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를 읽고 싶었던 건 식물에 대해 알고 싶어서였다. 아빠는 식물과 관련된 일을 했지만 내게 식물에 대해서 알려준 적이 없었다. 물론 그건 내가 아빠의 일에 대해서 묻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한눈에 나무의 종과 나이를 알 수 있었고, 아빠가 초등학교의 운동장에서 나를 데려가 병든 나무에게 수액을 꽂던 저녁이 떠오른다.
우리 집 마당에는 식물이 많지만 여전히 나는 그 식물의 종류와 나이를 모른다. 그런 나는 대학시절 커피나무를 선물 받은 적이 있어 키운 적이 있는데. 1년 가까이 성장을 했던 커피나무는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햇빛을 받지 못해 죽고 말았다. 창문을 열면 또 다른 건물의 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햇빛이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그곳을 떠나서 창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창이 보이는 집에서 학자스민이라는 하얀 꽃을 키우고 있다.
이십 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하나의 사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왔다. 내 이름의 도장을 맡았던 도장장이는 사람들의 이름을 파면서 세계를 볼 것이고, 의자를 만드는 사람은 의자에 앉게 될 많은 사람을 상상하면서 세계를 볼 것이다. 나는 호프 자런의 랩걸을 통해서 식물학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
랩걸에서 호프 자런이 식물을 연구하는 실험실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모험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무와 사람의 공통점을 책 안에서도 발견하기도 했다. 자런은 하나의 몸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무처럼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사람은 물론 나무와 달리 이동할 수 있지만, 우리가 지나온 어떤 기억은 한번 심어진 나무와 같이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는 그 기억을 이루는 나무들을 가꾸면서 살아야 한다. 어떤 기억의 나무들은 너무나 굵고 우연적으로 뻗어 있어서 종종 우리를 멈추게 한다.
나는 자런이 살면서 종종 생각해왔던 문장에 눈길이 갔다.
p. 184
‘나를 핵심 멤버로 인정해주는 곳이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은 낯선 도시의 매리어트 호텔 회의장에서 뷔페 식사 시간에 혼자 서 있을 때 나 자신을 위로하는 대사였다. 그것은 마치 가까이 가면 병이라도 옮길 사람인 듯 아무도 내 근처에 오지 않고, 옛날 좋은 시절에 질량분석계를 만들던 이야기를 하며 서로 등을 두드리며 웃어대는 무리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채 서 있을 때 나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자런은 여러 실험실을 빌과 함께 옮겨 다니면서 ‘핵심 멤버로 인정해주는 어딘가’로 향한다. 그런 자런은 빌의 연구비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실험실로 가게 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남편 클린트를 만나고, 아들을 낳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런은 여성을 바라보는 세계의 편견과 부딪히면서 자신과 비슷한 무늬를 가진 사람들(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을 향해 간다.
나는 자런이 아들을 낳을 때와, 빌이 97세인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 각자 벗어날 수 없는 유년으로 생각을 뻗어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런은 탄생에서, 빌은 죽음에서 각자의 유년을 돌아보았다.
315p
순간적으로 나는 15년 전, 의대에 너무도 가고 싶지만 그럴 돈이 없고, 그걸 마련한 길도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던 절박한 여대생으로 돌아간다. 나는 부엉이를 잡아 털을 뽑고 삶아서 아이들을 먹이고, 뼈를 쪼개 골수는 아기에게 먹인 다음 자신은 유일하게 남은 음식인 삶은 물을 마시던 여인들의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이다. 나는 내게 붙은 거머리를 직접 떼어내고, 거미, 뱀, 흙, 어두움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 소녀였다. 나는 갑자기 책 구입비까지 모두 지불이 되는 장학금을 탄 후 서점에 가서 실제로 필요한 교과서들 외에도 의대에서 쓰는 교과서까지 모두 샀던 그 소녀로 돌아갔다.
341p
너희 아버지는 좋은 분이셨어. 항상 어머니에게 잘하셨고, 충실한 남편이셨지. 자식들을 사랑하셨고 밤마다 집에 계셨고, 술도 많이 안 드시고 사람을 때리지도 않으셨어. 그게 아버지가 너에게 남긴 유산이야. 그게 네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거고, 큰 재산이지. 그게 우리가 받은 거야. 일부 사람들이 받는 것보다 훨씬 큰 유산이고,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인지도 몰라. 그리고 이제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해.
한 사람에게 자리 잡은 기억의 나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회상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지금을 이루는 무늬는 달라진다. 나의 유년을 바라보았을 때 좋은 기억의 나무와 나쁜 기억의 나무가 함께 떠오르는데. 나는 그걸 지금까지 어떻게 관리하면서 살아가고 있던 것일까.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린 몇 그루의 기억의 나무들은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또 다른 토양이 되어서 최근에 펼쳐진 기억의 나무를 키우는데 돕고 있었다. 폐허와 공터 속에서만 건설될 수 있는 건축물처럼 나는 몇 번이고 내 안의 기억의 나무들을 무너뜨리고 세워야 했다. 그래서인지 자런과 빌이 함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실험실을 찾아 나서는 모험 속에서 그들의 실패가 더 나은 과정으로 가기 위한 도약처럼 보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
스무 살이 되면서 종종 한 생각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 였다. 그 당시 대학은 너무나도 소란스러웠고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나는 하얀 벽지로 이루어진 기숙사에서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는 날이 많았다. 히키코모리를 가정하면서 기숙사 침대에 오래 누워 있었고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부르면 괜히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때로는 나갔다) 기뻤던 것 같다.
그런 나날 속에서 흰 벽지 속에서 기억의 나무들은 펼쳐졌다. 나무들은 너무 엉켜 있어서 정글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뿌리가 뽑혀나간 황망한 구덩이만 보였다. 그 기억의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그 나무들은 환상 속으로 사라졌지만. 어느새 나는 모든 기억 속에서 내가 완전히 알 수 없는 공백의 지점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예전보다는 기억을 편안한 마음으로 불러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쩌면 기억이라는 숲을 가꾸기 위해서 나는 새로운 나무를 만나는 일보다는 숲을 하나의 정원처럼 매일 청소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청소를 하면 할수록, 기억의 숲은 깨끗하게 씻겨나가면서 생생하게 다가왔다.
*
나는 요새 종종 사람의 조상이었던 물고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물고기의 형상에서 손과 발이 생겨서 육지로 올라온 최초의 생물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고독했을까, 시원한 바람을 느꼈을까. 지금 육지를 이루고 있는 많은 숲도 바다 식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대목이 책에 나와서 인상적이었다.
p.255
수십억 년 동안 지구의 땅 표면은 풀 한 포기 없는 완전히 황폐한 곳이었다. 바다가 생명으로 넘치기 시작한 후에도 땅 위에 생명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 최초의 턱이 있는 물고기와 턱뼈가 없는 물고기들이 출현해서 뼈를 가진 동물로 진화할 때까지도 육지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600만 년이나 더 지난 다음에 육지 위에 생명이 출현했지만, 그것도 겨우 바위틈에 단세포 생물 몇 개가 엉겨 붙어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첫 식물이 어찌어찌 육지로 진출한 후, 처음에는 습지로 시작해 숲으로 변화하면서 모든 대륙이 초록으로 뒤덮이는 데는 몇 백만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 도시화는 식물들이 4억 년 전에 고생 끝에 푸르게 만들었던 곳에서 식물의 흔적을 없애고 땅을 다시 딱딱하고 황폐한 곳으로 되돌리고 있다.
바다로부터 시작되어서 육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나무는 너무 복잡한 기억들을 공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 바다에서부터 올라온 초록색의 식물을 떠올리면 세상이 너무 맑고 깨끗하게 느껴진다. 물론 그들에게도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하나의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 모험들이 지금 세상을 이루고 있다.
모험에서부터 또 다른 모험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 사람들과 숲은 어떻게 스스로의 기억을 관리하면서 살고 있을까. 어떻게 그 복잡함을 견디고 각자의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죽어서 흙이 되어 숲으로 돌아가고, 숲에 있던 나무는 지금 도시의 가구가 되어가고 있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나무들이 모인 마을을 생각하게 되었다. 밤에는 나무로 머물지만 낮에는 나무의 옷을 벗으면서 사람처럼 살결이 생겨나.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우리와 종종 떠들 수도 있는 그런 나무들을 말이다. 그 나무들은 매일 아침 아무도 모르게 숲을 빠져나와 사람의 몸으로 도시를 떠돈다. 그런 후에 도시에서 겪었던 각자의 에피소드를 숲에 모여서 밤에 공유한다. 마찬가지로 처음 바다에서 육지로 발을 디딘 초록색 식물은 바다에 남겨둔 친구들과 얼마나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지금 그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수다도 우리의 변해가는 환경처럼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을의 나무 중 하나가 나일 수도 있다. 이 서평을 쓰게 된 것도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소해 줄 나무 친구들을 위해서였다.
의견을 남겨주세요