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일기] 조용한 시와 나츠메 우인장

조용한 시와 나츠메 우인장

2022.03.25 | 조회 5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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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기

조용히 바라볼 때 사물이 저에게 들려주는 얘기를 전합니다. 격주로 한 주는 조용한 에세이를 다른 한 주는 조용한 서평을 보내드립니다.

  사람마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물의 이상한 점을 본다. 제빵사는 디저트로 나온 빵을 먹는 데 메인 음식보다 더 신경을 기울일 수 있고, 편의점 알바생은 가판대에서 어떤 종류의 담배를 사는가에 따라서 손님을 파악할 수도 있다. 도배하는 사람은 벽의 울퉁불퉁한 면을 조금 더 예민하게 바라본다. 내가 어떤 사물에 더 관심이 있는 가, 라는 질문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바꿔주기에 중요하다. 때로는 나에게만 그 사물의 이상한 점이 보이는 것이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성정이 다 다르듯이, 우리가 다 의도적이지 않게 지금의 친구를 사귀가 된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사물이 도처에 있다. 시에서 등장하는 사물도 마찬가지다.

  나는 요새 ‘나츠메 우인장’이라는 애니를 보고 있는데 나츠메가 요괴를 대하는 방식이 내가 시를 쓰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츠메는 레이코라는 자신의 할머니 기질을 이어 받아 요괴를 보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 나츠메는 레이코의 ‘우인장’이라는 요괴 주인이 되는 일종의 장부를 물려받게 되는데. 우인장을 통해 요괴의 이름을 소유했던 레이코와 달리 나츠메는 우인장에 적힌 요괴의 이름을 요괴들에게 돌려주기로 한다. 요괴들은 우인장에 적힌 이름을 찾으려 오고, 나츠메가 그들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발상 단계에서 떠오르는 시의 이미지는 나츠메가 보는 요괴처럼 어렴풋하고 추상적이고, 내가 ‘무언가를 잘 못 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츠메가 누군가에게 자신이 본 요괴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본 시의 이미지도 쉽게 발상 단계에서 말해질 수 없다. 오히려 말해지는 순간 요괴가 달아나듯이 시의 이미지도 깨져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는 요괴를 혼자서 직시하는 나츠메처럼 시의 이미지를 대해야 한다. 그러면 요괴는 천천히 내게로 와서 말을 걸기 시작할 것이다. 잠들기 전이나, 양치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신호등을 건너다가, 외투에 묻은 케쳡을 닦다가, 옥상에서 건물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는 요괴처럼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나는 나츠메의 일처럼 이미지를 그린 시에 이름(제목)을 돌려주는 것(붙이는 것)으로 시가 세계에 스스로 존재하게 만든다. 그렇게 추상적인 이미지는 나라는 통로를 통해 객관화되어서 ‘말해짐’이 가능한 지점까지 가게 된다. 

  그때 요괴라는 시는 나와는 붙어 있지만 결별해야 하고, 어쩌면 이미 결별하고 있는 타자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시가 어떤 생명체처럼 나와 동등한 위치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될 때 기쁨을 가진다. 시를 통해 누군가가 나라고 하는 창작자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시가 존재하기 위한 통로가 되고 싶은 마음이 늘 앞선다.

  시가 스스로 존재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와 결별하는 과정에서는 중간지대를 견뎌야 한다. 소멸과 생성, 끊어짐과 이어짐, 멈춤과 움직임, 꺼짐과 켜짐, 낮음과 높음. 중간지대에서 시와 흔들리면서 ‘시하는 상태’를 지속해보면서 나의 시간을 떼어주어야 한다. 때로는 어떤 시(요괴)는 가파르고 거칠고, 무모하고, 에너지가 커서 쉽게 잡아둘 수가 없다. 그리고 잡아두려는 순간 그건 사라지고 만다. 천천히 시(요괴)에 공백을 두고, 지켜보고, 시가 좋아하는 장소를 마련하고 시가 원하는 또는 원치 않는 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 이때는 시를 쓰고 완성하려는 목적도 사라지고 만다. 시가 타자가 되면서 시라고 하는 타자와 조금 더 같아지려는 상태 자체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시(요괴)를 만난 나의 시간은 시 안에서 공간화 되고, 활자화되고, 입체화되면서 시의 자립을 돕는다. 나는 이전 시와는 또 다른 형태의 중간 지대에 매번 서게 된다. 매번 흔들림이 시작된다. 흔들림 속에서 나의 상태가 변하는 것이 좋다. 그 중간지대에서 긴장과 이완을 찾는다. 

  얼룩 옆에 하얀 색을 마련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옆에 고요한 연못을 마련하고, 때로는 침대에게 날개를 달아주기도 한다. 그렇게 그려진 시라고 하는 담장이 가까스로 완성되면 나는 또 다른 담장을 칠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넘을 수도 넘지 않을 수도 없는 담장. 내가 쓴 거라고 내가 쓰지 않은 거라고도 말할 수 없는 시. 시와 나를 나누기 보다는 담장에 시를 칠해서 내가 잠깐 담장이 되거나, 나도 담장 옆에 서서 함께 수평을 바라볼 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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