사이를, 친구의 친구들 사이를, 나아가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 사이를 떠돌고 있을 그 편지를 상상하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서움을 느꼈다. 최초의 가담항설, 최초의 편지, 최초의 통신, 최초의 서늘함, 그런 것들이 글을 쓰는 나에게 글자에 대한 오래된 기억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 본가에 돌아가 아버지의 옛 일기장과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편지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십대 시절 아버지 또한 정확히 똑같은 내용의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된 편지를 받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 “뭐야, 아빠도 이 편지 받아봤어?”라고 물으며 내가 느낀 것은 이상야릇한 동질감이었다. 순진하고 또 걱정이 많던 아이들 사이를 맴돌았을 편지는 무려 두 세대에 걸쳐 전해지며 우리 민족을 편지의 민족으로 만들어버린 듯했다.

문학이 좋은 점이 뭐야?”

글쎄,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넌 왜 문학을 좋아해?”

, 딱 하나 있다. 연애 편지를 잘 쓸 수 있게 해줘. 나 기념일 약속 나가기 직전에 삼십 분도 안 걸려서 다 썼잖아. 남은 편지지에는 김행숙 시 필사하고.”

그래 참 좋겠네.”

짓궂은 우스갯소리로 문학은 연애 편지를 잘 쓸 수 있게 해주는 것 외에는 하등 쓸모 없다며 자조하고는 했던 어린 나는 그래서 편지를 잘 쓰는 문학도가 되었냐고? 7월에는 친구가 주변 사람들에게 손편지를 적느라 편지지 세트를 다 써버렸다는 말을 듣고 나도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 서른 장을 사두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양껏 손편지를 써서 주변에 전달할 거라던 다짐과는 달리 부끄럽게도 나는 이번 여름 서너 편의 편지밖에 쓰지 못했다. 나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시인을 시인으로 만드는 것은 시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시를 쓰는 태도라고, 시는 시를 쓰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납부해야 할 세금 같은 거라고. 편지도 다를 게 없다. 편지가 소중한 까닭은 글 때문이 아니라 편지를 쓸 마음과 읽어줄 상대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니까.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면 절대로 이 틈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내 책상 앞에 그들을 불러 앉히고는 조잘거리며 쉴 새 없이 떠들 듯 많은 글을 써두는 거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나, 이런 모습들이 전부 희미하게 느껴질 때마다 길을 헤매게 되었을 때 펼쳐 드는 약도처럼 그 시절의 글을 읽어야지. 사람을 사랑하는 내 관성을 따라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나야. 듣고 있어. 오래 하고 싶었던 말을 해줘.”

10 주 동안 나의 말을 들어주었던 신희 언니와 소중한 독자들에게, 며칠 전 나의 화두가 되어준 최은영의 장편소설 밝은 밤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옮겨 적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는 여전히 할 말이 많다. 억울한 사람의 종이에는 여백이 없으니까.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감탄하며 아이와 같은 환희를 느끼는 사람에게도 지면은 항상 부족하다. 나의 빼곡한 글씨가 스스로에 대한 가여움과 억울함보다는 이 세계의 충만함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란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총 일곱 개의 지면을 내어준 서로가 있었기에 2021년 여름 우리의 편지가 쓰일 수 있었음을 안다. 말을 하려면 말을 걸어주고 또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화자와 청자와 제 3, 수신자와 발신자와 독자가 있는 글을 쓰는 일. 그것은 내가 꿈꿔오던 일이었다. 편지를 쓰는 덕분에 먹먹했던 검은 글자들이 다리를 뻗고 누울 공간이 생겼으니,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내심 평안했다고 고백한다.

, 그럼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쉬우니 우리도 도시전설을 하나 만들어 볼까?

이 편지는 2021513일 신희와 시연으로부터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지금은 당신에게로 옮겨진 이 편지는 올해 안에 당신 곁을 떠나야 합니다. 어떤 말이든 좋으니 소중한 일곱 명에게 편지를 보내십시오.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고 해도 불행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곱 장의 편지지가 주어졌을 때 내가 채워 넣을 수 있는 일곱 명의 이름이 있다면 당신은 당신 주변에 있는 명백한 행복을 눈치채게 될 것입니다.”

종종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걸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함께 발맞추어 헤엄을 치며 뭍으로 올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홀로 남아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너는 그 섬에 갈 수 있어? 10 주 간의 연재가 끝난 후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꼭 한 번씩은 되받아왔던 질문.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이렇게 묻는 대신 나는 정말 사람들의 섬에 가 보고 싶어졌어. 잘 있어. 또 편지할게. - 우리가 어사(어색한 사이)”여도 괜찮은 시연이가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신희와 시연의 선배인 어느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라고 썼다. 우리는 그 섬의 존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때로 그 섬을 넘보고 엿보고 탐낸다. 같은 학교 같은 과 한 학번 차이로 입학한 신희와 시연은 선배가 후배에게 밥을 사주는 일명 밥약으로 한 번의 만남을 가진 후 이 년 동안 SNS 친구로만 지낸다. 졸업할 때까지 다시 볼 일 없을 것만 같던 둘은 신희의 돌연한 서간문 연재 제의로 이 년 만에 신촌 독수리다방에서 다시 만났다. 시쳇말로 소위 어사(어색한 사이)’인 이 멀고도 가까운 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둘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 섬에 갈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마다 오고가는 편지. 무료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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